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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2년 7월
평점 :
필요할 때마다 이 책을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으세요.
하지만 정말로 필요할 때만. 아시겠지요?
우리는 매일 똑같은 삶이 이어진다고 생각을 한다. 정해진 루틴대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물론 시간대나 하는 일들은 제각각이겠지만. 하지만 매번 똑같은 날은 다른 사람의 강요가 아닌 본인 선택의 결과물이다.
애써 자신을 속이고, 외면하고 있지만 스스로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못난 여우란 걸. 밝은 햇볕을 머금어 보석처럼 영롱이는 열매를 욕망하고 있지만 일어나지도 실제하지도 않는 머릿속 부정과 의심에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고 자위하며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유튜브에서 'OOO으로 월 천만 원 이상 수입'이란 제목의 영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처음엔 신기하고 궁금한 마음에 영상을 시청하지만, 점점 이런 영상이 흔해지고 익숙해질수록 심드렁해졌을 것이다. 의심으로 상대방을 부정하고, 한계라는 방패로 자신을 방어한다. 저거 사실 맞아? 나는 못하는데? 운이 좋네....
하지만, 하지만 알고 있다. 지루하고 평범한 그리고 쪼들리는 삶에서 벗어나길 원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열매를 입안에 넣고 싶지만 자신은 그저 소심한 방관자라는걸. 그렇다. 행동으로 보물을 인증한 사람들이 방법을 알려줘도 우리는 그저 그렇구나 할 뿐이다.
난 안될 거야. 그리고 저건 사기야.
설혹 설익어 떫고 시어 보이더라도 그걸 남이 아닌 내 미각으로 확인해 보자. 머뭇거리고 의심하고 핑계를 대는 그런 주변인이 아닌, 염세주의자인 감정과 지성이 나를 지배하게 하지 말자. 나도 그렇고, 당신 역시 천재도, 행운아도 아니다. 그리고 기회가 정해져 있는 게임도 아니다. 삼세판 따윈 헛소리니, 머뭇거리고 비관적인 상상력을 피워낼 시간에 움직여라.
'다가올 날들을 위한 지침서'는 이런 이야기다. 찌질하고 못난, 항상 뒷북을 치며 후회를 하는 주인공에 빗대어 독자에게 재촉하는 책이다. 어딘가 높은 산, 새끼들의 날갯짓을 격려하는 엄하고 사나운 독수리의 다정한 격려처럼. 어설픈 가정으로 미래를 망상하지 말고 움직이길 촉구한다.
요아브 블룸은 1978년 이스라엘 태생으로 작가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는 특이한 이력을 지닌 작가다. 그는 2018년 이스라엘에서 출간한 '우연 제작자들'이란 SF, 판타지 소설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는 판타지 소설을 읽거나 씀으로써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닌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는 15년에 걸쳐 쓰였으며, 초고를 쓴 뒤 거의 12번의 개고를 거쳐 완성된 소설이다.
그리고 옮긴이는 J.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개정판)을 번역한 강동혁 씨가 맡았다.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는 상당히 두툼한 책이다. 책을 손으로 잡으면 요즘 시중에 나오는 여타 책들보다 무직하고 두껍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책 제본 방식이 실로 박음질되어 위에서 보이는 것처럼 페이지를 활짝 펼치면 안정적으로 부드럽게 펼쳐진다. 책 자체에도 부담이 되지 않고.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는 판타지이자 추리소설을 빙자한 자아성찰을 다룬 소설이다.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소심한 주인공이 평소 가끔 방문하던 양로원의 '울프'할배에게 받은 유산으로 인해 찌질한 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벤은 낯선 사무실에서 그저 일을 위해 만났던 말벗 울프에게 위스키를 받고, 누군가의 음모로 '바없는 바'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벤처 할매와 바텐더 오스나트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누구한테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다소 빈약한 인물인 '벤'이 주인공이다. 왜 작가는 당당하게 행동하고 용기 있고 결단력 있는 인물 대신 자꾸 움츠러들며 뒷걸음치는 못난 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는 거의 중반부까지 독자들의 가슴을 갑갑하게 만든다. 벤의 소심하고 주저하는 비겁한 행동과 심리를 독자에게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의문을 들게 한다. '왜 저런 상황인데도 저렇게 못나게 행동할까? 결단력 있게, 용기 있게 과감히 행동할 순 없나?'
작가는 왜? 작가는 도리어 묻고 싶을 것이다. '책을 읽는 당신은 어떤가? 벤이 아닌 스펜서인가 아니면 보스인가 그도 아니면....' 우리는 아마도 스마트한 스펜서보단 벤에 가까울 것이다. 낯선 상황에서 의심하고 주저하며 비합리적이며 당황하는 그런 소심한 겁쟁이.
작가는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를 통해 독자에게 촉구하고 재촉한다. 어려울 것도, 주저할 필요도 없어. 네가 당황스럽고 무서운 것도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만 있을 거야?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는 다소 기묘한 소설이다. 어딘가 흔하고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숙하지는 않은. 그리고 당연한 클리셰에 이상한 복선으로 독자를 헷갈리게 한다. 잠시 방심하면 작가가 깔아놓은 색색의 자갈을 보지 못하게 된다.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는 내겐 정말 보석 같은 소설이다. 최근 아닌 올해 들어 읽은 여러 책 중 단연 최고였다.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을, 질척한 검은 숲과 늪을, 자욱한 어둠이 깔린 내면을,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감각을 다채롭고 낯선 그리고 작가 요아브 블룸만의 개성적이고 환상적인 문장으로 독자, 아니 나를 중독시켰다. '조르바'이후 어렵게 만난 보물이다.
누군가는 책을 읽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책만 읽어서는 돈을 벌수 없다고 말한다. 그럴지도? 하지만 책을 요하브 블룸의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를 읽지 않았다면,
어린시절의 끝자락에 찾아오는 맨정신의 섬세한 거미줄을 엮어서....
불만투성이의 사춘기 소녀의 감초 사탕에 대한 묘사를 어디서 보겠는가? 이렇게도 독특하고 섬세한 문장을.
소심하고 찌질한 벤과 망실되는 과거의 파편에 중독자가 되어가는 벤처, 끝장나는 무언가를 찾길 원하는 바텐더 오스나트. 그리고 '나'의 민낯을 깨닫게 하는 소설.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를 추천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제 주관대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