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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우정으로 1 ㅣ 스토리콜렉터 10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22년 7월
평점 :
멍청한 뱀들이 있긴 하지만, 이 여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겐 스릴러나 미스터리 소설은 라면 스프다.
평소 라면을 자주 끓여먹는다. 가스레인지에 적당량 물을 받은 냄비를 올리고 싱크대 위 찬장을 열어 라면을 꺼내 준비한다. 사람마다 라면 끓이는 취향은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물이 끓기 전 스프와 면을 집어넣는다. 때문에 라면을 찬장에서 꺼내면 바로 라면 포장지를 바로 뜯는데, 여기에 나만의 징크스? 습관? 장난?
언젠가 티브이 예능 프로에서 라면 스프의 위치가 앞 아니면 뒤에 있는지 맞추는 게임을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 게임을 보기 전까진 그저 라면 봉투를 뜯거나 길게 찢어 면을 꺼내고 스프를 집어 냈었다. 하지만 그걸 본 후 은밀한 취미가 생겼다. 요즘 유행하는 포켓몬 빵 스티커를 두근두근 가슴을 설레며 조심스레 뜯듯이, 나 역시도 라면 봉투를 조심스레 뜯는다. 길게 찢는 게 아닌 봉투 입구를 뜯는다.
내가 즐겨먹는 라면은 스프가 대부분 앞(라면 상표가 있는 부분)에 들어있다. 열에 열 번은 모두 앞에 있다. 때문에 스프가 뒤 설명란 부위에 들어있을 확률은 극히, 아주 극히 낮다. 아마도 레어 포켓몬 카드보다 더 확률이 낮을 것이다. 그래서 매번 기대를 어긋나지 않은 스프위치에 언젠가부터 심드렁히 확인할 뿐이다. 다만 미련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봉지를 뜯고 뒷부분을 더듬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의식 아닌 의식을 행하며 라면스프를 찾던 언젠가 손가락 끝, 즉 손톱 밑 물렁한 살에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설마 하며 손을 더 깊이 넣은 순간 드디어.... 그때 느낀 짜릿한 소름 돋는 기분은 영화 식스센스 이후로 처음이었다. 뭔가 나만의 놀이가 인정받은 느낌? 단순한 기계 오류였겠지만 내겐 기적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소수점의 행렬을 기만했다는 황홀경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다만 그때뿐. 단 한 번이었다.
스릴러를 읽을 때 이런 짜릿한 감정을 조금이나마 주길 바라며 페이지를 펼친다. 하지만 "영원한 우정으로"는 내게 저런 짜릿함이나 스릴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장르는 미스터리물이지만 인간관계의 애증을 보여주는 책으로 보였다.
영원한 우정으로의 저자 넬레 노이하우스는 1967년 독일 태생이다. 어릴 때부터 농장에서 자라며 연극, 소설, 로맨스와 스릴러를 꾸준히 썼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에서 법학, 역사학, 독어독문학을 공부하고 소시지 공장주와 결혼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유명세를 탄 작가는 아니었는데, 스스로 부지런히 움직여 책을 출판하다 중견 출판사의 눈에 띄어 정식으로 출간 계약을 맺어 책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출간하던 '타우누스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이 전 세계 30여 개 국에 번역 출간되어 10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그녀는 이제 명실공히 베스트셀러 작가다.
옮긴이는 현재 독일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전은경 씨다.
언급한 바와 같이 내게 미스터리 소설은 규격을 벗어난 불량품을 확인했을 때의 짜릿함이다. 그래서 가끔 보는 추리소설에서 이 감정을 찾곤 하는데 혼조의 소설 말고는 그다지 없었다.
"영원한 우정으로"는 프롤로그와 챕터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낙원 같은 매력적인 섬에서 무언가 벌어질 것임을, 벌어졌음을 암시하며 소설은 시작된다. 이야기는 강력계 경찰 피아 산더와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 주인공에 해당하는 두 인물이 사건 현장을 발견하고, 실마리를 조사하며 감쳐진 살인사건의 범인을 쫓는다.
그리고 그 외 인물들은 많다. 복잡하고 많다. 흔하게 접하는 영어권 성과 이름이 아니라 독일 이름이라서 낯설고 쉽지 않다. 알브레히트, 크뢰거, 브레모라, 모스브루거 .... 물론 이름은 피아, 올리버, 그레타, 소피아, 하이케로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지만, 하지만 이름이 아닌 낯설고 어려운 성으로 인물을 지칭할 때면 책 첫 부분에 나와있는 인물들의 이름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내겐 있었다.
소설은 사건을 발견하는 첫날부터 4일간 이야기다. 독일의 유명 출판사 '빈터샤이트'의 전직 기획부장 하이케 베르시가 해고당한 후 그녀의 친구가 연락이 안 되는 그녀가 걱정된다며 경찰(피아)에게 의뢰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의 실종, 미심쩍은 상황,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패턴을 말하자면, 여느 때와 같은 일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가벼운 부탁에 주인공이 사건 현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주변 상황, 복잡한 인물관계도, 실종자의 인간성과 인간관계, 명성 등 뭔가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느낌을 준다. 잠깐의 공백으로 잠시 긴장을 느슨하게 풀었다가 갑자기 작은 단서로 긴장이 조성된다.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작가가 뭔가 암시나 복선을 흘리지 않았을까 눈을 부릅뜨지만 설명이나 묘사나 감정 표현이 너무 자세하고 많을 뿐, 빙고를 외칠만한 단서는 없다.
"영원한 우정으로"는 여백 없이 한 면을 가득 채운 글자 수에 어지러울 정도다. 그리고 페이지 수도 380페이지가 넘는다. 때문에 중간중간 정신을 환기하지 않으면 집중력이 흩어질 것이다.
나는 추리나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 한걸음 물러난 방관자의 관점으로 본다. 장르 특성상 몰입해야 하지만, 장기를 둘 때 직접 장기를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이 숨겨진 묘수를 잘 찾는 것처럼. 그러나 보는 이를 질리게 하는 글자 수에 멀어졌던 걸음도 "영원한 우정으로"는 어느새 한걸음 다가서게 만드는 묘한 무언가가 있었다. 단순히 많은 활자의 나열이 아닌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장 속에 아내와 남편, 아이 그리고 친구 등에 관한 사랑과 증오, 애환, 고뇌가 들어있어 덮은 책을 다시 펼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글을 읽어갈수록, 책이 얇아질수록 의구심이 들게 한다. 책은 끝나가는데 왜 여전히 안개가 자욱이 낀 어스름한 새벽 같은지. 그리고 한 장이 남았는데도 해결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을 다 읽은 순간 보이는 글자에 한숨을 쉬게 된다. 짤막한 문장(2권에 계속). 책이 두꺼워서 당연히 한 권으로 완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뭉글뭉글 솟아나는 허탈감.
솔직히 말하자면 "영원한 우정으로" 1권에서는 끝부분에 나온 단서 말고는 특별한 암시나 복선은 없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래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추리물이라기보단 인간관계의 애증을 다룬 소설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독자를 책 속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는 충분히 많다. 끝부분에서 보여준 단서로 2권에선 어떻게 사건을 풀어나갈지 사뭇 기대가 된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제 주관대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