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번. 4차선 상하 차선을 구분하는 노란 선 위에 고립되어 본 적이 있었다. 하물며 나 혼자가 아닌 초등학생, 여자 조카와 함께.
형수님에게 조카와 함께 식당으로 오라는 전화를 저녁 무렵에 받았다. 그래서 삼선 슬리퍼를 신고 조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아파트, 우리 집에서 식당으로 향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아파트 정문으로 길게 우회에서 육교를 지나 다시 거슬러 가는 방법, 다른 하나는 내가 사는 동의 현관 옆에 있는 아파트 뒷문을 통해 나가서 4차선 도로를 횡단해 식당으로 가는 방법이다.
하나는 안전하지만 번거로웠고, 다른 하나는 시간은 짧았지만 무단횡단을 해야 했다. 평소 뒷문을 자주 이용했었던 나는 거리낌 없이 뒷문으로 방향을 틀었고, 어린 조카 역시 별 이견 없이 나를 따라왔다. 그리고 보도블록 위에서 오고 가는 차들이 신호가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저녁시간이어서 그랬는지, 차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리고 평소와 다르게 상하차 선의 신호도 엇갈리는지 좀처럼 건널 틈이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아래와 위 차선을 겹눈 질하다가 위 차선의 차들이 없어졌고, 아래 차선 차들도 드문 해진 순간에 조카 손을 잡고 도로를 재빨리 건넜다. 도로 반대편을 노리며 서둘러 움직였지만, 결국 도로 중앙의 노란 선 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하수구를 향해 쇄도하는 하숫물처럼 차들이 여러 교차로에서 쏟아져 나왔기에...
그때 차라리 나 혼자였다면 차들 사이로 보이는 틈으로 재빨리 건넜을 텐데, 어린 조카의 작고 여린 손을 잡고는 차마 그런 곡예를 버릴 수는 없었다. 나와 조카를 사이에 두고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차들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과 풍압에 두려움이 절로 났다. 차들이 빠른 속도로 세찬 바람을 찢을 때 날카롭게 처절하게 지르는 바람의 비명소리에 자연스레 몸이 움츠러 들었고, 스쳐 지나는 바람에 혹여 조카가 쓸려나갈까 두 손으로 꽉 껴안고 있었다.
나와 조카를 가느다란 노란 선위에 고립시켜 둔 채 양쪽에서 질주하는 차들에게 느껴지는 두려움에 생전 처음 자동차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저렇게 빠르게 내달리는 차가 혹시 실수라도 하면... 빠르게 엄습하는 두려움에 심장이 거세게 두근거렸다.
잠시 후 아래 차선에서 신호가 걸려 차들의 질주가 멈추고, 우리는 안전하게 반대편 보도블록을 밟을 수 있었다. 대략 30초 정도였을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겐 기억하기 싫은 순간이었다. 나뿐 아니라 어린 조카까지 위험에 빠지게 했다는 자책감에 빨리 그 순간이 끝나기만을, 아래에서 신호 불빛이 빨리 바뀌기만을 기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