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문학 - 산책길에서 만난 역사, 2022 올해의 청소년교양도서 길 위의 인문학 1
김정남 지음 / 스마트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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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어 더 좋은 16개 산책길


"길 위의 인문학"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익숙한 교실에 앉아 역사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학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조곤조곤 이어지는 말투, 그리고 때론 학생들이 지겨워하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를 은밀히 속삭이는 듯한 사근한 문체에 내 정신을 온통 빼앗기고 만다.

길 위의 인문학은 우리나라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신미양요, 동학 농민 운동, 임진왜란, 6.25,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작가이자 선생님인 김정남 씨가 직접 현지를 걸어 다니며 독자에게 낡은 성곽, 건물, 골목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준다. 때론 너무 상세해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하지만 그가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며 걸음을 옮길 때면 어미 오리를 따르는 새끼 오리들처럼 종종 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저자 김정남 씨는 현재 대진 여자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며, 한양대 사학과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학생들과 역사 독서토론 수업과 학생 참여형 수업을 하고 있으며, 역사 문화답사 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작가 김정남 씨는 머리말에서 2020년 9월경에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길 위의 인문학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출판사는 당시 '산책길에서 만난 역사'라는 주제를 제시했는데, 작가는 사진자료 수집을 위해 일일이 현장 방문을 해야 하기 때문에 1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거라 예상했다고 한다. 글을 읽어보니 '산책길에서 만난 역사'란 제목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기분전환 겸 산책하며 만난 역사라기보단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어 목적을 갖고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장소가 본문에 수두룩했기에.

책의 목차를 보면 서울, 경기, 강원, 충청, 경상, 부산, 전라, 제주까지 삼국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이어진 우리나라 역사의 자취가 있는 곳을 돌아다니며 저자가 열심히, 짜임새 있게 조사한 것을 볼 수 있다.

책의 구성은 먼저 대주제를 소개하고, 저자가 소개할 지역의 지도를 보여주고, 그가 다닐 길을 지도에 표시해 주고 거리와 도보시간까지 친절히 알려주는 지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다음은 지도에 나열되어 있는 건물이나 사당, 사찰, 학교 등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그곳에 얽혀 있는 역사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낸다. 처음 3.1운동의 진원지, 서울 북촌 한옥마을 길에서 너무 급작스레 쏟아지는 낯선 지식에 겁이 덜컹 나 이 책을 어느새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낯선 인물과 장소에 대한 지식. 이건 인문학이 아니고 그냥 역사서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이 책은 인문학을 소개하는 게 맞았다. 정조와 한용운, 허난설헌, 신동엽, 초의선사의 시와 그와 얽힌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길 위의 인문학은 특정 건물을 소개하기 전에 그 건물이나 장소에 얽혀있는 인물이나 역사적 배경을 사실 위주로 알려준다. 마치 역사 교과서처럼. 창덕궁과 후원 궁궐 길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정조의 집권 과정과 반대 파벌, 정약용, 노론 벽파와의 관계 등을 알려준다. 그리고 정조가 살았던 궁궐의 구조와 그 속에 있었던 건물과 다리 이름의 유래와 석상(동사적주 동물상 : 잡귀를 막기 위해 새김)에 담겨 있는 의미를 조곤조곤 알려준다. 이 부분은 자칫하면 졸음에 빠질 수 있으니 조심.

그리고 챕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구절엔 그 지역을 여행할 때 가는 방법과 들러야 할 현지 식당들을 추천해 준다. 순전히 그의 주관으로. 하지만 이 부분이 좋았다. 만약 내가 이 책에 있는 장소에 여행을 간다면 인터넷상의 추천보다는 이 책의 저자가 하는 추천을 믿기로 했다. 만약 내 취향에 안 맞더라도 여행은 그런 거니까..

책의 구성은 이렇듯 단순하다. 지도, 설명, 사진 그리고 추천.

수학여행이나 가족, 친구, 연인과의 여행으로 이미 방문한 곳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 본 곳보다 안 가본 곳이 더 많았다. 특히 신미양요 격전의 현장을 체험하는 강화나들길 2코스에 흥미가 갔다. 드라마에서 봤던 광성보 전투의 현장을 한번 꼭 가보고 싶다.

우리는 여행을 갈 때 우선 먹거리부터 확보해야 한다며 현지 맛집부터 알아내려 한다. 물론 이런 여행도 나쁘지 않다. 다만 친구, 연인과 여행할 때 이 책을 먼저 읽어두면 '아는 체, 잘난 체'를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쓸모없는 허세라고 비꼴 수도 있지만, 그래서 뭐 어떤가, 여행은 즐겁자고 가는 거니. 친구와 연인에게 부리는 허세가 주는 즐거움도 여행의 즐거움이 아닐까?

만약 당신이 역사에 문외한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길 추천한다. 길을 걸으며 낯선 지역에서 낯선 이야기를 듣는 체험만큼 큰 즐거움은 없기에.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제 주관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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