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기특한 불행 - 카피라이터 오지윤 산문집
오지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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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언어를 모르면 답답하고 외롭다고 하는데,

나는 그 무지함에서 오는 자유가 좋았다.

작고 기특한 불행

작년 이맘때 즈음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삐뚤어지려는 시기였다. 책을 좋아했지만 많이 읽지는 않았던, 멋진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상품 리뷰조차 힘들어하던 이상하고 애석한 내게서 벗어나고자 부린 변덕이었다.

늘 그래왔듯이 채 일주일이 되기 전에 포기할 거라 어렴풋이 확신했지만, 그때 또 다른 변덕이 있었는지 지금까지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다. 매일매일 어설픈 글쓰기를 거의 일 년 동안 매일 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그동안 은밀히 감춰왔던 내 속마음을 조금씩 적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얕았던 낯이 점차 두꺼워지며 내 민낯과 초라함이 담긴 글을 창피해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자연스레 글쓰기에 욕심이 생겨 '브런치'에 도전했고, 지금은 드문드문 글을 올리고 있다.

"작고 기특한 불행"이란 책을 왼손을 잡고 이리저리 둘러봤다. 200페이지 남짓한 작은, 왠지 만만해 보이는 책이다. 어제까지 며칠 읽었던 책은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를 지끈 하게 하는 경직된 녀석이었는데, 지금 손에 들린 녀석은 한껏 하찮게 보인다.

나는 새로 읽을 책을 한 손으로 맨 뒤 페이지부터 차례로 파라락 넘기며 훑어보는 습관이 있다. 이번에도 역시 차르르 넘겨봤는데, 중간 즈음에서 갑자기 책 뒷부분이 덜컹 떨어졌다. 그리고 멈춘 페이지엔 요즘엔 보기 힘든 사진엽서가 책 틈바구니에 꽂혀 있었다. 표지 사진과 같은 소년이 푸른 바다에서 뱃속의 태아처럼 온몸을 웅크린 채로 잠수하고 있는 사진엽서였다. 판촉물로 이런 것도 주는구나... 하지만 그뿐. 사진엽서는 내게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했고, 나는 약간 남은 페이지를 엄지를 조절하며 미리 보기를 마무리했다. 역시 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내용물이었다. 이 정도면 2시간 정도면 읽겠는데...

상대가 내게 버겁다면 미리 호들갑을 떨 텐데 얇고 아담한 이 책, 작고 기특한 불행은 너무 만만해 보여 방심을 하게 만들었다. 풀어진 마음은 책에 손을 멀어지게 하고 요망한 마우스를 향하게 했다. 어느새 9시. 너무 늦으면 안 되겠단 마음이 들어 독서대를 당겨 책과 볼펜, 노트를 가지런히 했다. 노트와 볼펜은 요즘 생긴 습관이다. 책을 읽을 때 그냥 끝까지 읽어나가면 서평을 쓸 때 너무 막막해 요즘은 챕터가 끝나면 그에 대한 감상을 간단히 적고 있다.

산문집을 읽다 보면 저자의 이름, '오지윤'이 종종 거론된다. 책을 읽을 때 처음에 저자의 이름을 확인하지만, 낯선 이름이면 곧 잊어버리는데 본문에서 '오지윤'이 나왔을 때 이 책의 저자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내 친구 중에도 지윤이 있는데, 그러게! 참 공교롭다.

저자의 일상을 담은 산문집이라 앞표지에 덩그러니 있는 소개보단 본문을 읽으면 그녀를 더 잘 알 수가 있다. 그녀는 애인이 이별 선물로 남기고 간 고양이 오복이를 동거하고 있다. 동거묘 오복이는 그녀의 하소연에도 무던한 성격을 지닌 녀석으로 웃으면 고창석 씨(?)를 닮은 넙데데한 얼굴을 지녔다. 그리고 내가 원룸에 이사 왔을 때 설치했던 앱 오늘의 집을 그녀 역시 스마트폰에 설치했다. 그녀는 이 앱으로 집을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미고 싶어 했지만 마음처럼 되진 않은 모양이다.

그녀는 "존 버거는 영국의 비평가이자, 소설가이자 화가이며 인권 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라는 존 버거의 소개를 읽고 '와, 이 사람 정말 제멋대로 살았나 보네'라고 색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이 구절을 읽을 때 그녀의 감상평에 작게 피식했다.

그리고 그녀 덕분에 '틴버'라는 즉석만남 앱을 알게 됐고, FWB가 멜랑꼴리한 뜻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중간중간 이해하기 힘든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그건 그대로 좋았다. 편하게 일하는 두뇌를 잠시라도 일하게 할 수 있으니...

그녀의 가족, 친구, 동네, 집 등에 대한 이야기가 때론 심각하게, 때론 건성으로 이어진다. 친한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 부분에서 마치 누가 더 신박한 헛소리를 잘하냐를 내기하는 내 모습이 생각나 흐뭇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완고하지만 다정한 아버지, 사랑스러운 어머니, 믿음직한 언니, 그녀를 구슬처럼 보살펴 주던 할아버지, 자애로운 할머니 이야기가 산문집 전반에 녹아들어있다.

아.. 빠트린 게 하나 있는데, 저자의 친구, 즉 오지윤씨의 후배가 그녀에게 해준 조언은 아주 신선하고 좋았다. 나도 그 방법을 써먹어야겠다. 신박한 방법이 궁금하다면...?!

가볍고 아담한 산문집이지만 내용물은 결코 하찮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에 읽었던 여러 책 중에서 가장 좋았다. 마치 내 일상을 들킨 것 같은, 나와 비슷한 모습이. 과하지 않은 그녀의 표현과 담담한 문체까지, 편하게 읽었다. 그리고 일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감성이 나에게까지 전염됐는지 의도치 않게 브런치 글을 하나 완성했다.

과하지 않는, 그렇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그런 산문집을 찾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제 주관대로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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