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대화
서경희 지음 / 문학정원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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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처럼 혼자 남겨질까 봐 두려웠다.

지독한 허기가 밀려왔다.

아담하고 예쁜 자그마한 책이 내게 왔다.

두툼한 질감이 느껴지는 다소 검붉은 겉지를 손으로 더듬거리면 자잘한 격자무늬가 도들 하게 손끝을 간질이고, 정갈히 붙인 스티커 같은 튤립에 손을 올리면 겉지와는 다른 매끈한 촉감이 아까완 다른 생경함을 내게 준다.

서경희 작가는 이 소설 '꽃들의 대화'를 오랜 시간 구상하며 여러 번 고쳐 썼다고 글 말미에 고백했다. 분량이 짧은 읽기 쉬운 단편소설이지만 화려하지만 담백한 표지와 예쁜 일러스트로 가득한 꽃 같은 책을 꿈꿨다고 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잠시 한때 손바닥만 한 메모장을 애용한 적이 있다. 그때 나름 메모하는 습관을 기른다며 그럴듯한 명언, 책 구절, 공부 계획 등을 적는 그런 설레발을 치곤했었다. 지금은 집안 어딘가를 찾아보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나를 원망하고 있을... 낡은 메모장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택배 포장지를 찢어 빠알간 수첩 같은 책을 엄지와 검지, 약지로 하찮게 집고 의아해했다. 이런 사이즈의 소설책도 있구나. 일반 규격의 책에 익숙했던 내겐 익숙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책에 삽입되어 있는 소녀감성의 일러스트 역시 낯설었다. 그동안 읽었던 책은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운 작은 활자가 빼곡히 나열되어 있는 그런 퍽퍽한 책이었는데 이렇게 말랑하고 달콤함을 풍기는 책은 이제껏 멀찍이 방관해 왔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넘겨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의구심이 든다. '뭐지?' 처음엔 작가의 유년 시절 이야기로 시작한다. 늑대가 키운 소년이 연상되는 그런, 작가는 꽃을 좋아하는 소녀였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다소 독특한 아이였음을 고백한다. 아마도 생활고로 인해 할머니와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던 작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빠와 엄마 그리고 동생이 있는 도시로 향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때 기분이 약간 거슬렸다. 멀쩡한 집이 있고 아빠, 엄마가 있는데 왜 큰딸인 소녀는 따로 할머니와 살았을까? 왜?

그리고 동시에 든 생각이 작가는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번뜩 든 생각에 다시 책을 되돌렸다. 그렇다. 이건 소설이었다. 왜 작가의 자전적인 에세이라고 착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표지에 '서경희 소설'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왜? 따로 가족과 소녀가 살았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니, 그녀와 다른 가족 즉, 아빠와 동생은 서로 피붙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혼가정. 글을 읽다 보면 그녀의 엄마는 가정적이고 따뜻한, 편견처럼 박혀 있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다. 자식보단 자신을 꾸미기 좋아하는 엄마였다.

엄마는 본인이 꽃보다 아름다워지고 싶었던 분이셨고요.

그리고 꽃이 되고 싶었던 엄마는 다시 한번...

아직 젊은데, 이렇게 예쁜데, 어떻게 나를 버릴 수 있어.

작중인물 작가는 공모전 당선으로, 대상을 노리는 연출자의 연극의 작가가 된다.

이 소설은 작가, 연출자, 규, 혜나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이들은 꽃, 벌, 나비 그리고 인간을 상징한다.

따뜻한 햇살만이 비추는 외딴 구석진 곳에 홀로 피어있는 꽃.

지나는 살 바람에도 휘청이는 연약한 꽃처럼 소심하고 서투르지만, 사람들의 질시와 조소에도 웅크리지 않고 해를 바라는 꽃처럼 꺾이지 않는 들꽃.

연습실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향기를 뿜는 꽃은 벌과 나비를 부른다. 규와 혜나.

그리고 인간.

인간은 고난 즉, 거센 바람이다. 연약한 꽃을 꺾으려 그녀를 괴롭힌다. 바람은 그녀의 작품을 끝내 변조해 왜곡하는 태풍(대상)에 취한 바람처럼 광폭하게 휘몰아친다. 연약한 들꽃은 과연 광풍에 꺾였을까?


소설을 읽다 보면 작중 주인공인 작가가 두려워하는 게 하나 있다.

외로움.

주인공은 외로움을 불러오는 소나기를 두려워한다. 소나기가 오면, 소나기를 쫓아온 바람에 꽃잎이 떨어지고 헬륨이 가득 든 풍선이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를 찾아온 꽃잎조차 날려버리기 때문에.

표지에 은박으로 새겨져 있는 책 제목처럼 섬세한 감성을 느껴보길 원하는 사람에게 이 책 "꽃들의 대화"를 추천한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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