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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과 환상 - 의학자가 걷고, 맡고, 기록한 세상의 냄새들
한태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와우, 이쁜 책이네. 여성 취향이야.” 한태희가 코비드19 기간동안 칩거하면서 썼다는 책을 뒤적여 보고 우리 집사람이 한 말이다. 이 책은 우선 시각적으로 이쁘다. 표지도 그렇고, 안에 들어가 있는 사진들이 이쁘다. 아마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저자가 20여년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쓴 여행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인용했듯이, 데카르트는 ‘이성적 존재가 되려면 감각을 불신하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은 감각에 충실한 책이다. 저녁나절에 휘리릭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책장 한 곳에 꽂아두고서, 세파속에서 이성의 냉정함에 지쳤을 때, 꺼내어 나의 원초적 본능을 가만가만히 어루만지어 줄 수 있는 책이다.
감각하면, 우린 시각과 청각을 먼저 생각한다. 집사람이 ‘보기에’ 이쁘다라고 했지만, 이 책에서는 그동안 푸대접 받았던 후각이 주인공이다. 그가 이국의 골목과 시장, 전통 식당, 오래된 도서관과 대학의 뒷뜰을 하릴없이 거닐면서 느낀 냄새를 전하고자 한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직선으로 이동할 때, 그는 밤기차를 타거나, 걸으면서 느낀 느낌을 전한다. 냄새에 대해서,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우리가 중학교때 배운 청록파 시인은 시각을 시로 나타낸다고 배웠다. 어찌 글로 시각을 나타내는가하고 생각하였는데, 이 책은 후각이다. 후각은 뇌에서도 은밀한 부분에서 담당한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우리의 동물적인 본능과 가까우며, 우리가 냄새를 글로 잘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냄새는 개인적이고 은밀한 것이 된다.
책을 읽다 보면 그가 갔던 시장, 골목, 오래된 도서관, 전통 식당 등이 이상하게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그가 후각과 촉각을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사진은 보는 것이므로 그 자체가 존재가 되지만, 형체가 없는 냄새(향기가 아니고)는 상상함으로써 느껴지는 것이므로 그의 글에 동조하다(resonate) 보면, 상상력(아니, 환상력?)이 더욱 거기에 있는 느낌을 주는 거 같다.
그는 현실 의사이지만, 중세에 태어났다면, 마법사나 연금술사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의사로서 화학과 생물학은 물론이고 인체에 대한 지식이 연결되면서, 책에 나오는 수많은 생경한 단어들과 고유명사들과 함께, 그의 문장은 더욱 진한 향을 풍긴다. 더구나, 그는 역사, 문학(특히 시), 그림, 음악(락밴드 에코스의 보컬)에 조예가 깊고 이를 버무려 같이 즐기자고 한다.
시각은 뇌의 활동의 70%나 차지하는 욕심쟁이 감각이다. 그러나, 후각은 뇌의 원시적인 부분인 변연계에서 다루며, 감각과 기억, 성적 충동과 연결된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아마 기대했겠지만, 성적 충동에 대해서 이 책의 여러 곳에서 다루고 있다. 향기는 음식의 향신료와, 제사에서 사용하는 유향, 인테리어의 마지막 터치로 사용되지만, 역시 가장 큰 쓸모는 이성을 유혹할 때이다.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내가 곧 가니, 2주간 목욕하지 말라’고 했다거나, 비릿한 냄새를 내기 위해 음부에 작은 생선을 넣었다는 얘기는 무척 흥미롭다. 이러한 은밀한 즐거움을 몰랐으니, 그동안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후회가 된다.
지금의 기술로는 시각과 청각적 정보는 잘 전달할 수 있지만, 후각과 촉각은 전달할 수 없고, 저장할 수도 없다. 책의 처음에 나오는 투탕카멘의 3천년된 스프크나드 향이 복원되었다고 하지만 투탕카멘이 느꼈던 향과 같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에서 보면, 개미는 냄새로 소통하고, 냄새로 역사를 기록한다. 그런데, 우리의 몸은 은밀하게 냄새로 많은 것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당신이 당신의 짝을 첫 눈에 반한 것이 아니라 ‘첫 코’에 반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의 짝이 이제는 더 이상 그 때 그 냄새를 내지 않고 있어서, 지금 당신이 방황하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