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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서머싯 몸의 소설은 읽을수록 정감이 갑니다. 왜냐하면 그가 알고 있는 인생의 깊이가 깊으면서도 그 철학을 논할때 너무 현학적이거나 어려운 어휘를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 명작을 읽다보면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 되지 않는 작품, 특히 카프카의 작품같은, 이 많은데 몸의 글을 쉽게 이해 되면서도 그의 인생의 의미를 잘 표현해주고 있으니 독자들에게는 얼마나 반가운 작품인지 모릅니다. 1권에서는 우리의 주인공 필립이 육체의 굴레(절름발이라는 불구이므로)나 신앙의 굴레(사제인 백부의 양육을 받은탓에)에서 벗어나고자 여러 경험을 통해 결국은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2권으로 들어오면서 사랑과 격정의 굴레가 씌어진 필립은 <밀드레드>라는 여자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속물스럽고 저속하고 천박한 밀드레드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좀처럼 줄어 들지 않고, 그런 여자를 사랑하는 자신을 경멸하기도 합니다. 밀드레드가 에밀이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다시 필립을 찾아와도, 자신의 절친이었던 그리피스와 사랑에 빠져 도망을 갔다가 다시 찾아와도 그녀에게 관용, 친절, 동정을 베푸는 필립의 모습이 참으로 이해 되지 않습니다. 그의 외곬수 적인 성격이 곧이 곧대로 보여지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이기주의적인 성격의 소유자로서는 이해할수 없는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것도 인간의 굴레 중 한부분이라고 필립은 생각합니다. 이런 사랑과 격정과 욕정의 굴레도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져 갑니다.
인간의 굴레 중 또 하나의 굴레는 돈입니다. 필립은 증권브로커인 친구의 유혹에 빠져 남은 돈을 투자했다가 탕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노숙생활을 하게 되고, 병원근무 중 환자로 알게 된 애설니의 도움으로 취업을 하게 되어 돈의 굴레에서 어느정도 벗어나게 됩니다. "돈이 없으면 사람이 쩨쩨해지고, 비열해지고 탐욕스러워집니다. 성격도 비뚤어지고 세상을 저속한 관점에서만 보게 됩니다." 2주동안의 노숙 생활로 마음은 약해질대로 약해지고, 인생에 대한 모든 비관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으로 필립은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365 사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었다... 삶도 무의미하고 죽음도 무의미하다. 필립은 벅찬 기쁨을 느꼇다. 소년 시절, 신을 믿어야한다는 무거운 신앙의 짐을 벗어버렸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기쁨이었다. 이제 책임이라는 마지막 짐까지도 벗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셈이었다. 자기 존재의 무의미함이 오히려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인생이 무의미하다면, ,,,, 실패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고 성공 역시 의미가 없다.
결국 인생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지요. 인간의 굴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해방되는 셈입니다. 삶도 무의미하고 죽음도 무의미하니 실패도 성공도 믜미가 없어집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는 순간 신앙의 굴레를 벗어났을때와 같은 기쁨을 갖게 됩니다.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진정 인간은 대단한 존재가 아니며 창조물 중에 변화되는 과정에 생겨난 작고 하찮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인간의 인생은 무의미하므로 실패를 해도, 성공을 해도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필립은 이런 진리를 깨닫는 순간 기쁨과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힘을 갖게 됩니다. 인생은 정말 아이러니 한 것이지요.
필립은 의사 면허를 따기 위해 병원실습 근무중 여러 노동자와 하층민의 삶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삶은 <도미에>의 우울한 풍경의 그림 처럼 희망과 꿈도 없어 보입니다.
386 필립은 끝없은 노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사는 헤어릴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에게 삶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저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듯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것이리라. 이 모두가 헛된 것이려니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필립으로서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받아 들일수 없었다. 하지만 보이는 것 마다, 생각되는 것마다 그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것은 즐거운 분노였다. 삶이 무의미하다면 그것을 별로 두려워 할 것도 없을 테니까. 필립은 이상한 힘을 느끼며 삶과 마주하였다.
아무리 열심히 노동을 해도 가난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인생에서 삶의 무의미함을 느끼는 동시에 삶에 대한 이상한 힘을 느끼고 분노 같지만 이상할 정도의 즐거운 분노를 느낍니다.
필립은 작가 자신이 그러했듯 스페인 여행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꼭 한번 여행해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화가 친구 클러튼이 예찬했던 스페인의 <톨레도>라는 도시를 떠올리며 그 도시의 화가 <엘 그레코>를 느끼고 싶어 합니다. 영혼의 화가 였고, 톨레도의 화가였던 엘 그레코는 그리스 태생으로 보통 화가들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듯 그린 것이 아니라 영혼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림을 표현해 낸 화가였습니다. 아름다운 도시 , 영혼의 도시 톨레도와 엘 그레코를 꿈꾸며 스페인 여행을 기대하지만 결국 그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작가인 서머싯 몸은 의학의 길을 포기하고 스페인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작가의 길을 가게 됩니다. 하지만 자전적 소설인 <인간의 굴레에서>의 주인공 필립은 의사로서의 삶을 이어가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자신이 살았던 작가의 길이 아닌 중도에 포기했던 의사로서의 삶을 작가는 살아 보고 싶었던 것일까요?
필립은 인생의 의미를 비참하게 죽어간 시인 <크론쇼>에서 들은 비유, 인생은 <페르시아 양탄자>와 같다는 의미도 깨닫게 됩니다.
366 직조공이 양탄자의 정교한 무늬를 짜면서 자신의 심미감을 충족시키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았듯이, 사람도 그렇게 살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뿐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온갖 일들과 행위의 느낌과 생각들로써 그는 하나의 무늬를, 다시 말해, 정연하거나 정교한, 복잡하거나 아름다운 무늬를 짤수 있다.
양탄자를 짜내는 직조공으로서의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좀더 정교하고 아름답고 복잡하게 짜낼수 있는 예술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인생을 살아가고 결국 그 삶의 자취가 양탄자의 무늬로 남듯이 인생은 그렇게 짜여 가게 됩니다. 열심히 양탄자를 짜다 일찍 죽은 친구 <헤이위드>같은 미완의 인생이 있는 가 하면, 여러 무늬로 , 다양하게 만들어진 무늬로 끝까지 완성품을 남기는 직조공도 있기 마련이지요.
우리는 어떤 <페르시아의 양탄자>를 짜게 될까요? 각자의 인생을 어떤 무늬로 남길수 있을지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기도 합니다. 어차피 과거에 짜온 무늬도 범상치는 않았을 것이며, 각자 다른 의미의 무늬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에 , 또한 삶은 무의미하므로, 과거의 무늬에는 집착하지 말기도 합시다. 앞으로의 무늬만을 생각하면서 인생의 무의미함에서 오히려 기운을 얻는 필립처럼 삶의 진정한 즐거움을 찾아 떠나 보기로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