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 이야기 2 - 연산군부터 현종까지 박영규 선생님의 우리 역사 깊이 읽기 12
박영규 지음, 최상규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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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하는 역사 공부가 중반에 들어섰네요. 조선사 이야기는 조선 중기의 왕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조선왕조의 폭군 연산군을 보고 있자면 왕의 자질을 갖춘 왕자에게 왕권을 넘겨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절실해 집니다. 태종때에도 많은 왕자 중에서 학문을 좋아하지 않고 여자만 좋아했던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하고 충녕대군인 세종대왕에게 물려주었듯이 왕은 왕세자의 자질을 잘 파악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장자라고 무조건 넘겨주다 보면 연산군같은 폭군이 나타날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요. 연산군에서부터 중종 ,인종, 명종까지가 소설 임꺽정의 주요 배경이기도 합니다. 연산군 시대부터 사림들이 죽은 <사화>가 시작되지요.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빌미가 되어 시작한 <무오사화>,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가 토한 피가 묻은 비단 조각을 본 연산군이 복수차원에서 벌인 <갑자사화>로 사림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중종 시대에는 중종반정으로 힘이 실린 공신들의 세력을 견제하고자 사림 세력을 등용하는데 주 인물이 <조광조>입니다. 조광조는 제가 보기에 참 불쌍한 인물입니다. 중종은 조광조의 학문을 높이 사 그를 등용해 이용해 먹다가 결국은 토사구팽의 꼴을 만들어 버립니다. 조광조도 너무 혁신파라고 할까요? 너무 과격하게 훈구파 세력을 몰아 내려다 되려 자신이 당한 꼴이 되어 버렸으니 안타까운 일이지요. 시대를 잘 읽는 것도 현명함의 척도 일것 같아요. 조광조가 죽은 <기묘사화>가 일어난 것이지요. 중종 시대의 볼만한 이야기는 문정왕후와 정난정 이야기지요. 이 내용은 몇년전에 <여인천하>라는 드라마로 참 재밌게 보았던 이야기입니다. 걸출한 카리스마로 권력의 깊은 곳까지 들어간 문정왕후는 대윤(인종 지지 세력)과 소윤(명종 지지 세력)의 분열 다툼속에서 결국 자신의 아들인 명종을 왕으로 내세워 수렴청정을 하게 됩니다. 어머니 문정왕후의 포악한 성격때문에 명종은 결국 화병을 얻어 오래 살지 못하고 죽게 되지요.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왕이 귀가 얇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종이 정말 귀가 얇았던 왕입니다. 그런데 왕노릇 하기도 참 쉽지 않습니다. 일찍 왕에 오른 인종이나 명종도 그리 오래 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게 되는 것을 보면 스트레스가 여간 한것이 아닌가 봅니다. 당쟁이 시작되었던 선조시대는 사림들이 처음으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서로 정권 다툼을 하기 시작했던 시기입니다. 이러니 국방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까닭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지요. 이순신과 여러 의병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운명이 참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그 뒤를 이은 광해군의 삶도 참 기구합니다. 뛰어난 외교술을 펼치면서 큰 나라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는 지혜를 발휘했지만 그 휘하의 신하들을 잘못둔 광해군은 인조 반정을 맞이 하게 되어 폭군의 누명을 쓰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지요.

 

광해군이 북인들을 등에 업었다면 인조는 친명 사대 주의자들인 서인들을 등에 업었던 까닭에 정묘호란이라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됩니다. '삼전도의 굴욕'은 어찌 보면 인조가 자처한 셈인것이지요. 그런 인조가 청나라의 문물 흡수에 노력중이었던 소현세자까지 독살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그 몽매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네요. 인조가 죽으면서 남긴 계비 장렬왕후로 인해 현종 대에 이르러 남인과 서인사이에 '예송문제'로 서로 당쟁을 일삼게 됩니다. 장렬왕후가 너무 어린 나이여서 자신의 아들뻘인 효종과 효종의 비가 죽으면서 장례의 문제에서 상복을 몇년 입어야 되는 문제로 <경국대전>과 <주자가례>를 따라야 한다고 서로 주장하는 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도 서인들이 참 마음에 안듭니다. <경국대전>은 우리 나라에서 만든 법이므로 이 법을 따라야 마땅한데, 무슨 사대의식이 투철하여 <주자가례>를 따라야 한다고 그렇게 우기는지 한심한 노릇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서인들이 이제 조선 후기가 되면서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면서 정세를 손아귀에 넣고 흔들게 됩니다. 그런 그들에 의해 우리나라는 사대의식이 투철한 민족으로 거듭나고 있었던 것이지요. 명나라 이후 소멸되었던 성리학이 우리나라에서 빛을 발했던 것은 이런 사대주의의 표상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시대에 발 맞춰 학문을 익혀야 그 나라는 흥하게 될 것이지만 우리나라는 성리학이라는 뒤쳐진 학문에 열을 올리게 되는 것이지요.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인지 모르겠습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이런 역사적 현실을 비판한 책이라고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논어 자체가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그 학문을 어찌 받아 들여야 하고 해석하는 학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라 공자님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집니다. 하여튼 이런 역사적 배경을 끌고 조선은 후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파란 만장한 근대사가 보여지고 있네요. 이런 역사적 흐름을 통해 <반면교사> 할수 있어 그나마 유익한 역사 공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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