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알베르 카뮈가 열광했던 그의 스승, 장 그르니에의 <섬>입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이 즐겨 읽는 프랑스 에세이인데, 막상 읽어보니 여행은 여행인데, 현실적인 여행이 아닙니다. 스승의 에세이에 붙임글로 써 놓은 알베르 카뮈의 글로 이 에세이의 특징을 알아 낼수 있습니다. " 그르니에가 그리고 있는 여행은 상상의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속으로의 여행, 섬에서 섬으로 찾아 떠나는 순례이다." (8쪽) 라는 말로 이책을 잘 요약해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속에서의 여행, 이런 생각의 섬, 저런 생각의 섬들이 이 책에는 즐비하게 쓰여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 장 그르니에>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에 대한 상징들과 에피소드들이 적혀 있는 것입니다. 좀 추상적이고 현학적이긴 합니다. 현학적, 추상적이라면 일반인에게는 <이해불가>라는 말이 적절한 말이겠지요. 저한테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몇마디라도 건져야 했기에 머리를 막 굴리면서 읽어 내려갑니다. <공(空)의 매혹>이라는 글에서는 <장 그르니에>가 아마 불교나 도교에 심취한적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ball의 공이 아니라 빌 공의 空이니까 색즉시공(色則是) , 공즉시색(空則時色) 이런말 들어보셨지요? 불경인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이니 아마 인도쪽 여행을 하면서 空과 無사상에 젖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에게 새삼스럽게 이 세계의 헛됨을 말해 줄 필요는 없다. 나는 그 보다 더한 것을, 세계의 비어있음을 체험했으니 말이다.(26쪽)

 

무한의 감정은 내게는 무라는 것이 그러했듯 아직 이름이 없는 감정이었다. 그 결과 내가 느낀 것은 거의 완전한 무심, 일조의 고요한 무감각, --눈을 뜬채 잠자는 사람과 같은 그런 상태였다. (29쪽)

 

법정스님이 추구했던 무소유와 같은 마음, 완전한 무심, 사물에 대해 느끼는 무심함과 무감각에 대한 추구를 해왔던 것이지요. 프랑스 작가가 이런 생각을 가졌다니 신기하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개미의 저자 <베르나르베르베르>님도 아마 인도의 여러 종교에 대해 심취되어 있음을 보면 유럽인들의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하여간 저는 <공(空)의 매혹>에서 이런 점들을 느끼게 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좀 궁금하긴 합니다. 문장이 쉽지는 않거든요. 자신의 이야기를 어떤 상징과 에피소드로 나열은 하고 있는데, 문장이 막 눈에서 튕겨져 나가고 있었거든요.

 

카뮈가 상상의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 추상적인 세계로의 여행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참 황당했을 텐데요. 그나마 이런 문장이 있었기에 <섬>을 조금은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여러 섬들이 나옵니다. 케르겔렌 군도, 행운의 섬, 부활의 섬, 보로메의 섬들......

케르겔렌 군도는 남인도양 남부에 있는 프랑스령의 군도로 기후가 거칠고 냉랭하여 원주민은 없고 과학자, 기술자들이 살면서 연구목적으로 두는 섬입니다. 이런 섬의 이름이 제목으로 붙여 졌다는 것은 어떤 비밀스러움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내용에도 <데카르트>나 <파스칼>이 사생활을 솔직하게 공개함으로써 고독한 삶이 아니라 정신적인 비밀 스러움을 간직할수 있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절대 고독한 삶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비밀스러우면서도 정신과 영혼만은 혼자 몰래 간직할수 있는 어떤 정신적인 공간을 원하고 있는 것이지요. 케르겔렌 군도 처럼 말이지요.

 

행운의 섬도 상징적입니다. 나자신의 정신적인 새로운 탄생에 대해 행복을 느끼는 저자의 마음을 표현한 말입니다. 지금의 자신보다 더 내면적인 깊숙한 곳으로의 여행을 행운의 섬에 빗대어 그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느낌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정신적인 여행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가 될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백정과 자신과의 인연에서 공통적으로 나누어 가질수 있었던 것은 죽음에 대한 대화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죽음이후의 부활, 죽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쿡 선장의 여러가지 여행들이라는 책 속에서도 오직 파크 섬은 해골과 뼈들이 널려있는 거대한 관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그 섬이 기막힌 것은 그곳에서 발견할수 있는 오백개나 되는 거대한 조상들 때문이라고 하면서 원시인들의 내세의 부활을 원하는 종교관에서 기원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인도에 대한 여행의 회상을 깊숙히 하고 있습니다. 언어도 종족도 단일성을 가지지 못한 인도라는 나라는 오로지 신앙의 단일성만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몸과 영혼의 정화를 위해서 정치를 논할 시간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정치에 죽고 살았던 그리스와는 엄연한 다른점이 존재하는 셈이지요. 각종 신들이 난무했던 인도와 그리스를 갈라놓는 점이기도 하지요. 오로지 인간은 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신성으로의 분출을 꿈꾸는 인도인들의 사상을 상상하며 그들에 대해 깊은 명상을 하고 있답니다.

 

장 그르니에는 또 고양이에 대한 깊은 회상을 합니다.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에 대한 깊은 애정과 고양이가 바라는 자유로움 때문에 결국 안락사 시킬수 밖에 없었던 에페소드를 통해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동물에게는 성립될수 있는 고양이의 본능적 행동에서 인간에게는 성립될수 없는 행동의 표본을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요즘 고양이에 대한 책에 대세를 이루던데, 저도 고양이에 대해 조금은 관심을 가져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의 진정한 정신적인 상징을 <섬>이라는 단어로 표현할수 있을 것입니다. 고독할 것 처럼 보이지만 고독하지 않은 정신과 상상속에서의 자연로의 섬으로의 여행을 그는 일상속에서 떠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군중속의 고독에 시달리는 현대인들도 이런 여행을 과감히 떠나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이 <섬>이야기는 두고 두고 읽혀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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