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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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다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자살을 하는 인물이 꼭 있고, 주인공인데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든 이야기가 해피앤딩은 아니므로 세익스피어의 4대비극처럼 비극적으로 끝나는 것도 많이 있다. 하지만 비극과 절망이 가득해 보이는 이 세대에서 좀 더 긍정과 희망이 필요한 시대임을 절실히 깨닫는 요즘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은 절망속에 있지만 희망과 긍정이라는 대리만족을 느껴보고자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성공지침서나 자기 계발서 가 요즘 베스터셀러가 되는 이유일 것이다. 독자로서의 나도 긍정의 메세지를 주는 책을 좋아한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그 속에 든 긍정의 에너지를 누구보다가 강력하게 느껴보고 싶다.

 

자살에 대한 생각을 전혀 안 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아니 한번 정도는 모두 해보았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고쳐지지 않는 자신의 성격때문에, 혹은 나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때문에, 돈이 없어서, 직장을 잃어서 아니면 사회적으로 큰 비판을 받는 경우 자살을 생각하고 직접 자살을 하는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을 우리는 쉽게 보아왔다. 이 소설 속에서도 등장인물의 독백으로 자살은 순간 마음의 평정이 깨져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했다. 마음의 평정이 깨졌을때 자살을 생각해보기는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말짱한 정신으로 많이 생각해본뒤 자살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살을 하고자 12월 31일 영국 런던의 토퍼스 하우스 옥상에 네 사람이 모인다. 이들의 자살동기중에는 정말 개인적으로 인정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순간적인 충동으로 자살하고자 하는 10대 소녀도 있다. 제스는 교육부 장관이라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언니의 행방불명으로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해 소외감을 느끼고, 그 사랑을 남자친구에게 몰입하다가 실연당하게 된다. 10~20대의 젊은 시절에는 이런 이유가 죽고 싶은 절실한 이유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조그만 멀찍이 떨어져 생각해본다면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나면 되는 것이고, 부모와 깊은 대화를 시도해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깨달음이 없는 한 이런 시도를 하기가 쉽지는 않다.

 

50대의 중년여인 모린은 젊은 시절의 순간 적인 실수로 중증장애아를 낳게 되고 그 아이를 키우다 보니 집안에만 갇혀 살아 꿈도 희망도 없이 시간을 보내는 가련한 여인이다. 그녀는 자신이 아들이 죽었으면 좋겟다고 바라기 때문에 더욱 슬퍼지고 비참해 했다. 하지만 이 모린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를 낳자마자 포기하고 입양 보내거나 기관으로 보내버리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모린은 20년동안 그 아이에 대한 부모의 역할을 열심히 해온 양심적인 사람이었다. 이 모린이 작가 닉 혼비의 투영 인물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닉 혼비의 아들 중에 중증 자폐를 앓는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아빠가 바로 작가이기 때문이다. 모린은 수줍어하고, 말이 많지도 않은 연약해 보이면서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는 여인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가장 강인한 심리를 가지고 가장 객관적으로 네명의 상황을 판단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가장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 처럼 보이는 제스도 네명의 동질의식을 갖게 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고, 네명의 가족 모임까지 주선하는 등의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가장 능력있어 보이는 유명 토크쇼 사회자였던 마틴도 본능적인 성욕을 이기지 못하는 남자로 나오지만 자살학자의 말을 내놓고 90일만 더 살아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음악을 사랑하여 록 밴드가 해체 되는 날, 여자 친구도 떠나간 제이제이는 결국 여러 사람들과 만나는 동안 자신에게는 음악이 없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람임을 인식하고 길거리 연주가로 나서 새로운 삶을 모색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좀더 능력있어 보이는 길거리 가수 때문에 힘들고 포기 하고 싶어 지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게 된다. 90일 동안 많은 일들이 이들 네명한테 일어나고, 좀 억지로 끼워 맞추기 식의 일의 진행이 유치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항상 '가벼움'을 소재로 삶아 작품활동을 해오던 닉 혼비가 무거운 소재를 적절한 위트와 유머로 가볍게 자살에 대한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374 90일이 거의 다 끝나가고, 마틴이 말한 자살학자에게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상황이 바뀌었다. 상황은 그렇게 빨리 바뀌지 않았고, 그렇게 극적으로 바뀌지도 않았으며, 우리가 상황을 바꿔보려고 많은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네 등장인물의 상황이 90일이 지난후 크게 변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계속 실패한 삶처럼 보일지라도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변화될 거 같지 않은 시간과 상황들이 보이지 않게 천천히 바뀌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383 우리는 그걸 확인하게 위해 런던아이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마틴말이 옳았다. 움직이고 있지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을 것 같았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닥친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 현대인의 무관심과 비정함의 문체화가 바로 작가 닉혼비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서로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우연히 토퍼스 하우스에서 만나 공감을 느끼고, 슬픔을 공유하면서 자신의 삶외에 다른 이의 삶에 참견을 하는 일이 이 소설의 주된 스토리인 것이다. 그러니 남에게 참견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참견이 어떨때는 무척 고마운 충고로 받아 들여져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378 우리는 참견할수 있어요. 참견하는 것도 과정의 일부라고요. 우리가 해야 할일은 자살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런 다음에는 어떻든 상관없어요. 우리가 누군가를 말린다면 신들의 말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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