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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평점 :
"면도날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나." 카타 우파티샤드 라는 고대 인도의 철학서에 나오는 말에서 몸 선생님은 <면도날>이라는 제목을 생각해 냈다. 그냥 단순히 면도날이라는 제목만 봤을때는 우리 아들 같이 "엄마 , 이책 추리 소설 아닌가요?"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면도날에 의한 살인사건 이런 것들이 연상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간단히 말하자면 미국 청년의 구도적 여정을 담은 책이다.
서머싯 몸의 3대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달과 6펜스> <면도날>의 하나로, 달과 6펜스에서도 작가로 등장하는 화자가 폴 고갱의 재현인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을 조명 해 나가는 형식과 유사하게 전개 되고 있다. <면도날>에서는 작중 화자가 직접 서머싯 몸의 이름을 가지고 등장해 <래리>라는 청년과 <엘리엇>이라는 중년 신사를 대조적으로 그리면서 '인생을 최대한 쓸모있게 사는 법'에 대해 각자의 방법으로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고 보면 된다. 면도날에서 작중 화자로 서머싯 몸은 주인공들의 삶에 조언과 상담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인물로 묘사되어 지고 있다. 래리의 약혼녀 였던 이사벨은 작가인 몸 선생님을 상식과 분별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래리 데럴 이라는 일리노이주의 미국 청년이 비행사로서 1차세계대전에 참여 했다가 팻시라는 동료가 자기 대신 죽어 고깃덩어리로 변해 버리는 것을 목격한 뒤로, 방황을 하게 된다. 그는 신에 대해, 자기 존재에 대해, 삶과 인생과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방랑을 떠나 프랑스의 탄광과 수도원, 독일의 농장, 스페인과 이탈리아 곳곳을 거쳐 인도의 아슈라마로 이어지는 구도적인 여행을 해나간다.
p. 84 인생이란 대체 무엇인가, 산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가, 아니면 삶이란 눈 먼 운명의 신이 만들어 내는 비극적인 실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p. 116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 하지 않는지 확실히 알고 싶어.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지도 . 또 내게 불멸의 영혼이 있는지, 아니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지 알고 싶어........
이런 것에 대한 답을 찾고자 결혼도 마다 하고 떠나려는 래리에게 이사벨은 <그런 질문들은 수천년전부터 사람들이 물어 온 것들이잖아. 만일 해답이 있다면 벌써 밝혀졌을 거야 >라고 매정하게 말한다. 하지만 래리는 <한편으로 생각하면 사람들이 수천년 동안 그런질문을 던져 왔다는 것은 그런 의문을 품지 않을수 없다는 뜻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해. 게다가 답을 찾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야.>라고 반박하면서 떠나간다. 이런 여정에서 래리는 평화와 자유와 행복을 누렸다고 이야기 한다.
p. 125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할수 있는지 당신에게 알려줄수만 있다면....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면서 느낀 행복감과 만족감을 알지 못하는 이사벨에게 위와 같은 안타까움을 래리는 표현하기도 했다. 이사벨은 래리와 다르게 물질적인세계속에서의 안정과 행복을 추구해 그레이 와 결혼하게 된다.
래리는 결론적으로 몸선생을 만나 자신을 대신해 죽은 동료의 죽음을 보면서 신은 왜 악이라는 것을 창조했는지의 해답을 인도의 윤회설에서 찾고 있다.
p.438 윤회가 세상의 악에 대한 설명이 되는동시에 그것을 정당화한다고 생각 해본 적 있으세요? 우리가 겪는 나쁜일들이 전생에 지은 업보(카르마)라면 그저 단념하고 견뎌내려고 노력하지 않을까요? 그 과정에서 선을 추구하면 다음생에서는 고통이 줄어 들거라는 희망을 가질수도 있고요. 하지만 자신이 겪는 악이이나 불행은 비교적 쉽게 견딜수 있죠. 약간의 강인함만 있으면 되니까요. 반면 다른 이들에게 일어나는 나쁜일들 종종 너무나도 부당하게 보이는 일들은 더 받아 들이기 힘들죠. 그 런데 그것이 과거의 업보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요?물론 애석한 마음도 들고 고통을 분담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겠죠.
결국 래리가 <이 기나긴 모험을 시작한 건 결국 악이라는 문제 >때문이었고, 래리는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아름다운 꿈을 꾸는 몽상가>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또한 래리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결국 자신이 연금으로 받던 돈을 포기하고 , 돈을 속박으로 여기면서 택시를 몰면서 택시를 탁발 수행자의 지팡이와 탁발 그긋으로 여기면서 살아 가지만 그 속에서 행복과 자유를 만끽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사벨과의 약혼이 파기 되면서 그는 혼란 스러워 하지만 곧 그의 구도여행의 해답을 찾게 되고, 그가 배운 <암시적 치료>로 그레이의 두통을 치료 해주고, 해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던 소피 맥도널드의 영혼 구원을 위해 그녀와 결혼 까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이사벨의 계략으로 결혼이 무산되어 소피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 하게 된다.
여기서 또 한 사람의 구원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화가의 누드모델과 창녀로 활동하던 수잔 루비에가 아시유 고뱅이라는 사업가를 만나면서 안정을 찾게 되고 , 새로운 삶인 화가로서의 등단도 하게 된다.
인간들이란 각자의 영혼과 물질적인 상황에 따라 반려자를 만나게 되고, 서로에게서 구원을 얻게 된다는 또 다른 해석을 할수 있게 해준다. 래리와 대조적인 인물로 묘사되어 지어 지고 있는 엘리엇 템플턴은 < 세상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속물>로, 세속적인 사람으로 묘사 되어 지고 있어 각자의 행복이 물질에 있는지 정신에 있는지 생각해 보도록 작가는 유도하고 있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본다. 이 <면도날>이라는 책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바로 <나의 행복은 진정 물질적인 삶에 있는가? 아니면 정신적인 삶에 있는가?> 하고 반문을 해보게 하는 영혼의 책을 만났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