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2 - 한니발 전쟁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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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권에서는 로마건국인 기원전 753년부터 포에니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기원전 270년대 까지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1권의 소제목 처럼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이 실감나게 로마인은 차근차근히 주위 부족과 나라를 로마연합으로 끌어들이고 동화시켜 나갔고, 엄격함보다는 그들에게 관용과 개방성을 베풀어 나갔다. 그러한 로마인의 노력이 '한니발'이라는 영웅이 이탈리아 내륙까지 쳐들어 와서도 이탈리아 반도를 무너뜨리지 못했던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포에니 전쟁의 영웅인 '한니발'은 지중해를 건너 로마로 쳐들어가는 해로를 이용하지 않고, 어쩌면 무식하다고 보이는 육로를 통해 이탈리아 북부를 공략해 들어갔다. 그리고 '로마연합'을 무너뜨리기 위해 도시국가들을 회유책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로마연합에서 이탈해 나가는 도시국가는 한두 국가 밖에 되지 않았다.포에니 전쟁이란 페니키아인들과의 전쟁이라는 뜻으로 카르타고라는 나라가 페니키아인들의 세운 식민도시국가였다. 그런 카르타고가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는 부강한 나라로 성장해 있었고, 또한 카르타고에 맞먹게 성장한 로마대국이 지중해를 앞두고 버티고 있었다. 잘 알고 있듯이 포에니 전쟁은 3차전쟁까지 일어났던 것으로 마지막 3차 전쟁의 막바지에서는 결국 카르타고가 멸망하고 만다. 그래서 카르타고라는 나라는 고대국가로 저멀리 사라지고 만다.

포에니1차 전쟁은 카르타고와 이탈리아 반도 사이에 있는 시칠리아 섬의 영유권을 두고 싸운 전쟁이다. 카르타고의 식민 도시였던 시라쿠사가 로마의 동맹국가 였던 메디다를 침략한데 대해 지원군을 보낸 것이 카르카고와 로마의 정면 대결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은 로마의 승리로 시칠리아 섬도 로마의 영토로 편입이 된다.

포에니 2차 전쟁은 한니발이 1차 전쟁에서 전사한 자신의 아버지 하밀카르를 위한 복수로 전개된 전쟁이다. 2차 포에니 전쟁을 '한니발 전쟁'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한니발은 기존의 로마군들의 펼치던 정면돌파의 전술방식과는 다른 전략과 전술의 책략 싸움이 유명하다. 그런 전쟁 방식을 잘 몰랐던 로마군들은 한니발의 천재적인 전략에 꼼짝없이 이탈리아 내륙을 유린당하는 치욕을 당하고 만다.

하지만 한니발이 처음부터 생각했던 계획인 '로마연합'의 분열은 일어나지 않았고, 한니발은 궁지에 몰리게 된다. 이틈을 타서 등장한 새로운 로마의 영웅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이다. 한니발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전술을 공부했던 전설이 있었듯이 10여년 동안 한니발의 전술을 어설프게 흘려 듣지 않고 공부를 해 온 스키피오가 한니발의 적수로 등장한 것이다. 2차 포에니 전쟁의 8회전 중에서 한니발이 구사한 '칸나이 전투'의 전술은 뛰어난 카르타고 기병들의 우수성과 적을 삼면에서 포위하는 포진을 구사하는 것이었다. 이 칸나이 전투 양식은 오늘날도 육군 사관학교에서 꼭 배우고 지나간다는 전법의 하나란다. 역사를 배워서 남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당당하게 등장한 스키피오는 자신이 한니발에게서 배운 전법을 바이쿨라 전투와 일리파 전투의 에스파냐 전선에서 활용하게 된다. 결과는 역시 승리였다. 에스파냐 전선의 승리에서 탄력받은 젊은 영웅 스키피오는 또 다른 계획인 아프리카 전선으로 쳐들어가고자 원로원을 설득하게 된다.

 

321 성공자이기 때문에 완고한 사람은 변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되어도, 성공으로 얻은 자신감때문에 다른길을 선택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근본적인 개혁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과거의 성공에는 가담하지 않았던 사람만이 달성할 수 있다. 흔히 젊은 세대가 근본적인 개혁을 성취하는 것은 그들이 과거의 성공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키피오와 원로원들 중에 과거 전쟁에서 성공한 보수파들과의 정쟁을 묘사한 글이다. 근본적인 개혁을 과거의 성공에 가담하지 않는 스키피오가 새로운 방법을 들고 나와 아프리카로 향하게 되어 승리를 이끌어 낸다. 이 승리로 한니발을 이탈리아에서 끌어내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로마인들은 기쁨에 축제를 벌인다. 

스키피오와 한니발의 정면 대결인 '자마 전투'가 벌어지고 한니발은 자신이 펼쳤던 전법에 의해 고스란히 당하고 만다.

 

358 한니발은 로마인의 허를 찔렀지만, 스키피오는 그 카르타고인의 허를 찌르는 전술을 전개했다. 진정으로 뛰어난 제자라면, 스승의 방식을 모방하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을 반드시 독창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잊지 않는 법이다.

 

366 물론 스키피오가 이 전술을 구사할수 있었던 것은 게다가 한비발을 상대로 구사할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재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술을 생각해 낸것은 어디까지나 한니발이었다.

 

가르쳐준 스승보다 더 독창적인 방법으로 모색해낸 스키피오의 승리였다. 이 정도에서 로마와 스키피오는 카르타고에게 '온건한 제국주의'를 내세워 카르타고의 자취권을 인정하지만 카르타고 옆에서 성장한 누미디아를 침공한 것이 로마의 승인없이 어떤 전쟁도 일으킬수 없다는 조약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이것을 방관할수 없었던 로마는 결국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양아들인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를 카르타고로 보내고, 카르타고는 함락되고 만다.

 

452 기원전 146년은 로마가 온건한 제국주의에서 엄격한 제국주의로 방침을 바꾼 해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된다..... 그리스가 독립을 잃은 것은 그리스인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 동시대의 역사가 폴리비오스도 카르카고의 멸망에 대해서는 카르타고인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카르타고의 함락 외에도 코린트와 마케도니아의 멸망이 보여 주듯이 점점 로마는 엄격한 제국주의로 변모해 간다. 로마인들이 스스로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니라 그 밀미를 그리스인들이 주었다고 하더라도 이후의 로마인은 한니발 전쟁 이후 전쟁 기계의 모습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454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즉 폴리비오스의 말에 따르면)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적국의 이런 운명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455 "폴리비오스 지금 우리는 과거에 영화를 자랑했던 제국의 멸망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순간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이라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친구아지 사학자로 따라 나섰던 역사가 폴리비우스의 말에 의하면 영화를 자랑햇던 대국의 멸망 앞에 눈물 흘리는 스키피오 아이밀리아투스의 말이 그 이후의 로마를 떠올리게 되니 약간의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역사는 반복이라 했던가 .

제국의 성장과 번영 이후에는 부패와 멸망이 함께 한다. 과거 트로이,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그리스 가 그랬듯이 천년후의 로마도 그런 역사의 전철을 밝게 되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이 한순간에 보이는 평화라는 말이 되는데, 앞날의 미래를 어떤 누가 장담하겠는가. 과거를 발판 삼아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것이 오늘의 우리가 할일 일 뿐이라는 것을 새삼 또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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