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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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역시 재미가 있다. 진작에 이른 즐거움을 몰랐을까? 역사는 오락이다. 이런 모토가 맞아 떨어지고 있다. 하기야 이런 이야기는 역사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국한 된 것일것이다. 젊은시절에 좀 더 빨리 역사가 즐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뒤늦게 깨닫고 알게 되는 내 천성탓인지 이제야 세상 돌아가는 것이 보이고, 과거의 쳇바퀴가 보이기 시작했다.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치부해 버리고 전쟁을 좋아하는 고대인, 중세인들을 비판만 하고 세심하게 살펴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나라마다 똑같아 보이는 역사가 달라 보이고, 그 역사 속에서 현실을 읽어 낼수 있게 되었을때 역사의 오락성을 깨닫는 순간이 아닐까 한다.

1-2년전에 남편이 열심히 읽고 있던 로마인 이야기가 나한테는 너무 멀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시기가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늦바람이 든 역사 공부 덕분에 로마에 대해 호기심을 발동시켜보았다. 세계사 공부와 더불어 읽게 된 로마인 이야기,,,, 기원전 753년에 로마가 건국되었는데, 그들의 역사는 지금의 정치체제가 본받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어떻게 2천 5백여년전에 정치로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나라들의 정치가들이 깨닫지 못했던 정치를 그들은 펼치고 있었을까?
시오노 나나미 라는 작가를 살펴보면 경이롭기 까지 하다. 현재 74살이 된 할머니이시다. 그런데 아직도 <십자군 이야기>라는 역사 시리즈를 연재중에 있으니 그녀의 역사 사랑은 죽어야 끝이 날 것 같다. 1992년부터 시작해서 1권부터 15권의 <로마인 이야기>를 끝낼때 까지 그녀는 로마에 살고 로마에 울었고 로마에 웃었을 것이다.
그녀가 로마사에 흥미를 느끼게 해준 역사가를 꼽고 있다. 폴리비오스,플루타르코스, 다오니시오스 는 그리스인들이다. 로마에 의해 그리스가 멸망하고 왜 비슷한 정치형태를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와 로마의 행방이 이렇게 달라 졌을 까하는 의문에서 그리스출신 역사가들은 로마사에 빠져든다. 로마가 기원전부터 시작해 기원후 까지 1000여년 동안 유럽을 통치하고 장악할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 시오노 나나미는 고대 로마인에게서 그 비밀을 찾아 낸다.

배타적인 그리스인들의 단합하지 못했던 민족성에 비해 고대 로마인들은 새로운 부족들에 대해 관대했고, 관용을 베풀어 그들에게 로마시민권을 주는데 인색하지 않다. 로마는 하루동안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기 까지 500여년동안 차근차근 피정복인들을 동화시켜 나가서 자신의 문화로 흡수하는 그들의 개방성을 들고 있다. 그리스인이 아니면 귀족자리도 시민권도 허용하지 않았던 그리스인들에 비하면 이들의 개방성은 현대의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못따라가는 개방성인 것이다.
여러 문명을 돌아 보면 전쟁에서 패했을때 그들의 자세에서 그나라의 존재 유무가 정해짐을 볼수 있다. 전쟁에 패하여 혼비백산한 민족은 대부분 멸망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하지만 로마는 달랐다. 고대 로마인들은 패배라는 실패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로마인은 '천천히, 그리고 착실하게' 나아가는 방식>을 고수했다.

 

225 로마인은 패배하면 반드시 거기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기존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개량하여 다시 일어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개혁으로 로마는 귀족과 평민의 대립관계를 귀족이 평민을 끌어 안는 관계로 바꾸었다.

 

기원전 390년 착실히 성장해 나가던 로마는 켈트족의 침입을 받고 굴욕을 당하고 만다. 그에 대한 원인을 귀족과 평민간의 계급의 불협화음인것을 감지하고, 기원전 367년 리키니우스 법을 제정하게 된다. 이 법은 귀족만이 집정관에 임명되던 관습에서 벗어나 평민도 귀족과 대등하게 선거를 통해 임용될수 있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이후 평민들은 로마 정부의 요직을 다수 차지 하게되어 발언권을 주장할수 있었다. 로마는 이당시 부터 농성이라는 시위 문화가 정착되어 무조건 이들을 저지하고 탄압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주장을 들어 주려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귀족이 평민들 끌어안고 가는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기원후 하고도 1800년이 지났던 우리나라 조선 후기 세도정치 시대와 비교하면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는 정치제도 들이었다.
252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방원정에 보낸 세월은 10년에 불과하다. 로마인은 느리긴 해도 착실하게 나아간다는 것이 그리스인과 다른 점이다. 정복하는데에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지만, 일단 정복한 지방을 유지하는데에는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주위 도시국가들을 정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리스와 로마의 극명하게 다른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을 해서 이룬 땅은 어마어마하게 넓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리더십과 전투력에 감복할 만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나서의 마케도니아는 어떻게 되고 마는가? 하루 아침에 그 나라들이 무너져 분열되고 마는 것을 볼수 있다. 하지만 로마는 정복해 나가는 과정은 정말 힘들어 보인다. 건국이 기원전 753년에서 기원전 270여년에 이탈리아 반도 만을 통일 하는데, 거의 500여년이 걸렸으니 말이다. 이런 역사적 과정에서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았다>라는 말이 나오고 그 로마가 천여년을 지속하여 유럽을 지배할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한다.

 

고대 로마인은 왕정을 극히 싫어했던 민족이었다.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한 기원전 753년에서 에트루리아 왕정을 무너뜨리는 기원전 509년을 따져보면 250여년을 보낸 로마인들은 곧 브루투스에 의해 공화정이 시작된다. 집정관 2명과 원로원들이 이끌어 가는 공화정 시대는 민주 정치가 아닌 과두정치라고 한다. 다수의 민중이 다스리는 정치 체제가 민주주의 지만 과두정치는 귀족들이나 일부 지배계급이 민중을 이끌어 가는 정치제도 이다. 이것은 그리스인들의 선거권은 개별적인 것이었지만 로마는 백인대라는 조직속에서 일치하는 의견을 하나로 만들어 내는 것으로 개별적인 선거권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면에서 과두 정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과두 정치형태를 이루고 있던 로마가 선진 정치의 본보기인 그리스에 비해 더 효율적으로 통치 해 나갔던 것을 보면 로마의 관용과 포용성, 개방성이 진정 로마가 만들어 졌던 에너지 였던 것이다.

아직 1권으로 시작인 단계이지만 로마의 과거를 들여보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뒤늦게 나마 역사가 오락임을 자부하고 싶은 분들은 시오노 나나미라는 작가의 매력속으로 같이 빠져 들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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