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기의 기적 - 생각을 멈추고 여유를 찾는 뇌의 비밀
스리니바산 필레이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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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과잉인 시대, 집중마저 과잉이다.
집중의 과잉에 의문을 제기한다. 《멍 때리기의 기적》

 

철학자 한병철씨가 《피로사회》에서 '긍정성의 과잉'이라는 표현을 했다. 긍정으로 여겨지는 집중, 집중 또한 과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과잉인 시대. 모든 과잉은 항상 문제를 야기한다. 이제는 집중마저 과잉이다. 사실 잘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집중'이라는 단어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긍정적인 까닭이다. 심지어 "집중의 과잉은 좋은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집중 역시 과유불급(過猶不及)을 피해갈 수 없다. 집중의 과잉은 우리에게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실수를 허락하지 않고 쉼을 허락하지 않는다. 집중의 과잉은 실수를 실수로만 내버려둔다. 그렇게 실수는 버려진다. 또한 쉼은 나태함으로 해석된다. 다르게 생각할 여지를 배제해 버리는 것이다.
   집중의 절정은 멀티태스킹 능력을 우러러보는 현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빨리 일을 처리하면 다른 시간을 활용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멀티태스킹은 오히려 쉼을 허락하지 않는다. 뇌를 혹사시키기 때문에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게 만든다. 먼지처럼 피로가 쌓여 정지되어 버린다.

이러한 집중의 과잉은 균형을 잃은 것이다. 사람에게 이성과 감성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성과 감성 중, 어느 한 쪽만 우세한 것이 문제를 야기한다는 사실 또한 안다. 치우친 경향성이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뇌의 작용에서도 동일하다.
    사람의 뇌는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상호작용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의식의 존재'만' 알 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집중, 즉 의식에만 크게 신경을 쓰고 계발하려고 노력한다. 사회 생활에서 크게 강조하고 자주 언급되는 말이 '집중'이기 때문이다. 집중하지 못하면 산만한 문제아처럼 보는 인식도 한몫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멀티태스킹을 숭배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우리는 집중에 대해서만 듣게 된다. 그리고 집중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 이런 이유들에서 무의식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집중이 미덕처럼 여겨진다고 해서, 집중의 과잉에 대한 문제인식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멍 때리기 대회'가 열려 집중의 과잉에 대해 재고하게 만들었다. 쉼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무언의 브레이크였고, 동시에 스스로를 위한 선물이었다. 실제로 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고백이었다.
   비집중하는 것을 TV나 동영상을 보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의도적인 쉼은 일과가 끝난후 TV나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TV나 동영상을 보는 것은 뇌에게 쉼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게 만드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대두되면서 창의성은 필수요소가 되었다. 창의성은 어떤 것과 어떤 것 사이의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사이의 공간(term)을 늘릴수록 창의력은 증가한다. 많은 연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것은 비집중의 원리 중 하나이다. 의도적으로 관련없는 것을 끼워넣음으로써 공간(term)을 만들 수 있다. 이럴 때 뇌가 과부하 걸리지 않고 즐길 수 있다. 오히려 양은 늘어났지만, 효율은 더 증가하는 것이다. 피로 때문에 뇌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활력이 생긴다. 멀티태스킹의 저주에서 벗어나 슈퍼태스킹이 가능한 것이다.
   집중과 비집중의 차이, 비집중을 위한 의도적인 노력들을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의도적인 멈춤이 새로운 시간을 허락할 것이다. 멈춤의 힘이 시간을 재창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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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과 소설가 -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
최민석 지음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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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고민이라 디테일한 질문과
소설가의 디테일한 답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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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과 소설가 -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
최민석 지음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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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고민이라 디테일한 질문과
소설가의 디테일한 답변의 만남

 

책의 큰 주제는 자아, 사랑, 관계, 미래로 4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4개의 주제 안에서 총 44개의 고민에 대한 질문이 실려 있다. 그리고 각 고민에 대한 저자의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답변이 풀어져 있다. 저자가 구사하는 가벼움과 진지함의 조화를 볼 수 있다.
   고민에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타인이 볼 때는 별 일이 아닐지 몰라도, 본인에게는 큰 문제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민을 들어줄 때는 '다 안다', '나는 이미 경험했다'는 태도로 들어서는 안 된다. 유쾌하게 긴장을 풀어주면서, 진지한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답을 해줘야 한다. 그런 자세가 저자의 답변에 있다.
      우리 모두는 고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고민만 하지는 않는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살아가기도 한다. 어찌보면, 고민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고민을 즐긴다는 것이 아니라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시도하고 실험한다는 말이다. 이런 시행착오는 개인적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의 답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삶에서 실험해본 것들을 풀어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고민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44개의 고민 중 10개의 고민만 리뷰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선택한 질문들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주 접한 고민들이다. 놀라운 사실은 비슷한 질문들을 자주 접한다는 점이다. 아마 비슷하게 이런 질문들을 접하지 않을까 싶다. 혹은 이런 질문 가운데 있거나 먼저 질문을 만나보면 좋을 듯하여 선택하였다.(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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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 홍승희 에세이
홍승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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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을 위한 낙인, 결집을 위한 배척.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에 너그럽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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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 홍승희 에세이
홍승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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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을 위한 낙인, 결집을 위한 배척.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에 너그럽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안정을 유지하는 방식은 건강하지 못한 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안정을 위해 '안정적이지 않음'을 설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불법'을 규정함으로써 질서를 유지시킨다. 이건 국가의 모습에서만 존재하는 현상이 아니다.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를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순간, 그 사람을 제외하고는 하나 되기가 수월해진다. 뒷담화의 문화, 즉 꼬리표를 붙이는 문화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다름'에 대해 인정한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너무 쉽게 '다름'을 배척한다. 인정이라기 보다는 존재의 확인에 가깝다. 수용한다라는 표현보다는 구분짓다의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다름을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회, 이것이 더 이상하다. 다름을 이상함으로 치부해, 안정을 유지하는 사회 이것이 더 이상하다. 다양성보다는 획일화를 통해 유지되는 사회가 더 이상하다. 다름을 시도하기보다 다름에 대해 여러 꼬리표 붙이는 게 익숙한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경험이 중요하다 말하면서, 경험의 다양성에 대해 수용할 수 있는 폭은 좁다. 너무 좁다. 그래서 우리(US)가 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날카롭기만하고 폭넓지 못하니 US는 VS가 된다.
   대립을 통한 결집, 배척을 통한 안정을 꾀하는 모습은 동물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기 위해 거세시키는 작업과 다름없다. 매끄러움 흐름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우리는 무엇을 대가로 지불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불화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화없이 흘러가는 모습 이면에는 불법화를 통한 무분별한 억압이 있다. 합법과 불법을 왜 정하는가?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가? 그리고 불법을 규정함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인가? 등, 거세시키는 시도들에 대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닌 경우가 더러 있다.
   다양성에 대해 너그러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로 변하지 않는 전통, 그리고 굳어져버린 폭력의 일상에 너그럽다. 이런 너그러움은 누구를 위한 너그러움인가. 이런 너그러움은 늑대에게 너그러운 것이다. 그것은 양에게 잔인한 것과 다를 바 없다.
   항상 약자가 양이 되고 늑대가 강자가 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이치겠지만, 사람이 사는 사회는 동물의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람은 양도 아니고 늑대도 아니다. 같은 사람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사람은 규제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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