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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없음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평점 :
장은진의 소설은 처음이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인상깊게 읽어서 더욱 기대됐던 작품이다.(특히 블로그 이웃분들이 많이 읽으셔서 궁금하기도 했고) '그게 온다고 한다.' 책의 시작과 끝에 쓰여진 문장이다. 그게 온다. 그건 뭘까? 회색인과 회색비, 회색 눈, 붉은 눈, 발작적인 지진, 그림자가 사라진 사람들. 이 모든게 '그것' 일까? 나는 계속 도대체 그게 뭔지 궁금했다. 지구가 점점 병들어 종말이 다가온다는 소문이 돈다. '그게 온다.'. 그런데 '그게 뭔지', 그 바깥의 것들보다는 고요한 컨테이너 박스 안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와 해인과 반. 셋이 꽉 채운 컨테이너박스는 고요하다. 밖과는 전혀 반대다. 바깥은 눈이 오고, 몰아치고, 폭군들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해인의 가족은 회색인을 쫓아가기로, 아니 어쩌면 회색인이 되기로 한다. 그러나 해인은 남는다. 반과 그도 남았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통의 재난 소설과는 다르게 하루하루의 사투를 치열하게 그리기보다는 조용히, 묵묵히 그게 올지를 걱정하며 컨테이너 박스 안에 숨어있는 그들의 이야기.
언뜻 <눈 먼 자들의 도시>가 생각 나기도 했다. 도덕과 가치가 떨어진 세상. 평범한 사람이 회색인이 되고, 때리고 죽이는 세상. 그러나 <눈 먼 자들의 도시>는 백색질병에 적응하고, 스스로 일어서 싸우기도 하며, 보다 재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니는 반면, <날짜 없음>은 정적 그 자체다. 내가 계속해서 고요함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느낌의 소설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당황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잘 생각해 보면 재난보다는 로맨스소설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세계관 보다는 감정선이 더 중요한 소설이다.
반과 그와 해인은 컨테이너 박스 밖을 거의 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찾아와서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책을 읽으며 이제 누가 노크를 할까 궁금했다. 한명 한명이 기억에 남는데, 죽으려고 찾아온 노인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용건은 맡긴 구두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겉으로는.. 사실 그는 죽기 위해 그곳에 왔다. 죽음을 알리러 왔다. 그는 맡긴 구두를 찾아가지 않았고 그 구두를 태우는 내용은 씁쓸했다. 분식집 아줌마처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고, 회색시의 눈과 비가오는 날씨에 잘 망가지는 우산을 파는 사기꾼도 있었다. 다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있었다. 그리고 스키를 타고 회색인을 따라가는 평범한 사람도 있었다. 그는 끝을 봤을까. 궁금했다. 모든게 궁금하고 의문이지만 뭐 하나 해소되는 내용이 없다. 작가는 이렇다 하고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그냥 정말 내가 그 컨테이너안에 있는 사람인 것만 같다. 바깥의 무성한 소문들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믿지 않을수도 없다. 나는 나가지 않을 것이므로. 그저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조금 비현실적인게 있다면, 컨테이너에 불이 계속 들어온다는 것, 계속 어딘가에서 음식을 가져다 먹는다는 것, 씻는 장면은 한 번도 안 나온다는 것. 등등.. 사실 이런 것들은 조금 현실적이지 못했단 생각이 든다. 왠지 해인과 그의 이야기들을 로맨틱하게만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어 그런 것 같기도하고...
그와 해인은 연인이었다. 아니, 연인이었을까? 그들의 관계조차 명확하진 않다. 썸 이상 연인 이하였던 것 같다. 그들의 로맨스에는 손잡기, 포옹하기 등 평범한 연인이 할법한 스킨십조차 없었다. 그래서 더 절절하다. 서로 존댓말을 하고 끝이 올지 그게 올지를 걱정한다. 그를 너무 사랑하는 해인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들의 관계는 뭐였을까. 단추를 빨간실로 달아 자신을 생각하게 하고 싶다는 해인의 마음도 알겠고, 그도 해인을 좋아했다는 것도 알겠다. 그런데 그들은 어떤사이인지 궁금증만 남았다.
결국, 그게 왔을까. 그건 뭘까. 또 궁금증만 남는 결말이었다. 그건 뭐였을까.
리뷰를 쓰다보니 명확한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인데, 난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누군가는 아무런 부연설명이 없는 작가가 불친절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나의 상상력으로 더 재밌는 소설을 완성 시킨 것 같다. 작가가 설명하지 않은 공백을 내가 메워서 좋았단 생각이 든다. 장은진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