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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 - 딸의 우울증을 관찰한 엄마의 일기장
김설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는 23살 딸을 가진 엄마다. 딸은 우울증에 걸려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고 엄마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숨죽여 일기를 쓴다. 지켜보다가 한마디 해서 싸우기도 하고, 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화내기도 하고, 딸처럼 울다지쳐 잠들기도 한다. 가족 중에 우울증이 심한 사람이 있다는 건 지치는 일일 것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내게도 엄마가 있고 딸이 있으므로 이 책속에서 나는 딸이었다가 작가였다가, 독자로서는 엄마였다가 딸이었다가를 반복했고, 이윽고 내 엄마와 내 딸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난 어떤 엄마였나. 어떤 딸이었나.
이 일기장은 꽤 많은 부분들이 후회와 반성으로 뒤덮여있다. 딸을 이해했다가 화를 냈다가 신세한탄도 했다. 정말 일기장이었다. 어쩌면 치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들을 적어냈다. 이제는 드러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용기가 대단했다. 자신이 딸을 키우며 우울했어서 그때 받은 영향으로 딸이 지금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선 많이 안타깝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며 우울한 적 없는 엄마가 얼마나 있을까. 최근 짜증이 늘어버린 나를 반성하면서 내일은 딸에게 더 좋은 말을 많이 해주고 사랑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와 통화할 일이 생긴다면 엄마에게도 사랑한다고 해야지. 하고 싶은 말은 때를 놓치면 더 하기 힘든 법이다.
작가는 우울증을 일부 이해했고 자신도 느끼는 감정이라고도 했다. 그렇지만 딸의 감정변화나 무기력을 매번 이해하지는 못했다. 특히 우울증에서 오는 무기력을 게으름으로 오해하기도 한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지난 날 아무것도하지 않은 채 누워만 있었던 나도 사실은 무기력했던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 거였다. 애가 둘이나 있고, 해야할 집안일도 많은데 그랬던 날들이 있었다. 지금보니 우울해서 그랬던 것 같다.
자식의 우울증은 엄마의 잘못인가? 되묻는 저자. 딸만큼 우울해보이고 안쓰럽다. 그래도 딸의 우울증이 딸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지켜봐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는게 대단해보이기도 했다. 아들러가 그랬다. 가족도 남이라고. 우리는 모두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산댔다. 우리는 가족이 당연하고 가끔 소유한다고도 생각하며 사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다. 모두 타인이고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 지켜보는 일이 끔찍할 때도 더러 있겠지만 작가는 그걸 잘 해내려고 애쓰는 중인 것 같았다. 딸의 우울과 별개로 자신의 행복은 분명 있다는 고백이 그녀에게 작은 숨통처럼 보였다. 딸은 행복해지려는 엄마를 보며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쉴 틈 없는 계획표 속의 삶을 살았던 아이는 23살에 우울증에 걸렸다. <엄마, 나 고등학교 자퇴할래요>가 생각난다. 아이가 하고 싶었던 것은 그림이었다는 것도, 영재교육, 모범생이었던 아이가 갑자기 모든 걸 그만두게 된 것도, 엄마의 후회도, 그 이후의 갈등도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다. 결국 나는 이런 결론을 만들어 낸다. 아이에게 삶과 학업의 밸런스만 알려주어도 아이는 스스로 이겨내며 살 힘을 얻으리라는 것. 너무 숨막히는 삶을 독촉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도 얻었다.
의사는 작가에게 딸에 대한 분리불안이 있다고 말한다. 내가 그 말을 들었으면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싶었다. 작가는 알았으니 이제 딸에게서 독립될 수 있을까.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먹는 딸. 작가는 아직도 약이 없어도 나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딸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 하지만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 나는 이제 작가가 딸이 먹는 약이 호르몬에 영향을 미치고 잠이 쏟아지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딸을 좀더 믿으며 자신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이 책 한권이 이들의 삶의 전부가 아닐 것이다. 뒷이야기는 더 희망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