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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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의 일을 쓰다가 모조리 지워버렸다. 자신의 이야기, 그것도 어렸을 적의 일을 쓴다는 것은 보통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나 자신을 보호하고 싶고, 잘못의 원인을 바깥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과도 부딪혀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서 앞으로도 쭉 미워할 예정인 사람들과도 마주보아야 한다. 거기에 감정의 부스러기들을 떼고, 미화된 시간의 먼지를 털어 그대로의 것을 내보이는 일... 도무지 쉽지 않다. 쓰는 사람과 글 간에 적당한 거리 유지에 실패하게 되면, 그것은 푸념이나 하소연을 끄적인 일기에 지나지 않으니까.

 김연수 작가에게 붙어서 그런지, '제과점 막내 아들'이라는 타이틀도 무척 근사하게 들린다. 지방 소도시 제과점의 막내아들이라니 어딘지 모르게 따뜻하면서도 품위있지 않은가... 당시에는 더욱 그랬겠지만, 빵은 여전히 맛있고 세련된 음식이다. 크리스마스라고 미군부대에서 사온 오너먼트들을 달고, 탈지면을 눈처럼 창가에 붙이고, 반짝이는 알전구를 거는 모습이 80년대 보통의 가정집에선 흔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제과점집에선 키우는 개도 그 귀한 카스테라를 먹었다는데. 물론 당사자로선 이런 저런 고충이 있었을 테지만.

  제과점집 막내아들로서의 모습이 잘 나와있는 '뉴욕제과점'을 비롯해서 아홉개의 단편이 하나의 책으로 묶여 있다. 작가의 고향을 연상시키는 소도시의 시장골목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며 , 대체적으로 자전적인 내용이 많은 듯 하다.

 첫번째 이야기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는 글자를 읽는 동시에 영상을 같이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이 함뿍 내린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제과점과, 천천히 가은선을 달리는 기차와, 발이 푹푹 빠질만큼 눈이 쌓여버린 시골마을을 잇는 배경이 무척이나 아스라하고 아름답다. 마지막 장면은 대사와 배경이 어우러져서 맘 속 어딘가 시큰한 여운을 남긴다.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에서부터 마지막까지는 어떤거 하나 콕 찝어 말할 수 없을 만큼 다 좋다. 물론 앞의 이야기들도 좋지만,「똥개는..」부터는 일단 재미가 있어서 중간에 책을 놓기가 어렵다. 특히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 라는 단편은 나에게 왜 그렇게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 하고 적막한 소나무 숲에서 소리높여 묻는 장면이 왜 그렇게도 좋던지. 몇 번이고 다시 돌아와 읽었다. 맘좋은 도라꾸 아저씨와 순정파 삼촌에 따박따박 대거리하는 젊은 조카 셋이 숲 속에서 만담처럼 나누는 대화 안에 뭔가 삶의 굉장히 중요한 것들이 담겨 있는 듯 하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에선 지난 시대(어쩌면 지금도 별다르지 않게)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던 선동되어 정당화된 폭력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 자신의 목숨보다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고 가르치는, 지금 생각해보면 무시무시한 사상이 당연시되던 시절. 생각하지 않고 신념에 몰두하던 그 시절엔 단일화된 사상 안에서 많은 이들이 폭력에 암묵적으로 동의했었다. 다수에 속하지 못하면 때려잡아야 할 간첩 혹은 시궁쥐 취급을 받던 시절, 한가운데에서 살짝 비껴 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요즘 유행하는 아재개그가 연달아 나와서 식겁했던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는, 젊은 나이에 절에 들어와 삼베 수의를 짓는 여자와 어두운 산길을 따라 여자에게 가려는 남자의 이야기다. 초파일의 부산스러우면서도 색색의 연등이 걸린 화려한 절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 선하다.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 하는 지장보살의 말씀은 꼭 예정을 위한 말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김연수 작가의 유머감각, 역시 좋다. 하나만 적어보겠다.

 구름 속에 숨어 있는 B, 5월 5일을 좋아하는 I, 수박에서 귀찮은 것 C, 모기가 먹는 것은 P, 당신의 머리 속엔 E, 닭이 낳은 것은 R, 밤말을 엿듣는 것은 G, 입고 빨기 쉬운 T, 기침이 나올 때는 H, 깊은 밤 골목길 조심해야 할 곳은 D,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U, 바로 너야.

작가는 이걸 쓰면서 웃었을까 궁금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주 크게 웃고 몇 번을 따라 읽었다. 아무래도 병이 깊어진 것 같다.....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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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강
미야모토 테루 지음, 허호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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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오지 않는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잔뜩 쏟아낼 것 처럼 흐릿하고 축축하니 무겁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찌르는 햇빛이 정수리를 굽는다.  요즘 계속 이런 식이다. 여름에 이렇게나 비가 없었던 적이 있었나. 여름하면 무더위와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소나기가 반복되는 고단한 날씨였는데, 덥고 꿉꿉한 공기가 계속 머리를 온몸을 짓누르는 느낌은 사람을 더욱 더 지치게 한다. 매일 무언가 무거운 것을 지고 나르는 느낌이다.

 

 

오늘 오후에는 도서관에 갔다. 하늘이고 물이고 풍경이고 모두 회색빛이라 그리(전혀) 낭만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지간에 이 곳에선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 - 이런 말을 할 때, 그러니까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언어화된 문장을 발음하는 순간에는 그래도 어찌됐든 약간의 낭만이 느껴지기도 한다. 옆건물 담벼락이나 아스팔트 도로보다야 훨씬 나은 풍경이기도 하고. 이 곳에서 미야모토 테루의  『반딧불 강』을 읽었다.

 

 책 안에는 「흙탕물 강」과 표제작인 「반딧불 강」 두가지 작품이 들어있다. 각각 여덟 살, 열네 살 소년이 주인공으로 아마도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갔을 것 같다고 느껴졌다.

 「흙탕물 강」에선 전쟁 직후 폐허가 된 도시에서 조금씩 다시 삶을 이루어가는 평범한 일본 소시민의 삶이 잘 표현되었다. 일본의 옛정취 같은 것을 내가 알리 없는데도 작가의 문장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마을의 모습이 떠오른다. 강이 하나 흐르고 양쪽으로 집이 마주보고 있고 난간이 있고 양쪽을 잇는 다리가 있고 그 아래로 간혹 배들이 떠다닌다. 아직까지 말이 끄는 수레가 다니고, 그 옆으로 자동차도 지나간다. 외국 영화를 보면 컨테이너에서 사는 사람들이 종종 나오는데, 이 당시 일본에는 집이 없어 배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여덟 살짜리 우동집 아들 노부오는 집 앞 강가에 이사온 뱃집 아들 기이치와 친구가 된다. 뱃집에 드나들며 기이치의 누나인 긴코와도 가까워지게 되는데, 기이치의 엄마는 옆방에서 갸냘픈 목소리만 들릴 뿐 보이질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노부오는 기이치의 엄마와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무언가 이제까지 몰랐던 것을 느끼게 된다.

 어린 소년이 기이치의 가족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 그렇게 조금 더 성장하는 과정이 담담하고 서정적으로 그려져 있다. 무어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런 감정들에 대한 묘사가 대단해서, 내 안으로 자꾸만 들어오는 감정들을 소화하느라 책을 읽다 가슴에 손을 얹고 멍하니 있게 되곤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반딧불 강」보다 이 작품이 더 좋았다.

 「반딧불 강」은 열네 살로 이제 곧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사춘기의 소년 다쓰오가 주인공이다. 큰 사업가였던 아버지 시게타쓰는 아이를 갖지 못했던 본처를 버리고 쉰이 넘은 나이에 다쓰오의 어머니인 치요와 재혼했다. 치요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사업이 어려워지고 시게타쓰가 지병으로 쓰러진 후 얼마안가 죽게 되면서 치요는 앞으로의 인생이 막막해진다. 
  긴조 할아버지는 4월에 큰 눈이 오면 그 해엔 엄청난 반딧불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올해 드디어 4월에 큰 눈이 왔다. 다쓰오와 다쓰오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남몰래 좋아하고 있는 히데코, 치요와 긴조 할아버지 이렇게 네 사람은 날을 정해 반딧불을 보러 간다.

  시게타쓰와 치요가 처음으로 같이 여행하던 날의 묘사나, 시게타쓰가 죽은 후 그의 전처가 와서 다쓰오에게 이야기하는 장면들은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마지막 장면도 그렇고. 운명에 순응하며 그렇게 순하게 힘든 시절을 살았던 과거의 사람들에게서 어떤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인생이란 얼마나 알 수 없고 허무한 것인지. 그럼에도 그 허무한 것을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는 어쩔 수 없음까지 보듬는 듯한 이야기이다. 잔잔하고 단단하면서 무척 따뜻하다.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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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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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여름 여름이다. 더운 공기에 숨이 막힌다. 이사를 하면서 에어컨 없이 살아보자 했건만, 사람이 괴로운건 둘째치고 털복숭이 야옹이들이 걱정되어 결국 할부로 사버리고 말았다.

 6평형 작은 벽걸이 에어컨은 그러나 선풍기와 다름이 없다. 에어컨 주변으로 6평 정도만 시원해지면 되었기에 6평 짜리를 샀는데, 에어컨이라는 것의 작동원리는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르네....-_- 집에만 있는 날엔 하루 열두시간을 켜두고도 그다지 시원해지지가 않는다. 훈김만 가시는 정도. 그래도 찜기 안에서 잘익은 물만두가 되는 느낌이던 예전에 비하면 훨씬 살만하긴 하다.

 더워서인지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그저 늘어져서만 있었다. 책도 읽기 싫어 한동안 아무것도 펼쳐보지 않았다. 입맛을 잃었을 때 김치말이국수 같은 상큼한 음식을 찾게 되듯, 독서맛을 잃었을 때 찾게 되는 미스터리소설. 오빠의 책장에 얼마든지 꽂혀있으니 개중 읽어보자 하고 꺼내들었다.

 

 

 줄거리만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주인공 미치오는 우연히 친구 S의 집에 방학숙제를 건네주러 가다가 S가 집에 목을 매단 채 죽어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놀란 마음에 학교로 돌아와 선생님들에게 이야기하지만, 선생님이 경찰과 출동했을 때 시체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상하게 여기던 중, 거미로 환생한 S가 미치오 앞에 나타나고, 자신을 죽인 사람은 다름아닌 담임선생님이며 자신의 시체를 어디에 두었는지 찾고 싶다고 말한다. 미치오는 동생 미카와 함께 S를 도와주기로 하는데...

 45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임에도 순식간에(두세시간 걸린 듯) 읽히는 것은 문장에 그 어떤 여지도 없기 때문이다. 해석할 필요없는 문장들이 모든 상황을 친절히 해설해주고 설명해준다. 부언하는 듯한 부분이 많아서 성큼 넘어가 버리기도 했고, 사실 그런 부분을 제외한다면 소설 자체의 분량은 매우 가벼운 듯 하다.

 분류불가, 설명불가, 스포일러 엄금, 이라는 뭔가 대단한 듯한 수사에 비해 내용 자체는 좀 귀여운 것 같다. '환생'이라는 것을 독특한 세계관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보편적인 내용이지 않나 싶고. 그래도 흥미롭게 재밌게 잘 읽었다. 시원하게 한사발 들이켰다는 느낌으로.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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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미 2016-08-16 0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옹이들 때문에 에어컨 틀고 사는 것은 집사의 숙명 같네요

하나비 2016-08-16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키미님도 잘 아시는군요 ㅎㅎㅎ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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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인데도 한없이 멀게만 느껴질 때가 있고, 남인데도 무척 강하게 끌리는 관계가 있다. 말을 바꿔야할지도 모르겠다. 가족이라 밀어내고 싶고, 남이라 끌어당기고 싶은거라고. 어쨌든간에 관계라는 것이 밀고 당기는 인장력의 긴장감으로 유지되는 건 똑같아서 둘 사이의 시소를 받쳐주던 지지대가 사라지면 무너지기 쉽다.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가족이 남보다 오래 가는 것은 혈연의 지지대라는게 웬만해선 닳아 없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남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아무리 매일을 붙어있던 영혼의 단짝들도,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관계의 소멸을 맞곤 한다. 애초에 나와 타인 사이를 이어줄 탄탄한 지지대란 존재하기 어렵다. 공간은 물리적인 요소일 뿐이고, 작은 오해와 실금은 관계의 시소에서 먼저 내려 뒤돌아가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시소는 혼자 탈 수 없다.

 

 

 아마 살면서 수없이 많은 시소를 타고 내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나의 뜻인 경우도 있고, 상대방의 뜻이기도 했고, 어떤 다른 것에 어쩔 수없이 밀려난 것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로든 마음 속 어딘가에 버려진 시소를 바라보는 느낌, 나 혼자 남아 반대편에 비어있는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그랬다. 아쉽지만 끝나버린 관계와, 힘들지만 견뎌내야 하는 관계의 교차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구나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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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아는 분이 모친상을 당했다. 그 분은 예전에는 명절이 아니면 집에 잘 내려가지도 않았었는데, 어머니가 암으로 1년간 투병하시는 동안은 무리를 해서라도 거의 매주 내려갔었다고 한다. 여건이 되면 가까운 데로 짧은 소풍도 가고, 안되면 집에서 같이 밥차려 먹고 TV보고 하면서. 평생을 자식노릇 제대로 못하고 살았는데 그나마 마지막 1년간 이런저런 작은 추억들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아직은 어머니 영정사진만 봐도 눈물이 흐르지만, 이제 더이상 고통받는 모습 지켜보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놓인다고도 했다. 

 그리고 장례식 이후로 뿔뿔히 흩어져 살던 세 남매가 같이 살기로 했다고 한다. 담담하게 들려주는 그 이야기가 가슴에 자꾸 남는다. 엄마가 떠난 집에 다시 모여 자기들끼리 살게 된 세남매의 이야기가.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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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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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애자의 입장에서) 남녀 사이에서 오는 긴장감은 기본적으로 섹스에의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굉장히 본능적이고도 비이성적이게도. 관계의 발전 가능성이나 호감의 정도를 모두 떠나서, 일단 생물학적으로 나와 섹스가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상대와, 그렇지 않은 상대를 대할 때에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행위 이전에는 관계에 긴장감을 유발하던 섹스가, 행위 이후에는(특히 서로 익숙해진 후에는) 상대를 무척 친밀하게 느껴지게끔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마치 타인이 아닌 또 하나의 나 자신으로 여길 만큼. 그리고 보통 이 지점 쯤에서 희극, 또는 더 많은 비중으로 비극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여기 아주 행복한 커플이 있다. 막 결혼식을 올렸고, 두 사람 모두 첫날밤을 위해 순결을 지켰다. 둘은 이제 아름다운 바닷가의 호텔에서 초야를 치르려고 한다. 사실 여자는, 섹스에 대해 심한 거부감이 있지만 자신의 문제를 한번도 남자에게 말해본 적이 없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고, 자신이 남들에 비해 얼마나 비정상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여자의 고민을 알리 없는 남자는 여자에게 점점 다가오고, 여자는 어떻게든 견뎌 보려 노력하는데...

 희극과 비극의 드라마를 충분히 겪지 않고 결혼하는 것은, 서로의 얼굴을 반쪽만 보고 결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긴장감이 제거되지 않은 관계에선 가면을 벗기 어렵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라면 있을 수 없을 정도의 잔인한 말다툼 같은 것이 남녀 사이에선 종종 일어나는 것은, 온전한 자신의 맨얼굴로 상대를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친구 사이라면 평생 절교에 이르렀을 가시돋친 말을 듣고도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껴안을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나의 맨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더이상 완전한 타인이 아닌 또 하나의 나자신이니까. 내가 나에게 아무리 잔인한 말을 했어도, 나니까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관계를 유지하는데에는 사랑 말고도 서로를 견딜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서로의 맨얼굴을 볼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못했던 커플에게 단 한 차례의 드라마는 치명적이었다. 그 동안 그들이 주고 받았던 수많은 사랑의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워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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