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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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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page.9


내가 나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온전히 잊는다면, 나의 존재를 어떻게 정의하고 증명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를 남기고 싶은 사람도, 혹은 너무 많은 흔적을 남기게 될까 두려워 하는 사람도 있지만, 본인의 의도가 어떻든간에 보통 타인의 흔적은 그저 방치되고 만다. 작은 상자 속 선별되지 않은 사진 무더기 속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가 그대로 버려지거나, 열어보는 일 없는 앨범 속에 영원히 갇혀있거나, 어쨌든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꾸준히 흐릿해져 갈 뿐이다. 자신의 역사를 잊은 한 사람이 타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그러니까, 너무나 불완전하고 부정확할 수 밖에 없다. 노랗게 흐려진 사진이나 편지 따위는 어떤 것도 증명하지 못하는데다 타인의 기억 속 나란 존재는 그들을 통과한 나일 뿐이지, 객관적이고도 절대적인 나일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자신의 이름과, 부인의 이름과, 과거의 직업과, 살던 주소 따위를 알았다 해서, 나란 존재의 본질에 얼마나 다가간 것이 되겠는가 하는 말이다. 몇 개의 불완전한 퍼즐 조각을 쥔 채, 나는 여전히 빈 껍데기, 환한 실루엣에 불과하다.....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리를 서로 나누곤 했었다. 그들은 어느 날 무(無)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린다. 미(美)의 여왕들, 멋쟁이 바람둥이들, 나비들.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위트는 `해변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한 인간을 나에게 그 예로 들어 보이곤 했다. 그 남자는 사십 년 동안이나 바닷가나 수영장가에서 여름 피서객들과 할일 없는 부자들과 한담을 나누며 보냈다. 수천수만 장의 바캉스 사진들 뒤쪽 한구석에 서서 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룹 저 너머에 수영복을 입은 채 찍혀 있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왜 그가 그곳에 사진 찍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어느 날 문득 사진들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나는 위트에게 감히 그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해변의 사나이`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하기야 그 말을 위트에게 했다 해도 그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해변의 사나이`들이며 `모래는-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고 위트는 늘 말하곤 했다.
p.75-76


아주 오랫동안 이 책을 읽었다. 사실 한 쪽을 읽으면 다음 쪽이 궁금한 종류의 책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기억상실증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순전히 장님 코끼리 만지듯 더듬어가며 조금씩 짜맞춘다는 내용이다. 요는 배경이 되는 당시에는 구글이 없었다는 것, 그래서 맨몸으로 부딪혀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것. 자신의 과거에 대한 어떤 확실한 증거도 없고 말줄임표로 점철된 사람들의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증언들과 신빙성이 부족한 숫자들의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지는 가느다란 선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 이것이 맞는 길인지에대한 확신도 없다. 모호하고 흐릿한 안개 속을 헤매다 어쩌면, 하는 것들을 알게 되고 이제야 드디어 가까이 다가가나 싶은 때 소설은 끝이 난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과거에 누구였고 무슨일이 있어서 기억을 잃었느냐 하는게 아니다. 기억을 갖고 있든 아니든 상관없이 인간 본질의 어쩔 수 없는 모호함과 흐릿함, 뭐 하나 제대로 정의할 수 없는 불완전한 기억들의 파동들이 결국 나란 존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 건물들의 입구에서는 아직도 옛날에 그곳을 건너질러 가는 습관을 익혔다가 그후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남긴 발소리의 메아리가 들릴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들이 지나간 뒤에도 무엇인가 계속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점점 더 약해져가는 어떤 파동, 주의하여 귀를 기울이면 포착할 수 있는 어떤 파동이. 따지고 보면 나는 한 번도 그 페드로 맥케부아였던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갔었다. 그러다 차츰 차츰 허공을 떠돌고 있던 그 모든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page.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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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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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여행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서점엔 아득히 먼나라의 이국적인 이름들이 책표지마다 넘쳐나 나를 유혹하지만
몇 장 들추기도 전에 이내 이런 불손한 생각이 들고 만다.
˝산티아고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내 알 바 아니다. 당신이 만난 민박집 아주머니가 얼마나 정이 넘쳤었는지도 궁금하지 않다. 이 따위 얘기는 일기장에다 쓰라지!˝
참으로 건방지기 짝이 없다.
어느 전직 아나운서가 쓴 스페인 여행기를 읽고 이런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아직도 그런 책이 베스트셀러라는게 믿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그런 책으로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여행준비를 하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그런 자랑인지 일기인지 모를 여행기들은 영 별로다.
감성에 젖어 옛사랑이나 자신의 상처를 건드리는 이야기를 해대는 것도 싫다. 알고 싶지 않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 여행하는걸 보는게 배가 아픈건지도 모르지만, 여행이 유행이라 그런지 너무 많은 여행책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 책은 달랐을까? 어떤 점이 달라서 재밌게 보고, 또 뭐라도 한마디 남기고 싶어졌을까?
명문이라서? 유머가 있어서?
물론 둘 다 맞는 말이다. (썰렁한 유머도 유머는 유머지)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여행은 그저 여행일 뿐, 어디로 떠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장소에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고, 낯설게 느끼는 장소라면 그게 어디든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쪽에 더 가깝다. 방점은 `낯선 곳으로 떠난다`에 찍히고 그곳이 어디인지는 부차적인 요소가 된다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시시콜콜 어느 나라 풍경이 어땠고 어디에서 뭘 맛있게 먹었다는 식의 여행기를 보면 살짜기 책을 덮어버리게 된다. 그런건 여행의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여행기이자 에세이처럼 보이기 하고, 또 어느 때엔 소설같기도 하다가 마지막엔(심지어!) 이상의 전기로 끝나는 느낌이다. 특히 앞부분의 몇 에피소드들은 코미디와 드라마와 서스펜스가 동시에 느껴지기까지 했다. 낄낄거릴 수 있는 유쾌한 경험담에 결코 가볍지 않은 사유가 함께 균형을 이루고, 지역에 따라서는 역사와 그 시대를 산 문인들의 이야기까지. 그저 관광하고 돌아다니는 여행기가 아니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고, 무엇보다 남의 개인적인 여행을 맛도 없이 껍데기만 핥는 것 같은 느낌이 없는게 좋았다. 갑자기 이상 전기로 바뀌는 뒷부분은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이 책을 갈무리하는 마지막장 `그리고 우리에겐 오직 질문하고 여행할 권리만이`를 읽고 있으면,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여행을, 그리고 국경을 꿈꾸게 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게 된다.

종종 드는 생각인데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쓰는 것 같다. 특히 산문을 보면 글쓴이의 품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마음먹고 뻥칠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야 있겠지만.. 암튼 잘은 몰라도 김연수 작가는 인간적인 면에서도 참 바르고 좋은 사람 같은 느낌이다. 술자리에서 맞은 편에 앉으면 어쩐지 마구 술을 먹일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고 보니 하도 술 먹는 얘기를 맛있게 써놔서 이 책 보는 중에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몇 번이나 마셨더랬다. 그러니 이 분은 이미 나에게 술을 마구 먹인 셈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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