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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2월
평점 :
어느날 사무실에 놓인 전화기들이 하나같이 너무나 오래된 것을 보고 놀랐다. 기능이라고는 재다이얼 밖에 없는, 꼬불꼬불한 선이 달린 흔하고 단순한 유선 전화기인데, 어느샌가 좀 노랗게 변색되어 수화기가 가려주는 부분만이 연한 회색톤의 제 색을 겨우 갖고 있는 것이었다. 차라리 전체가 온통 노래졌다면 나았을지 모르겠지만 수화기를 들 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그 뽀얀 속살과의 대비는 전화기를 더욱 늙고 애처로워 보이게 했다. 아마 못해도 10년 정도는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것들은 아무 문제없이 사용되고 있고, 전화기가 고장났다 말하는 사람도 거의 보지 못했다. 핸드폰의 생명주기가 기껏해야 2-3년인 것을 생각하면 참 이상한 일이다. 기술은 시간이 지날 수록 날로 진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오래 전에 만든 유선전화기는 10년 넘도록 사용하면서 요즘 나오는 전화기는 몇 년 쓰지 못하니 말이다. 이 유선 전화기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쯤엔 상상도 못했을 것이 분명한,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다양하고 유용한 기능들 때문에 오히려 기기의 수명은 단축될 수 밖에 없다는 아이러니가 재밌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너무나 다양한 삶의 방식이 혼재하는 세상이라, 사람들은 더욱 겹쳐지지 않는 모습으로 괴롭다. 개개인이 받는 고통의 원인이 각자 다른 곳에 있어서 나와 타인간의 거리는 멀기만 하다. 삶에서 느끼는 많은 물리적인 불편이 개선되었음에도 인생은 여전히 힘에 부치는 일이다. 고통질량보존의 법칙 따위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전혀 비슷하지 않은 것들로 삶이 아픈 사람들이다. 가족, 일, 연인, 과거 등 주제도 다르고 소재도 다른 고통을 각자 어깨에 이고, 이 곳 아몬드나무 하우스로 하나 둘, 모이게 된다. 이 곳엔 지금의 한국 사회가 고스란히 들어 있는 듯 하다. 절대적인 빈곤으로 굶어죽는 사람은 없을지언정, 삶이 고통이 될 요인들은 너무나 많아져 버렸다. 수많은 기능의 스마트폰이, 역설적으로 수많은 고장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듯이. 그들은 서로 완전히 먼 사람들이지만, 같이 걷는다. 말없이 묵묵히 서로의 존재를 옆에 두고 느끼면서 현재를 걸어간다. 완벽한 이해는 하지 못해도, 각자의 고통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존중 안에서 그들은 어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된다.
책도 참 좋고, 빨간책방에서 들은 작가의 이야기들도 무척 좋다. 삶 자체가 문학인 사람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적인 정서, 자연에의 경외, 순리와 순환에 대한 이미지들.
좋다. 참 좋다.
2016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