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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달 쯤, 오랜만에 들렀던 교보문고엔 한강 작가의 코너가 따로 크게 마련되어 있었다. 국내최초 맨부커상 후보! 라는 커다란 팻말도 보였다. 곧 발표가 나겠지만, 수상을 하든 하지 못하든 간에 무척 굉장한 일임에는 틀림 없는 듯 하다. 가끔 외국 서점에서 한국 작가들의 책을 찾으면 무척 반갑다. 요즘처럼 국경이 희미해진 세상에 외국인에게 싸이 알아? 김치 알아? 하는 것만큼 촌스러운 일인지도 모르지만, 호기심이 드는걸 어찌할 수 없다. 이방인이 보는 우리나라의 소설들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우리나라 소설을 좋아하는 것의 8할은 문장 때문인데, 알파벳으로 환원되어진 말들이 한글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가지고 갈 수 있을까. 한글이 어떤 언어보다 완벽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한글만이 가지는 어떤 특이한 한계성이 어쩌면 언어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면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언어를 새롭게, 그리고 조화롭게 배열함으로써 완전히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 그런 일들은 대체로 배열을 담당하는 작가와, 그 배열의 의미를 해독하는 독자 사이에 세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통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데, 국경을 넘어서서 글자와 어순이 새로이 변형되는 순간, 많은 부분이 어그러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 외국의 독자들이 내가 느끼는만큼의 충분한 감동을 느낄 수가 있을까 의심스러운 것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그런 번역에서 오는, 그리고 전혀 다른 문화에서 오는 이질감들은, 같은 문화권 출신이라면 느낄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을 전해주기도 한다. 사진을 찍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낯설게 하기'인데, 문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낯선 것들은 신선함으로 승화되어 이제껏 알지 못했던 세계를 보게 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하니까. 이해가 되지 않으면 되지 않는대로, 오해라면 오해하는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어차피 인간은 타인을 전혀, 라고 해도 좋을만큼 알지 못한다. 문학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의도를 온전히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느 문화권이냐에 따라 독자로서 받게되는 감정의 낙차 마저도 독서의 한 부분(재미?)이 아닐까 싶다.
한강 작가라면 소설 『소년이 온다』로 유명하지만, 표지부터 너무나 예쁜 그 책을 나는 펼쳐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변명을 할 것도 없이 용기가 없고 비겁하기 때문인 것을 안다. 그치만... 그 책을 볼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는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나에겐 아직 버겁다.
『소년이 온다』가 베스트셀러로 온 서점의 매대를 채우고 있었을 무렵, 몇 번을 망설이다 결국 내려놓고 말았다. 그리고 그 책 대신 읽었던 것이 『그대의 차가운 손』이었다. 그게 벌써 한참 전인데, 나는 그 책을 읽고 어떻게 된게 아무런 감상도 쓸 수가 없었다. 이 조용한듯 음울하다, 결국엔 폭주하고 마는 이야기를 읽고 나는 무엇을 느꼈던가...
이번에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많은 부분 『그대의 차가운 손』이 떠올랐다. 예술과 욕망을 한데 섞어버리는 것도 그렇고. 소란스럽지 않고 차분히 이야기를 끌고가는 톤도 그렇고, 그런 조용한 힘으로 인물들을, 사건들을 끝간데까지 밀어부치는 것도 비슷하다. 먹지 않는 사람과 너무 많이 먹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대비된다. 두 책을 굳이 비교하자면, 『채식주의자』의 국경이 훨씬 희미하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결과주의 같아서 우습지만, 한마디로 한국인이 아니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말이다. 그에 비해 『그대의 차가운 손』은 등장인물의 어린 시절 모습을 그리는 정서가 무척 한국적이다. 나는 그 눈에 그려지는 듯한 시골의 정경과 그 곳에 배어있는 절망감들이 마음이 아릴 정도로 참 좋았다.
『채식주의자』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주부였던 영혜가 어떤 계기(꿈)로 인해 인간(동물)의 폭력성에 질려버렸다는 듯, 육류를 모조리 끊고 채식만 하다가, 결국은 물과 햇빛만으로 사는 식물이 되고자 한다. 『채식주의자』는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어떤 트라우마가 점점 인간을 잠식해가며,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편의 중편 소설이 연작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하나의 사건을 세 명의 시선으로 약간의 시차를 두고 바라보는데, 행위의 중심에 있는 영혜는 세 가지 이야기에서 똑같이 관찰되어지는 대상으로서 존재한다. 영혜의 변화를 발견하는 남편, 그 변화를 이용하는 형부, 변화의 결과로 결국 소멸하는 영혜를 바라보는 언니.
조용조용 가만가만 섬세하게 한문장씩 앞으로 가는 듯한 작가의 글들을 읽으면, 숲 속 호숫가를 산책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언뜻 호젓하고 고요한 풍경 가운데, 그 심연을 헤아릴 수 없는 짙은 초록빛이 있다. 어느샌가 어디선가 날아온 작은 돌이 표면에 작은 파장을 만드는데, 그 파장이 잔잔했던 호수에 점점 더 격렬한 파도를 만들어 결국 걷고 있던 날 삼키고 마는 것 같은 느낌. 그렇게 작가의 조용한 속삭임에 나는 홀려 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