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아말리아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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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울음을 터뜨리던 마흔 일곱살의 여자 안은 그 일을 계기로 신변을 모조리 정리하고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몰래 집을 팔고 그의 짐들은 상자에 담아 사무실로 부쳐 버린다. 음악가인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피아노 세 대를 파는 것을 끝으로 16년간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그녀는 집을 떠나 유럽 곳곳으로 이동하며 여행 아닌 여행을 한다. 마치 곤충이 탈피를 하듯이, 도시를 떠날 때마다 그 곳에서 입고 썼던 물건도 같이 버린다. 그렇게 의식처럼 몇 번의 이동과 변화를 반복하던 그녀는, 나폴리 근처 이스키아 섬에서 빌라 아말리아를 발견하고 첫눈에 반해 그 곳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된다. 바다와 하늘이 가득 펼쳐져 있는 곳에서 그녀는 행복을 느끼게 되고, 오랫동안 손에서 놓았던 작곡도 다시 시작하면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한동안 유행했었던 <Eat, Pray, Love>가 생각나기도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소설 안에 삶에 대한 예찬은 없다. 오히려 삶이란 죽음과 손을 맞잡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듯, 이미 죽은, 죽어가는, 결국 죽게 되는 사람들의 연속이 있다. 여러가지 형태의 죽음이 안의 인생을 통과해간다. 아름다운 빌라 아말리아를 결국 떠나게 되는 계기도 죽음에 있고, 그 끊임없는 고통과 슬픔을 음악으로 치환하며 그녀는 음악가로서 나름의 성공을 거둔다.


새로운 삶은 그녀에게 작곡가로서의 자아를 찾아준다는 면에선 긍정적일 수 있으나, 사실 어떤것이 옳은가에 대한 가치 판단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어떤 삶에서든 고통은 비슷한 정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의 어머니가 평생을 기다렸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던 남편, 그러니까 안의 아버지와 그녀가 어머니의 죽음 후 40년 만에 만나는 장면에서 나는 그렇게 느꼈다. 아버지가 아무리 딸의 음악적 재능을 자랑스러워하고 추켜세워도, 아버지에게 받은 그녀의 상처와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으니까..


소설의 시점이 꽤나 특이하다. 시종일관 3인칭 같았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 '내'가 등장해 안과 마주친다.


파스칼 키냐르 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았는데 밀란 쿤데라가 연상되기도 하고 묘사하고 서술하는 문장들이 굉장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솔직하게 말하자면.. 돈많은 예술가의 삶에 대한 투정 같아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탈리아에, 이스키아섬에 가고 싶어졌다.

"엄마, 택시를 불러야겠어요."

 " 날 안아주렴!"

 안은 일어났고, 가서 엄마와 포옹했다.

 늙은 여자에게는 역겨운, 과도한, 악취가 풍기는, 앙상하게 뼈만 남은, 지극한 애정이 있는 법이다. 노파가 끌어안으면, 포옹 자체가 우리를 아프게 한다. 노인의 뼈가, 가벼운이 얇음이, 덥수룩한 머리칼이, 머리핀이, 브로치가, 팔찌가 우리를 찌르므로.

 "네가 간다니 난 목록이나 작성하련다."

 안은 커피 잔을 찻잔에 내려놓고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관절염으로 굵어지고 변형되고, 인접한 바닷바람에 끊임없이 부식된 손가락으로 빅Bic 볼펜을 꼭 쥐고서 장볼 것들을 적느라 열심이었다. 가사 도우미에게 건네줄 목록이었다. 이델스텐 부인은 입술을 오므렸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공들여 글씨를 써내려갔다. 당근, 풀상추. 글자를 똑바로 쓰기 위해서였다.

p.58

 

 만일 운명이라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세상의 다른 장소에서 생겨난 충동이라면, 그래서 한 존재를 사로잡고, 그 존재가 충동의 본성을 한순간도 깨닫지 못하면서  그것을 따르게 되는 것이라면, 그녀에겐 운명이 있었다. 자신의 운명을 자각한 그녀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나는 결연히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떤 것이 내게 결여된 그곳에서 내가 헤매고 싶어지리라는 느낌이 든다."

p.123

 

 다음은 안 이덴의 말이었다.

 "바닷물 속에서 퍼지는 빛이 있답니다. 심연 한가운데서 솟구치는 것 같은 섬광. 절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육체 아래, 해초 밑, 이스키아의 암석 그늘에서만 희롱하는 빛. 이 빛은 어쩌면 화산의 기원에 속한 것 같아요. 정말로 태양에서 비롯된 게 아닌 듯한 빛이 여기서 헤엄치는 육체를 어루만지거든요."

 해수욕 시간이 되면, 그녀는 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수영복 위에 호텔의 하얀 면 가운을 걸치고, 호텔의 하얀 플라스틱 샌들에 발을 밀어 넣었다.

 자신의 방 테라스 바로 빝의 암석들을 지나갔다.

 오솔길은 없었다.

 플라스틱 재질의 작은 샌들이 떨어진 솔잎들 위에서 미끄러졌다.

 그녀는 호텔 가운을 그곳에 세워진 아무 쓸모없는 쇠 난간에 걸쳐놓고서 바다로 들어갔다.

p.133-134 

 

"이따금, 곡의 어느 한순간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강렬한 아름다움에 고통이 섞여들었죠.

  나는 더이상 옴짝달싹 못했고, 내 삶은 멈췄어요.

  어린애는 아름다움을 만나면 우선 몸이 마비돼요. 아연실색한거죠. 그 안에서 죽어가는 거에요."

p.195

 

안 이덴의 말이다.

 "음악은 악기의 도움 없이 내 안에서 만들어져요. 고개를 똑바로 들고, 거의 일어난 자세로, 앞으로 내민 입안에서, 상체의 모든 공간에서 말이죠. 음악도, 오르가슴과 마찬가지로, 머리 바로 위에서 생겨나는 거예요. 악기 앞에서, 악기의 도움으로,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은 하나같이 악기가 낼 수 있는 소리를 따르고, 악기로 향하게 되는 탓에 더 이상 음악이 아니에요. 몸은 버림을 받은 거죠. 그것은 악기가 거둔 성과에 불과해요. 모근 악기는 길을 잃고 헤매요. 심지어 목소리도 그래요. 목소리라고 여겨지는 목소리, 노래되는 아리아로 발현되는 목소리조차, 우리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며, 길을 잃고 헤매는걸요."

p.315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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