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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여가
제임스 설터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6월
평점 :
책을 읽는 동안, 깃털처럼 가벼운 문장들이 나부끼는걸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묘사는 직관적이고 날카롭고 매우 감각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는 생생한 문장들이 작가가 표현하지 않은 것들까지 상상하게 한다. 수면위를 떠다니는 듯 하기도 하고,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싶어서 함부로 쉽게 읽지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사뿐사뿐 금방 읽히는 책인데도.
최근 정신적으로 매우 피로하다고 느꼈다. 어떤 감각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책을 손에서 잠시 내려 놓았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올해가 다갔다.
내가 피곤하든 어떻든간에 좋은 책은 좋다. 이렇게만 둘 수 없어서 억지로나마 다시 책을 읽고나서 내린 결론이다. 섹시한 커플의 쓸쓸한, 하룻밤 꿈같은 사랑이야기. 영웅이 남아있는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듯이, 이들의 다시없을 사랑이야기도 관찰자인 화자에 의해 신중하게 걸러지고 아름답게 진열된다. 직접 겪거나 모든걸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더 완벽해지면서.
아침 식사를 주문하는 그녀의 좁고 차가운 등. 음식을 가져온 웨이터는 침대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웨이터가 가자 그녀는 침대에서 펄쩍 뛰어나와 여전히 알몸인 채로 식사를 준비한다. 조용한 빛 속에서 그녀는 하녀처럼 기민하게 크루아상을 벌리고 버터를 고르게 발라 다시 접시 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는다. 그녀의 살이 빛난다. 그를 끌어당긴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마치 아이처럼 그녀가 웃어주기를, 그에게 음식을 맛보여주기를 기다린다. 자신은 주위를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우는 것 같고, 그녀는 몹시 바쁘고 차분한 것처럼 느낀다. 그녀가 콩피튀르(잼) 병을 연다. 여기 좀 발라줘, 말하고 싶다. 그녀의 허리를 움켜쥐고 싶다. 그녀의 팔꿈치에 입 맞춘다. 그녀가 그를 힐긋 보며 미소를 짓는다.
조용한 일요일 아침 스타니슬라스 광장. 순수한 빛에 둘러싸인 낭시의 고요함이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음울한 가을날 그녀는 이 도시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이미 집을 떠나 정부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혼자였다. 추웠던 그해 겨울, 돌처럼 완강하고 눈 많던 겨울 지붕을 따라 햇빛 속에서 번쩍이던 얼음. 그녀는 그것에 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수태된 어느 겨울.
p.94-95
그가 튕겨지듯 몸을 일으킨다. 돈을 빌려주겠다는 약속을 듣자 식욕이 되살아난 모양이다. 우리는 텅 빈 거리를 따라 샹 호텔 쪽으로 걸어 내려간다. 오툉은 조용하지만 그곳의 고요는 늙은 여자의 잠과 같다. 자면서도 온갖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오툉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도 볼 줄 안다.
마을 깊숙한 곳 다른 건물들에 묻힌 -사람들이 지나쳐버리는 고양이들만 아는 골목길들이 있다- 방, 나무들, 검은 잎사귀들, 신비로운 향기, 나뭇가지들의 움직임, 그 위에 있는 방, 저녁의 서늘한 외기로 가득 찬 그 방 안에서 그녀가 자고 있다. 입을 살짝 벌리고 하얀 두 팔을 떨어뜨린 채. 아르무아르(옷장)의 니스로 마감된 오렌지색 문들은 닫혀 있고, 개수대 옆에는 수건 한 장이 널려 있다. 그녀의 칫솔-나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볍게 건드려본다-은 물기가 말랐다. 바닥에는 옷가지들이 떨어져 있다. 그녀의 신발, 너부러진 스타킹이 보인다. 마침내 나는 자고 있는 그녀에게 눈길을 던진다. 심장에서 피가 빠져나간다. 그녀가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나를 응시하고 있다. 그 눈의 순수한, 신선한 흰 빛, 그 푸른 흰 빛-그것이 나를 포착한다.
p.243
작가가 지어내는 감탄스러운 문장이 빛을 투과해 여러 빛깔을 내는 프리즘처럼 눈부시고 아름답다.
더 많은 문장을 옮기고 싶지만 수위가 좀 높아서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