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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책을 읽은지 꽤 되었는데 어쩐지 리뷰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빨간책방의 애청자로서 출간되고 얼마 안되어 구입해 읽었지만, 나는 이런 종류의 소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종류라 함은 그러니까 상상력의 세계이자 재치의 세계, 혹은 사건들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다. 사람의 미묘한 감정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바깥의 공기가 더 짙은 이야기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비록 겉으로 보여지는 것 아래로 더 깊고 더 많은 이야기들이 층층이 쌓여있다 해도, 세상에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는 이야기엔 기본적으로 마음이 동하지 않는 면이 있다. 분명 그들의 직업도, 겪고 있는 일도 특이하고 흥미로운데 그러면 그럴수록 그걸 겪고 있는 `인물`들은 상대적으로 너무 가볍거나 쿨하게 느껴져서 그들의 마음의 진동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뭐랄까 인물들과 나 사이에 어쩌지 못할 두꺼운 벽이 있는 듯하달까. 그 벽은 투명해서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볼 수는 있지만, 그 너머의 세계는 내가 절대 다다를 수 없는, 단지 나와 같은 언어를 공유할 뿐인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느낌이다. 그 안에서 인물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듯 해서 아 참 재밌게들 사네, 싶기는 해도 나라면 어땠을까, 에 대입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화려한 배경장치들이 사실은 꽤나 무용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 김중혁 소설의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크레파스로 쓱쓱 그린 듯 투박한 인물들이 내가 알고 있는 세상과 비슷하지만 다른 차원의 공간에서 어떤 재밌는 일을 겪으면서 벌어지는 일들, 그 바로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들이 숨어 있다. 이야기들은 그렇게 흥미롭고도 가벼운 템포로 흘러가는 듯 보이다가 마지막에선 작가에게 늘 한방 먹게 된다. 반전같은게 있다는게 아니라, 결말이 강렬하게 남는다는 의미에서. 시종일관 유유히 흘러다가 마지막에 무심하게 던지는 무게가 꽤 나가는 문장들이 있어 그의 단편들을 나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 부드럽고도 가차없이 마무리한다는 느낌이다. 그런면에서는 카버의 소설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식으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송미는 입을 반쯤 벌리고 신음을 내뱉으면서 차양준을 보고 있었다. 차양준은 고개를 돌려야 할지 계속 보고 있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송미가 차양준을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차양준은 자신의 머릿속 한 부분이 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다. 흐릿하고 커다랗던 하얀색은 조금씩 작아지더니 단단하게 응축되었다. 차양준은 송미의 탁구공이 자신의 머릿속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탁구공은 격렬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똑, 딱, 똑, 딱, 규칙적으로 움직이다가 머리에서 뒷덜미를 타고 내려와 차양준의 심장 속으로 들어갔다. 차양준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보았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것처럼 탁구공이 손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차양준은 손바닥으로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p.44 <상황과 비율>
미요의 자동차가 떠나고 난 후, 용철은 생각보다 가방이 가벼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빠져나간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미요가 무언가 빼낸 것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가방 속에 든 무언가를 용철이 직접 버렸을지도 몰랐다. 기억나지 않는 일들이었다. 뭐가 없어졌기에 가방이 가벼워졌을까. 착각일지도 모른다. 가방 안은 그대로일 것이다. 용철은 가방을 들고 손목을 까딱거려 보았다. 가방 속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 정확하게 잘 기억나지 않았다. 가방을 열어보기 전에는 모를 일이었다.
p.198 <종이 위의 욕조>
음, 그의 소설은 역시 결말이 절정이나 다름없는데, 이건 상당한 스포일러인가...?
그러나 그 무게감이란게 이야기의 흐름을 타고 앞에서부터 와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일테니까.
2015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