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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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일본인이라는 특수한 민족성에 상당히 기대어 존재하고 있다. 사실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아내가 가해자인 남편을 죽인다는 설정은 별로 특이한 소재는 아니다. 아홉시뉴스만 봐도 간혹 나오는 이야기니까. 다만 일본인의 어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이 이야기는 조금 더 활력을 얻고 조금 더 극적으로 느껴지면서, 500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책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아케미와 린류키라는 중국인들에게서 도움을 받게 되는데, 이건 중국인은 일본인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주인공들이 중국인에게 받게 되는 도움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일본인에게선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예를 들면 낯두꺼운 뻔뻔함과 이유를 묻지않는 무조건적인 의리 따위를 어떻게 일본인에게서 기대할 수 있을까. 모두 한 사람을 제거하고 잡히지 않는데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다.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지만 가나코는 지하철에서 치한에게 추행을 당해도 소리조차 못내며 꾹 참고 넘길게 뻔할, 지극히 일반적인 일본 여성이다. 나오미는 가정폭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공포인지 이미 체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가나코에게 적극적으로 현재 상황에서 벗어날 것을 독려한다. 친구인 나오미의 격려 덕에 각성을 하고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날 결심을 하게 된 가나코와 본인의 일도 아닌데 당사자보다 더욱 적극적이 되어 가해자 남편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에 몰두하는 나오미. 그녀가 남의 일에 이렇게 발벗고 나서는 것은 그녀 자신이 어렸을 적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가나코의 남편을 죽이는 행위는 나오미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마음 속에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폭력적인 아버지를 죽이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마음을 졸이게 되는 진짜 서스펜스는 남편의 죽음, 그 후 부터이다. 빈 틈이 거의 없었다고 생각했던 계획은 사실, (당연하게도)구멍 투성이였고 가족을 잃은 슬픔에 잠긴 남편의 본가 가족들이 발을 벗고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하면서 그 구멍들은 점점 더 크기가 커져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뒤늦게 구멍을 막아보려 해도 이미 손을 쓸 틈도 없이 벌어져 버려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이렇게 잡혀버리는 건가, 하는 긴장상태에 책장은 정신없이 넘어간다.


책을 꽤 천천히 보는 편인데도 토요일 하루동안 다 읽어버려서 일요일엔 무엇을 읽어야 할지 난감했다. 꽤 두꺼웠기에 주말은 이 한 권이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이건 문장이 아니라 장면이다.

우선, 나오미가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어머니와 대화하는 장면.



 "그렇게 싫으면 아버지하고 이혼하지?"

 내친김에 말하고 말았다. 어머니의 안색이 싹 바뀐다.

 "그러니까 앞으로 함께 살 일이 걱정되잖아. 노후는 길어. 아버지도 앞으로 몇 년 있으면 지금 회사 역시 그만둬야 할 테고. 그렇게 되면 하루 종일 집에서 얼굴 맞대고 살아야 하는데. 내가 엄마 입장이라면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남은 인생, 계속 참고 살지, 내 마음대로 살지 그건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

 말하다 보니 나오미 본인이 괜히 초조하여,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하고 말았다.

 "이혼이라니, 네 아버지가 들어주지 않을걸."

 어머니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들어주든 말든 결혼이라는 건 두 사람의 의사로 성립하는 거니까 엄마가 싫다면 그냥 이 집에서 나가도 돼."

 "집을 나가서 어디에서 살라고."

 "아파트든 연립주택이든 어디든 찾아서 들어가면 되잖아."

 "엄마, 돈 없어."

 "변호사를 고용하면 반드시 재산의 반은 받을 수 있어. 나는 엄마 편이 돼줄게."

 "그런...." 어머니가 할 말을 잃었다. 설마 딸한테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듯 곤란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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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역시 자신 없어."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음, 그래? 어쨌든 엄마가 결정할 문제니까."

 "이웃도 있고, 친구도 많아. 와타나베 씨나 곤도 씨 모두 서로 돕고 살자고 예전부터 이야기했어. 그래서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단다."

 "그래, 그럼 다행이지만."

 공연히 어색해지기만 해서 나오미는 묵묵히 식사에 열중했다.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켜고 멍하니 바라봤다.

 "아버지 빨리 돌아가시는 편이 좋은데."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다 털어놓아서인지 나오미는 내뱉듯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순간 안색이 변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돌아보지도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와이드 쇼의 리포터가 탤런트 누구가 음주 운전으로 입건됐다고, 마치 테러릴스트라도 잡은 것처럼 요란을 떨었다.

 나오미는 아침식사를 마치는 대로 곧바로 도쿄로 돌아가자고 생각했다.


p.109-112



그리고 중국여성과 일본여성의 대조적인 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아케미와 나오미의 대화.



 "만약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휘드르는 사람이라면 상하이에서는 어떻게 되나요?

 "보복합니다. 어쨌든 무사하지는 않을 거예요."

 아케미는 화난 듯 목소리에 힘을 담아 대답했다.

 "아내가 보복하나요?"

 "본인이 할 수 없다면 부모 형제가 대신 보복해요. 예를 들어 만약 내가 남편한테 폭행을 당했고, 내 힘으로는 대항할 수 없는 상태라면 큰오빠가 캐나다에서 달려와 처리해줄 거예요."

 "굳이 캐나다에서 와서요?"

 "당연하죠. 그럴 때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가족이라고 하겠어요? 가족이 없다면 가까운 친구가 도와주죠. 그게 우정입니다. 아닌가요?"

 아케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일본 여자는 불만스러워도 그냥 체념하고 마는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오미의 머릿속에 가나코의 멍투성이 얼굴이 떠올랐다.

 "잘못된 거예요. 일본인은 하고 싶은 말을 참아요. 그건 정말 좋지 않아요. 중국에서는 잠자코 있으면 계속 당하기만 해요. 왜 일본 여자는 그렇게 얌전히 있는 거죠? 나는 일본에 와서 무엇보다 그것에 제일 놀랐어요."

 "무슨 일이든 여자보다 남자가 우선이라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건 좋지 않아요. 좀더 자기주장을 해야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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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친한 친구가 남편으로부터 폭력 피해를 받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이때는 아케미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죽여버리세요"하고 내뱉었다.

 "그런 남자는 살 가치가 없어요. 죽여도 아무 불만 없을 겁니다."

 "그건 좀....." 역시 나오미는 할 말을 잃었다. "죽이면 감옥에 가잖아요. 나만 손해예요."

 "그럼 잡히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생각해야죠. 나 같으면 상하이로 같이 여행 가서 거기에서 갱한테 의뢰해 죽일 거예요. 중국 갱의 소행이니까 일본 경착은 손을 쓸 수 없겠죠. 중국 경찰은 일본인 여행자가 한 명 죽은 정도로는 쉽게 수사하지 않아요. 그걸로 끝이에요."

 아케미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오미는 이 여사장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중국인에게 산다는 건 전쟁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활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이나 책력은 모두 정당방위가 된다.

 "나도 그렇게 강해지고 싶네요."

 나오미가 한숨을 섞어 말했다.

 "당신은 충분히 강해요. 내가 만난 일본인 여자 중에 제일 강한걸요."

 아케미가 손을 들고 왜건을 끌고 가는 종업원을 불렀다. 거기에는 가지각색의 디저트가 놓여 있었다. "자, 단것 먹고 일이나 열심히 하죠." 하얀 이를 드러낸다.

 나오미는 기운을 얻은 것 같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밉살스러운 도둑이었는데 지금은 일종의 존경심마저 품게 됐다.


p.114-117



마지막으로 죽은 전남편의 동생인 요코와 가나코가 진실공방을 하는 장면.


요코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너와 일대일로 이야기하는 건 오늘 밤이 마지막이야. 앞으로는 너, 감옥 안에 있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나도 하고 싶은 말을 못 할테고, 그래서 온 거야. 다시 한 번 말할게. 죽어줘."

 "싫어. 내가 왜 죽어야 하는데?"

 가나코가 다시 말했다. 또다시 침묵. 이번에는 일 분 가까이 지속됐다.

 요코의 어깨가 축 처진다. 눈에 굵은 눈물방울이 맺히는가 싶더니 곧바로 흘러넘친다. 그 자리에 쪼그려 앉는다.

 "죽일 것까지는 없었잖아.... 내 오빠인데....."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간헐적으로 흐느낀다. 마룻바닥이 금세 눈물로 젖었다.

 "왜 너같이 변변한 경력도 없는 여자 때문에 내 인생에 오점을 남겨야 하는데?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왔어. 그런데 너 같은 것 때문에...."

 요코가 이젠 거의 울부짖는다.

 가나코는 우두커니 서서 요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서로의 감정이 뒤바뀐듯 차분해졌다. 자신도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요코를 동정하는 마음도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다쓰로를 죽이지 않았다면 자신이 죽었을 것이다. 혹은 평생을 노예처럼 살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요코가 일어섰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물을 멈추고 다시 가나코를 바라본다.

 "경찰이 취조할 때 오빠에 대한 험담은 하지 마. 그게 네가 해야할 최소한의 보상이야."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가나코는 요코가 하고 싶었던 말이 이것이었구나 시었다. 이 말을 하러 온 것이었나. 그렇다면 안심해. 나는 체포되지 않아.

 "미안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요코의 오른손이 날아왔다. 가나코의 빰에서 찰싹하고 소리가 났다. 다쓰로에게 맞고 그의 여동생에게도 뺨을 맞았다. 가나코는 손으로 뺨을 누르며 요코를 봤다. 두번씩이나 날아오지는 않았으므로 방어 자세를 취하지는 않았다.

 요코가 말없이 몸을 돌렸다. 등에 분노와 슬픔을 띤 채 천천히 현관으로 걸어간다. 가나코는 배웅하지 않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거실에서 듣고 있었다.


p.438-439




덧붙여 나의 개인적인 생각에 일본인이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는 까닭은, 다른 한편으로 그들이 극도로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만큼 나또한 남에게서 피해입고 싶지 않다는 자기방어적 태도인 것이다. 반대로 중국인은 별다르게 미안한 기색도 없이 타인의 개인적인 영역에  발을 들여놓거나 스스럼없이 폐가 되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한국인은 지리적으로나 민족성으로나, 그 사이에 있는 것 같다. 남에게 피해를 입으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도 자신이 가해자가 되면 어쩔 수 없었다며 뻔뻔하게 구는 면은 중국인과 비슷하지만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사생활을 간섭받고 싶어하지 않는 면은 일본인스럽기도 하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에겐 한국인이 이도 저도 아닌 이해하기 어려운 부류일 수 있듯이, 나 또한 일본인과 중국인의 극단적인 민족성이 비슷한 정도로 불편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인과는 가면을 벗고 진정한 친구가 되는게 어렵고, 중국인과는 부담스러운 요구나 과도한 침범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보니 상당히 편협한 민족주의자같지만, 다만 같은 언어와 문화의 공유로 외국인에 비해 한국인이 다소 편안한 정도로 가까워질 기회나 확률이 많다는 뜻일 뿐이다.


아, 책 이야기를 하자면 흥미진진하고 재밌다(말했던가?). 일본인의 내성적인 성격 탓에 별 것 아닌 상황을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들은 약간, 위화감이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도 까놓고 보면 별반 다르지 않으므로 공감하는데 어렵지는 않다. 중국인과 일본인의 다른 민족성과 그 장단점들을 이야기 속에 재밌게 잘 녹여냈다. 다만 아케미라는 존재가 너무 대상화된 중국인으로서 작용한 면이 없지는 않다고 본다. 말하자면 중국인 대표랄까. 자꾸 일본인 중국인 들먹이게 되는데 그 정도로 이 책에선 민족성이 제 2의 주제처럼 보인다.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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