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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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다. 그보다는 말끔하다. 간결한 문장과 표현이 너무나 깨끗하고 가지런히 모여 있어서, 이 한 권 안에 허투루 쓰인 문장은 단 하나도 없을 것만 같다.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어떤 느낌일까.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보다 나는 작가의 표현방식에 더 매료된 것 같다. 어려운 주제를 가볍지 않은 무게감으로 풀어가면서도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지루함 한 방울 없이, 나처럼 싫증 잘 내고 쉽게 지치는 성급한 독자를 한번도 놓치지 않고 끌고 가는 힘이라니. 중반부에서 마지막장 까지는 거의 네 시간동안 꼼짝않고 한 호흡으로 읽었다.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 머리끝까지 차 올랐던 몰입의 열기가 정수리에서 증기가 되어 퐁퐁 빠져나가면서 나 또한 피오나처럼 굉장히 무거운 것을 토해낸 듯한 기진함이 느껴졌다. 분명 차갑게 잘 제련된 문장인데 어째서 읽는 나는 이렇게 뜨거워졌을까.

가정법원과 아동법.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선 굉장히 민감하고도 중대하게 다뤄지는 분야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멀었지만) 조금씩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거기에 개인의 가장 극대화된 가치관인 `종교`라는 것이 더해지면 어떻게 될까? 사회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개인의 복지와 안녕이, 나의 삶을 내가 결정하는 개인의 존엄성과 맞부딪혔을 때, 법은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 더구나 그 대상이 이제 막 법적 성년을 코 앞에둔 사실상 청소년이라면, 그가 내린 자신의 목숨에 대한 결정이 온전하다고 판결할 수 있을까? 그러나 법이 내린 결정으로인해 개인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변화를 겪어야 하고, 그에 따라 예기치 못한 변수와 상황들이 생겨나게 된다 하더라도 법은 그에 대해 더이상 책임지거나 관여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도 같이 염두에 두어야 한다.

냉철한 법의 대리인이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포기하지 않는 피오나에겐 이런 상황은 극적인 딜레마가 되어 그녀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든다. 결국은 (사실 당연하게도) 사회적 통념안에서 인도주의적인 판결을 내리지만 나이만 성인일 뿐 아직 미성숙한 아이에겐 피오나가 깨우쳐준 현실이 너무나 크고 두려운 미지의 세계일 뿐이다. 법을 상징하는 피오나는 이 어리디 어린 아이에게 어떤 복지와 안녕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양심적병역기피자에 대한 뉴스가 나오곤 한다.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개념이 상대적으로 약한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들은 대체로 `유난을 떠는` 사람이 되거나 `사이비 종교인`으로 치부되었다가 곧 잊혀져 버리곤 한다. 징병제를 받아들이는 나라에서 개인의 가치관과 존엄성에 대한 존중은 사실 장려되기 힘들다. 법보다 국가나 사회통념에서의 윤리가 우선시 되는 우리의 상황을 생각해볼 때, 서구유럽에서 보이는 법에 대한 강한 외경심과 그것에 헌신하는 사람들의 사명감은 우리가 조금쯤 받아들여도 좋을 듯 싶다. 법이 갖는 힘이 올바르게 강해질수록 개인은 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될테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러면 안되는데 어떤 면에서 자꾸 하루키 생각이 난다. 스카치나 클래식이나 재즈 같은, 이야기를 꾸며주는 자잘한 소품들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같은 소재들인데 어째서 이 글 속에선 어느하나 삐죽 튀어나와있지 않고 편평하게 잘 녹아든걸까. 그 뿌리가 서구유럽에 있는 것들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이언 매큐언과 같은 서양 작가들이 우아하고 지적인 주인공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이 즐기는 문화에 동양적 코드를 넣었다면, 그것 또한 나에게 거슬렸을 것이다. 자연스럽지 못한 소재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불편하다. 아마도 하루키라는 사람 자체가 약간은 위선적이고 약간은 촌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승전하루키라니!!!!!)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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