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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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눈보라치는 쇠락한 해변가를 구부정한 등과 사팔뜨기 눈을 가진 남자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제 발등만 보며 걸어가고, 그보다 스무 발자국 뒤엔 발목에 온갖 해초가 걸린 유미코가 무거운 발을 끌며 따라가고 있다. 그녀가 아무리 크게 그의 이름을 불러도 거센 바람소리에 그녀의 목소리는 그의 귀에 닿기 전에 공중에 흩어져 버린다.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의 먼바다에선 햇빛을 받은 잔물결이 면면이 반짝반짝, 반짝임을 멈추지 않는데 조금만 팔을 뻗으면 닿을 듯이 그 거리가 가까워 보인다. 남자는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홀린듯 바다를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바다를 향해 걸어나가지만 그녀는 뻘에 발이 묶여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서서히 가라앉는 남자의 뒷모습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책을 덮고, 나는 지도에서 아마가사키에서 우메다, 오사카 역에서 와지마까지 이르는 길을 손가락으로 찬찬히 되짚었다. 생각보다 꽤 먼 길이다. 이 먼 길을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해버린 전남편을 가슴에 묻고, 덜컹거리는 기차보다 더 크게 덜컹거리는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부여쥔 채 앉아가는 유미코의 모습을 떠올렸다.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고향에서 죽기 위해 떠난다던 할머니는 그 길로 영원히 사라져 버렸고, 살고 싶지 않을 이유 따위 없었던 스물 다섯의 젊고 건강한 남편은 홀연히 죽음을 택했다. 유미코는 그에게 묻다 지쳐 말하고, 말하다 지쳐 묻는다. 왜 그랬냐고. 그러나 이유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저 죽고 싶었을 뿐일지도 모른다고, 순간 인간의 육체에서 빠져나간 혼이 저 멀리 신비롭게 빛나는 죽음이라는 환상의 빛을 하염없이 쫓아가다 되돌아오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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