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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평점 :
인도를 가본적도 없고, 인도 사람의 글을 읽어 본 적도 없다. 회사에서 업무상 간혹 만나는 일은 있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어서, 인도사람이란 이런 느낌이다라는 그 어떤 판단의 근거도 받지는 못했다. 인도사람에 대해서 딱 하나 굉장히 강렬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호주에 잠시 머물렀을 때 친구가 새로 방을 얻은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 집은 여러 방에 각기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세들어 살면서 화장실과 부엌을 함께 사용하는 쉐어하우스였다. 친구의 옆 방에 살고 있던 인도인 여학생과 엇갈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화장실 안이 온통 카레 냄새로 가득했다. 화장실 앞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인도 여학생은 분명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모양새로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있었고, 욕실 바닥도 샤워의 흔적으로 흥건히 젖은 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래층 식탁을 두고 이 곳 화장실에서 카레를 먹고 나왔을리는 없는데. 그녀가 샴푸를 하고 비누칠을 했을 공간은 샴푸와 비누향 대신 카레 냄새로 가득했다. 그러고보니 그 집 안 전체에 뭉근히 카레냄새가 배어있었다. 그녀가 오늘 하루 카레를 먹었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녀가 인도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몸에선 카레 냄새가 배어 나오는 듯 했다. 이 별 것 아닌 일은 상당히 인상적인 후각의 기억으로 남아 나에게 있어 인도 사람을 규정짓는 단 하나의 상당히 강력한 조건이 되었다. 그건 호불호의 느낌이라기 보다, 어떤 다른 민족과 비교했을 때보다도 확고한 존재감으로인해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자 먼 사람으로 구분지어 버리는 요인이 되었던 것 같다.
책 이야기를 하자면, 인도인의 이야기는 꽤 생경했다. 부모가 정해주는 혼인과 우리나라보다 더 까다로운 관습들. 처음 들어보는 요리이름과 지명에 사람들의 이름은 또 왜그리 어려운지. 거기다 알지 못했던(=관심 없었던) 역사적 사건들까지. 그러나 작가가 주로 내세우는 인도이민자들의 이야기는 나의 지난했던 호주생활을 떠올리게 했고, 신선한 낯섦과 따뜻한 공감이 교차하는 묘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건 잘 모르는 나라의 작은 골목을 헤집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기분과 비슷했다. 처음보는 장면이지만 어디선가 보았고 언젠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모르는걸 조금씩 알아가면서 생기는 안도감, 같은 것들. 작가는 어느 나라 사람이나 모두 공감할만한 세련되고 깔끔한 느낌의 글을 쓰면서도 인도라는 색과 향이 강한 향신료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인도인들은 인도에 살지 않아도, 그 어디에 있어도 저들이 머무는 곳을 곧 자신의 나라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얼마전에 봤던 레이먼드 카버를 자꾸만 떠올렸는데 두 작가의 공통점은 글 속에 `작가`가 없다는 점이다. `글을 쓰는 사람` 으로서의 자의식이 글 속에 드러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서 말했던 바로 그 부분- 그런 면에 있어서 이렇게 담백하게 작가와 주인공의 거리가 먼 글이 주는 서걱거림이 좋다. 무엇보다 어떤 것도 작가가 나서서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은 독자로 하여금 오히려 더욱 이야기에 설득당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