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녀 창비세계문학 37
쿠라하시 유미꼬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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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미. 이정도 퇴폐에 아름답다는 말을 붙여도 될까 싶지만, 어찌됐든 이 소설이 아름답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21세기인 지금 읽어도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자극적인 소재인 근친상간에 대한 이야기가 1965년도에 쓰여진 것이란 사실이 충격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시대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60년대만큼 퇴폐와 어울리는 시절이 또 있을까.... 그 시절을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느낌이 그렇다. 35년생이자 이미 작고한지 한참 지난 작가를 소개하는 수식어가 여전히 전후 `신세대` 작가 인 것에 어폐가 있는게 아닐까 의심했던 마음은 책을 읽고 완전히 사라졌다. 당시 그녀가 문단에 남겼을 충격은 충분히 가늠하고도 남음이 있고 그런 면이 그녀를 영원한 `신세대` 작가로 구분지었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추구하는 최소한의 윤리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근친상간이라는 소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으로서 읽혀지고 소화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글 전체에 흐르는 지적인 기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것이 오직 오락적인 흥미거리로 쓰여졌다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극단적인 소재를 통해 사랑에 대해, 선과 악에 대해 철학적인 사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만 하다. 지적인 불량소녀가 되어 약에 흠뻑 취한 듯한 기분이 든다. 뭐야 이거, 하면서도 책 속에 점점 빨려들어 간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빼먹을 수 없겠다. 상실의 시대를 처음 읽고 놀랐던 그 우아한 퇴폐미라는 것이 그만의 독자적인 전유물은 아니었구나, 싶다. 일본에 이미 이런 분위기의 소설이 있었고, 오히려 하루키의 글은 이에 비하면 얌전한 편이라고 해야겠지.

전혀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단지 소설리스트의 추천목록에서 골랐던 책이라 충격이 컸다. 구정연휴에 읽었는데 아무래도 엄마랑 나물무치고 전 부치면서 오손도손 다정하다가 들어와서 읽을만한 책은 아니라는건 분명하다. 평소 철학적 호기심보다 윤리의식이 더 강한 사람이라면 아예 읽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소설이 갖는 고전적 퇴폐에서 비롯된 신비로운 분위기에 남몰래 매료될 사람 또한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누군가에게 이거 명작이니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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