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 집중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옳고 그름은 무엇인가?' 추상적 개념은 온전히 그것만이 떠오를 때 진정한 의미를 모색할 수 있는 것이지만, 쉽게 접근하기 위해 늘상 예시를 들곤 한다. A는 옳은가? B는 그른가?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시대를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현재가 아닌'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거대한 흐름 속에 집중해서 말이다. 그 순간, 고민 없이 나오던 나의 대답들이 고뇌의 순간 속으로 다시 한번 빨려 들어간다.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당신은?
그렇다. 옳고 그름의 영역에 있는 '윤리'는 절대적일 수 없다. 윤리라는 개념은 시대상에 절대적으로 종속되어 있으며,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면 할수록 윤리 역시 정비례의 관계로 추종한다. 그런데 우리는 큰 착각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마치 현시대의 윤리가 절대적인 것마냥 모든 것을 재단한다. 과거의 A 행위는 미개하고 반인륜적인 행위였고 현재의 B 행위는 참으로 윤리적이라고 말이다. 반대로, 현재의 C 행위는 비윤리적이고 그것이 D 행위로 바뀌어야 윤리적이라고 말하곤 한다. '늘 현재만을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사고이지만, 난 늘 이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이 나의 그런 생각에 더욱더 큰 확신을 주었다.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에게 매몰차게 손가락질하듯, 마찬가지로 미래의 우리는 현재의 우리에게 거세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댈 것이 자명하다. 전술한 대로 윤리의 기준은 바뀌어 갈 것이며, 미래의 우리 역시 '늘 현재만을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과거-현재'에서 '현재-미래'까지 사고의 폭을 확장시켰다면, 이제는 여기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가 되는 순간은 필연적으로 도래할 수밖에 없으며,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듯, 미래의 우리 역시 현재의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는 무시할 수 없는 범세계적 지구촌 문제에 직면해 있다. 지구온난화, 전쟁, 쓰레기, 플라스틱, 에너지, 인종차별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사회적/경제적 문제들이 있다. 우리는 이것들이 이미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복합적인 문제들이기 때문에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는 현실을 인지하고 인정함으로써 현재의 우리에게 크나큰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의 우리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나쁜 걸 알면서 왜 고치지 않았지?'라고 생각하고, 우리의 시대를 비윤리적/비문명적 시대라고 비난할 수 있다.
이제 저자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챘을 수도 있겠다.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값만을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윤리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이미 우리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과거를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현재의 우리에게 조금 더 겸손해지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 미래의 우리가 현재의 우리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끔.
다른 이야기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른 윤리 인식 차이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바로 고전을 읽는 것이다. 몇백 년에서 몇십 년 전에 쓰인 고전들을 읽다 보면 현재의 윤리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미국 고전에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 노예), 고전 적응기에는 이 부분들에 적응을 못해 독서가 즐겁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읽으면서 그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다 보면 굳이 윤리적 혐오감을 느낄 필요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냥 개인적인 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