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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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 순간, 할머니의 표정은 편안했다. '개운하게 가겠다'라던 결심이 그대로 이루어진 듯 모든 짐을 내려놓고 떠나는 할머니의 입 끝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148~149p

흔한 주제인 안락사의 옳고 그름. 이 책은 단순히 그것만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이 책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자기의 삶을 개척해나감과 동시에 그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주체성이었다. 인간은 과연 그 영역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자연의 섭리이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여겨져오던 죽음이란 것이 스스로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당연히 자살은 배제해야 함이 합리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자살은 결코 주체적인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 제때가 있는 거지. 사람이고 술이고 간에. 그런 이치야

121p

스스로 몇 년 후에 목숨을 끊겠다고 선언한 할머니를 앞에 두고 할머니의 선택을 지지하는 가족들과 그럴 순 없다고 반대하는 가족들이 생긴다. 과연 그게 나의 어머니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래 엄마, 열심히 살았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처구니없는 답변이지만 딱히 거절할 방도가 없을 것 같다. 본인이 본인의 삶을 마감하겠다는데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선택을 저지할 수 있는 걸까. 당연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셨으면 하는 게 자식의 마음이지만, 어머니가 만약에 그렇게 선언하신다면 마지못해 수긍해야만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죽음을 다짐하는 입장에 선다면 어떨까? 신체적인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면 나는 과연 그렇게 죽을까? 죽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병원 신세도 지지 않을 수 있고 오랫동안 지속될 수도 있는 가족들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안락사'는 최고의 선택지가 아닐까 싶다. 자신이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며,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면 발생하는 무시할 수 없는 비용도 아낄 수 있다. 이런 신이 내린 선택지가 또 어디있을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완벽한 안락사에 찬반의 의견이 나뉘는 것일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고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러모로 안락사가 좋은 선택지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부모님'이 오래 내 곁에 있었으면 하는 욕심과 '부모님 없는 자식'이 되기 싫은 마음, 부모가 병으로 겪을 고통보다 자신이 부모를 잃음으로써 겪는 고통을 더 생각함으로써 안락사를 반대하는 의견이 나오는 게 아닐까 조심히 추측해본다. 물론 이 비합리성과 이기심이 부정적인 의미로써의 단어는 아니다. 논리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비합리성과 이기심밖에 없다.

어쨌든 죽음을 맞이하는 건 개개인마다 느끼는 슬픔의 정도가 다르듯 매우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가타부타한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는 것이 값진 것이 아닐까.

우리들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놀라우리만치 '죽음'에 무심하다. 특히나 자신의 죽음에 말이다. 아마도 깊게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도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일 수도. 하기야 죽음을 바라보고 살면 지금 이 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싶다. 지구의 99.99%의 사람들은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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