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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평점 :
내 삶에 스며드는 잔잔한 충격.
백영옥의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나는 에세이를 잘 읽지 않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남이 걸어온 인생을 남에게 훈계하기 때문일까, 참견 받기 싫어서일까. 그런 나의 취향 덕분에 소설에 눈을 뜨고 나름대로의 식견을 쌓아 왔다. 하지만 단연코 이 에세이는 특별하다.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나라는 존재에게 이 에세이는 특별했으며,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서평도 특별할 수밖에 없다. 평소에는 분석적인 서평을 많이 쓰지만, 이번 서평만큼은 철저히 내 감정에 충실하고, 스스로에게 호소하는 서평을 쓰고자 한다.
마치 나를 위해 만든 책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의 미래를 위해, 가족의 미래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위해, 수많은 포기를 하고 인내의 연속이 계속되는 내 삶을 차분히 위로해주는 느낌이다. 정서적으로 몇 차원 위에 서 있는 백영옥이라는 사람이, 아직 정서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어쩌면 매우 미숙한 나라는 작은 존재를 보듬어주었다.
뭐랄까, 이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작가의 손을 거친 책이지만 내가 나의 이야기를 쓴 것 같은 느낌인 것 같다. 나는 막연한 목표라고 볼 수 있는, 미래의 행복과 안정을 위해 많은 것을 감내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 감내하는 행위에 대해 따스한 의미를 부여해주어 나로 하여금 '난 멋진 사람이구나!' 혹은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거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의 삶에 엄청난 충격이 아닌, 잔잔한 충격을 주었다. 몇 년 동안 내 삶은 아마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가짐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그래서 몇 년 동안의 내 삶이 더 행복할 수 있고 멋있는 사람이 사는 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나를 위로해주기 때문에 좋았던 점은 명백하다. 하지만 작가의 챕터를 마무리 짓는 말들이 현재의 나와 너무나도 비슷해서, 신기한 마음과 '아, 나의 이런 사고방식과 삶이 옳은 쪽에 가깝구나. 다행이다.'하는 마음이 교차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삶의 방식에 정답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다들 동감하지 않을까?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누가 동조를 해준다면, 당연히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칭찬을 해준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쓴 책이, 오직 나만을 위한 책으로 탈바꿈하는 순간, 아마 그게 인생 책이 되는 게 아닐까?
흘러넘쳐도 좋다. 그냥 흘러넘쳐도 좋다. 작가의 흘러넘치는 '밑줄의 문장'들에 나는 삶에 대한 확신이 흘러넘치게 되었으며, 지금의 나에 대한 애정이 흘러넘치게 되었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확신도 흘러넘치게 되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 책은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순기능은 모두 담아둔 책이다.
작가가 발췌해 온 다른 책의 밑줄들은, 단연코 최고의 문장들이었다. 그 밑줄을 통해 작가의 느낀 점을 우리가 제공받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중으로 가공된 양질의 깨달음을 단 한 권의 책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