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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 소희와 JB 사람을 만나다 - 터키편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4월
평점 :
독서모임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오소희씨. 오소희씨 블로그 글을 보며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주변 환경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관심, 깊은 사색이 없이는 그렇게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세 살 아이를 데리고 터키 여행을 한 오소희 작가 자신의 여행기이다. 여행기는 내가 몰랐던 다른 나라의 문화나 환경에 대해서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읽는 내내 설레고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작가가 특별한 곳을 가지 않았더라도, 여행 중에 깨달은 점, 자신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는 여행기는 감동을 준다.
이 책은 여행기이지만 한 편의 소설 같기도 하다. 그녀가 만난 사람, 도착한 곳의 자연환경과 유적지의 모습 등 그녀의 눈길이 닿았던 모든 부분들이 생생한 묘사로 한 편의 그림처럼 살아난다. 과장하지도 장황하지도 않게, 담백하면서도 관조적인 문체로 표현했기에 더 진실되게 다가온다.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 심사위원이 참가자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가수가 너무 감정을 담아 노래하면 관객이 그 감정을 느낄 여지가 없기 때문에, 관객이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적절히 자제해가며 불러야 한다는 말... 이 책에서 작가가 자신의 절절한 감정을 담아 글을 썼다면 나도 이 정도의 감동을 느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블로그 글을 보았을 때는 저자의 생각에 감동 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녀의 글솜씨에도 감탄하게 되었다.
세 살 아이를 데리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라... 사실 난 내 아이를 데리고 단둘이 해외 여행은 커녕, 국내 여행, 제주도 한 달 살이도 싫고, 동네에도 나가고 싶지 않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이 발걸음과 마음을 무겁게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본 오소희씨는 그 자신도 여행을 좋아하지만,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아이에게 몸소 보여주고 체험 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나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기에, 참 대단해 보였다. 물론 이런 여행이 저자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글 중간 중간에도 나오듯이 아이를 통해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고,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는 즐거움도 있으니 아이와의 여행이 그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용기가.....;;;)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자 자신이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자세히 관찰한 경험으로 부터 나온 생각이겠지만, 어떤 사람에 대해 단정 짓는 표현은 어쩐지 불편하다. 그 사람의 표정이나 외양을 보고 어떨 것 같다든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대개 이런 부류라든지 하는 것...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저자에게) 좋은 인상의 사람은 역시 좋았고, 나쁜 인상의 사람은 역시 나빴다는 이야기조차. 어떤 사람에 대해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도 없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하고 교만한 생각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런 표현은 거슬렸다.
저자가 다른 여행객들이나 터키인들과 나눈 말들은 내가 해외 여행을 했을 때 짧게 나누는 대화처럼 겉도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참 좋았다. 자신의 생각을 세련되게 나타낼 수 있고, 그것을 영어로 능통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부럽기도 했다. 어쩌면 긴 이동거리와 한 숙소에 오랫동안 머무는 물리적인 요인도 작용했으리라...
작은 것, 낮은 것, 기본적인 것을 사랑하고 가까이 먼저 다가가는 저자의 모습이 참 좋다.
읽고나서 궁금한 점은 책을 읽으면 저자가 캄보디아나 인도, 터키,라오스,아프리카를 여행한 것은 알겠는데,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는 안 가보았는가 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만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일종의 편견이 있는데, 이 작가가 선진국에 가서 여행을 했다면 어떤 것을 보고 느꼈을지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터키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긴 했지만, 이 책은 읽고 나니 어디든 혼자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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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쪽
한숨을 푹 쉬고, 지린내가 은은하게 널리 퍼지는 변기 옆에 쭈그려 앉아 손빨래를 하는데, 아이는 내가 무슨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엄마!"
잠들었다고 생각했떤 녀석이 나를 부른다.
"응?"
"이 방, 너무 예쁘다."
등 쪾에서 가슴까지 훈훈한 기운이 전달되어 온다. 고개를 들어 방을 둘러보니, 파리가 주렁주렁 매달린 이 방이 이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이다.
여행이라는 건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여행을 하는 거겠지만, 이 꼬마 녀석과의 여행, 정말 할 만하다.
212쪽
처음에 나는 아이를 이곳에 데려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이가 오래전부터 이곳에 올 예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에게 가방을 들게 하고, 자신의 힘으로 이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이의 첫 걸음마, 첫 번째 열감기, 처음 내지른 일성, 이 모든 것들은 매일매일 또 다른 '오늘'을 위해 성실히 축조된 밑계단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는 내가 끌고 가는 지점까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열린 마음이 닿는 곳까지 가는 것이다. 이 아이의 인생은 오롯이 이 아이의 것이다. 내가 주관할 수 있는 것은 가방을 들어주는 정도의 일일 것이다.
257쪽
"엄마, 이것 봐."
아이가 비밀을 털어놓듯 내게 속삭인다. 아이의 통통한 발과 다리 위로 서너 마리의 벌들이 앉아 있다. 물기를 찾아 해안에 내려앉았던 벌들이 거칠게 밀려드는 파도에 휩쓸려 우왕좌왕하다가, 온기가 느껴지는 아이의 다리로 몰려든 것이다. 햇빛도 거의 없고 날개는 물에 젖었으니, 벌들에게는 환하고 따뜻한 중빈의 다리가 태양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벌들이 나한테 왔어."
아이는 벌들을 위해 최대한 다리를 내어주면서 혹여 그들이 날아갈까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를 좋아하나 봐."
340쪽
부모가 어린아이의 교육을 위해 해줄 수 있는것은, 아이가 미래에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을 미리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갖기 힘든 것을 잘 자리 잡을 수 있또록 도와주는 일이다. 이를테면, 고갈되지 않는 자연에 대한 사랑, 열등하고 약한 것ㅇ르 보호하고 배려해주는 마음, 고마움을 느끼고 표현하는 법, 혹은 어떤 상황에서도 좋으면 'YES!' 싫으면 'NO!'하고 말할 수 있는 투명함 같은 것들. 정말로 늦어지거나 실기하면 그 사람의 영혼과 인격 밖으로 걸어 나가 되돌아오지 않는 것들, 필생의 숙제가 되는 것들... 부모가 따로 시간과 돈을 품을 내어 아이에게 해주어야 할 것은 어떤 식으로든 아이의 영혼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347쪽
여행이란, 내가 있던 자리를 떠나 내가 있던 자리를 보는 일이다.
347쪽
나는 더 떠돌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다. 출산과 모성이라는 진한 삶의 경험은 그 이전에 내가 했던 여행에서는 볼 수 없었떤 것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이전에는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세상을 들여다보았다면, 이제는 거울에 비춰진 '나'라는 반영을 부수고 판단 없이 세상을 향해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았따. 제대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 가운데 아프고 힘든 이들은 안아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떠돎의 종착지가 어떤 것이 될지는 미리 생각하지 않기로 했따. 여행은 늘 나를 능가하는 현명함으로 나를 데려다주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