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향 - 이기영 장편소설 ㅣ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20
이기영 지음, 이상경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1월
평점 :
프로문학의 최고봉으로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 오랫동안 안읽었다. 고등학교 때는 프로문학 작품이 시험에 나올 일이 없어서 안읽었는데, 그 이후에는 안읽어서 조금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근데 영화도 너무 유명하고 그러면 왠지 안 보게 되잖아? 그래도 올해는 나의 ‘이기영의 해’이기 때문에, 도전해 보았다.
너무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마치 이 소설 속에 완벽한 한 마을이 직조되어 있고, 인물들은 그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지식인인 희준은 다른 한국 소설들에서 그려지는 ‘지식인 인물’에 비해 장광설이 적고, 엉덩이가 가벼워 훨씬 이 세계속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인물이라 흥미로웠다. 한국문학에서 장광설에다가 누구든 가르치는 지식인 남성 인물은 어떤 상황에서 더 강화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잠시 들었다. 희준은 말을 많이 하는 인물이라기보다 요즘 시민단체의 상근활동가?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소설에는 순사도 안나오고 군인도 안나오고 공권력이 거의 안나온다. 가끔 드문드문 한글로 된 일본어가 출현하고 있을 뿐이다. 30년대 소설이라서 검열의 영향도 있었을 터이다. 식민지 조선의 농민에게 ‘적’은 마름이라기보다 ‘제국주의 일본’이었을 터인데, 그 식민 종주국이 이 소설에서 싹 가려져 있다. 그래서 처음 내가 소설을 읽을 때에도 와 왜이렇게 완벽하게 소설 속에서 돌아가는 마을이 있나? 생각했던 것은 그 마을 밖에서 마을을 통제하고 관할?하는 식민지 권력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야튼 이 소설의 소설로서의 재미는 4/5정도까지 흥미진진하다. 다양한 인물과 에피소드들이 이어지고 있고 나는 게임을 잘 모르지만, 심즈?라는 게임을 하는 친구에게 이 마을을 심즈로 만들어 달라고 하고 싶었을 정도! 마지막 부분은 엄청 실망스럽고 재미가 없는데, 이기영이 마무리 안하고 김기진이 마무리 했다는 썰이 있다고 한다. 흠.... 김기진?!?!??이 마무리 했다면 납득...
전체적으로 여성혐오적 에피소드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이것이 그 당시의 여성의 법적 지위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들의 참혹한 에피소드들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주고 있어서 이기영 소설을 여성적 관점에서 분석한 글을 찾아보고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소설의 한계로 들어지는 것이 마름의 약점을 이용해서 농민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모습은 <서화>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나는 것 같은데 이런 방식에 대한 연구가 있는지도 궁금했다.
노동자의 공적인 쟁의의 승리가 자본가?나 부르주아?의 사적 약점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사적’인 것이 ‘사적’이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사적’이고 ‘젠더적’인 약점이 지금까지의 연구사에서 ‘한계’로서 지적되어 온 것이 타당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고향>이라는 작품 속에서 혁명적 요소는 식민종주국인 일제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러한 ‘사적’이고 ‘젠더적’인 한계로 지적되어온 부분을 재해석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