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로 말해요 - 농인 아내, 청인 남편이 살아가는 이야기
가메이 노부타카.아키야마 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삼인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방식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 자들에 대해 잊고 지내기 일쑤다. 나 역시 모든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완전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사실 ‘농인’이라는 말도 직접적으로 의미를 알고 받아들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변에 가까운 농인이 없을뿐더러 행여 길거리에서 농인을 봤다할지언정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허투루 보고 말았을 뿐이다. 농인의 언어인 ‘수화’도 텔레비전 화면 한 귀퉁이에서 뉴스 내용을 열심히 손짓으로 전하는 모습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하긴 나는 여태 ‘수화’를 언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으니 얼마나 철저히 청인으로만 살아왔는지 알만하다.

『수화로 말해요』를 읽고 나는 제법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가볍게 농인 아내와 청인 남편이 살아가면서 서로 충돌하고 화합하는 아기자기한 이야기쯤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상대로 너무나 잔인하게 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그동안 청인중심주의로 살아왔다는 사실이 내겐 더 큰 충격이었다.

 이 책은 나처럼 농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청인들에게 농인들의 삶을 엿보게 하고, 농인들을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갖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농인 아내 ‘고양이’ 아키야마 나미와 청인 남편 ‘거북이’ 가메이 노부다카는 자신들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일상생활을 들려주며 농인들의 삶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지극히 평범할 것 같은 고양이와 거북이의 결혼생활이 청인의 입장에서는 흥미롭기까지 했다. ‘문 좀 열어줘’에서 듣지 못하는 고양이를 상대로 갖가지 방법을 생각해 집으로 들어가려는 거북이의 처절한 몸부림은 농인과 청인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명확하게 일깨워주었다. 전혀 듣지 못 한다는 것...소리는 들리지만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듣지 못한다는 것이 확실하다. 듣고 말하는 것이 일상인 내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그러니 농인의 입장에서 청인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청인이 사회를 주도한다는 이유로 소수인 농인은 청인들의 입장을 강요받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들의 언어인 수화를 인정하지 않고 구화를 강요했으며 청인들과 같은 삶을 살아가길 당연히 바랬던 것이다. 그들만의 언어와 그들만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농인들의 삶은 말 그대로 투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의 삶이 그랬다. 농인으로 청인들의 학교를 다니고 수강권  보장을 요구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농인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수없이 아파하고 끊임없이 투쟁하는 고양이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얼마나 무시하고 살아왔는지 알 것 같았다. 포기하거나 투쟁하거나...둘 다 쉽지 않은 방법들인데...농인들은 선택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다행히 고양이와 거북이 같은 사람들로 인해 청인들도 현실을 직시하는데 도움을 받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농인을 단순히 장애인으로 취급하여 배려하는 차원으로 그들에게 특혜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청인과 똑같은 사람으로써 최소한 그들이 누려야할 권리들을 보장해주는데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된다면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청인으로만 살아온 나에게 장애인을 사회적 약자가 아닌 같은 대등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한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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