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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7월
평점 :
인간의 대한 인간의 막연한 두려움... 그 원인은 속을 알 수 없는 정신세계에 있는 듯하다. 그래서 많은 공포물에서 인간의 정신세계의 일탈 작용으로 인한 여러 미스테리를 다룬다. 대부분 인간의 이성이나 감성으로써는 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르는데 그 원인은 정신이상에서 찾는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이 강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자라면서 큰 충격을 받을 경우 그로 인한 고통과 스트레스로 인해 병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병든 정신은 일탈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보상심리로 타인에게 고통을 안겨주거나 보복 행위를 하기도 한다. 그냥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정신상의 이상으로 범죄를 일으키면 더 섬뜩한 공포를 느낀다. 후자가 더 미스테리하고 주술적인 냄새가 풍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인간의 정신이상을 소재로 삼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막연한 두려움,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공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피 냄새만 진하게 풍기는 류의 공포는 거북하고 잔인하기만할 뿐이라 여겨진다. 기시 유스케의 『 13번째 인격 ISOLA』는 제목에서부터 다중인격을 연상해 무지 흥미를 유발했다. 읽으면서도 재밌게 봤던 영화 <아이덴티티>와 오버 랩 되면서 내용을 미리 짐작해 보기도 했다. 한 사람 내(11개의 인격이 존재한다)에서 살인마 인격이 다른 인격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내용의 영화와 한 소녀에게 13개의 인격이 존재한다는 내용만으로도 엄청난 공통점이 있었다. 어쩌면 『 13번째 인격』의 결말이 <아이덴티티>와 이어질 듯 보이기도 했다.
『 13번째 인격 』은 일본이 겪은 큰 자연재해인 한신대지진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신 대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심리치료를 돕기 위해 유카리라는 젊은 아가씨가 자원봉사를 한다. 유카리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엠파시다. 그래서 사람들의 진정한 고통과 괴로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 그것을 해소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런 중에 유카리는 지진으로 머리를 다쳐 입원한 16세 소녀 치히로를 만나게 되고 그녀가 여러 인격을 지닌 사실을 알게 된다. 5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그 당시 유체이탈과 임사체험을 경험했으며 그 후 숙부 내외와 살며 학대를 받은 치히로는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내면서 12개의 인격이 생겼다. 하지만 13번째 인격 ‘이소라’는 한신대지진 이후 생겨났지만 왜 생겨났는지 나머지 12개의 인격들도 알지 못한다. 13번째 인격에서 지독한 원한과 분노의 기운을 느낀 유카리가 치히로의 일에 직접 뛰어들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신세계에서>를 통해 기시 유스케의 글을 접했고 그의 데뷔작이라 하여 많은 기대를 안고 책을 읽었다. 다중인격...그것도 13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16세 소녀라니...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감정 상태를 전파로 감지하는, 즉 타인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엠파시의 설정만으로도 심리 스릴러의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한신대지진이라는 실제 사건과 연관시키면서 글을 전개한 것도 독특했다. 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다쳤다. 그 사건의 두려움이 소설에 자연히 스며드는 효과를 노린 것 같다. 13번째 인격 이소라의 탄생배경에 유체이탈과 임사체험이라는 초현실적인 현상들을 다루어 재미를 더했다. 결말 부분...반전이라 하기엔 그 느낌이 부족하고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인격들의 변화로 마무리 한 것도 무지 마음에 들었다. 또한 치히로의 인격들에게 부여한 이름의 설정이 ‘이소라’의 존재를 늦게 알아 차리게는 했지만 인격들에게 성격과 생명력까지 부여하는 느낌이라 무척 만족스러웠다. 데뷔작이라 하여도 기시 유스케의 작품인데 이 정도의 만족감은 주어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