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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좋은지 몰라 다 해보기로 했습니다
장성원 지음 / 비버북스 / 2025년 8월
평점 :
[뭐가 좋은지 몰라 다 해보기로 했습니다]
십 대 때 진로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있던 시절에는, 마흔이 넘으면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딩크족 커리어우먼으로 바쁘게 일하는 모습이 그때 내가 그려 보던 미래였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상상과는 꽤 다른 자리에 서 있다. 여전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집에서는 두 딸이 나를 하나의 기준처럼 바라보고 있다.
주변에서는 “스스로 깊이 고민하다 보면 결국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된다”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그렇게 고민해 온 결과, 이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고 저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만 자꾸 늘어나는 것이 요즘의 솔직한 모습이다. 그러다 [뭐가 좋은지 몰라 다 해보기로 했습니다]를 읽으며, 내 오랜 고민과 조금 다른 관점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좋아함은 어느 날 우연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 속에서 조금씩 형성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수많은 경험과 기억을 지나오며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만들어지기도 하고, 또 언제든 부드럽게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천천히 곱씹다 보니, 20여 년 전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선택했던 대학 전공에서 이미 마음이 떠났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도 인정해 줄 수 있게 되었다. 한때는 그 선택이 ‘평생 안고 가야 할 것’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 시절의 나에게 최선을 다한 하나의 선택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직업을 경험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준다. 그 많은 시도들이 실패의 기록이라기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만들어 가기 위한 실험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읽다 보면 ‘나만 이렇게 방황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먼저 찾아온다.
또 이 책에는 에세이 사이사이에 독자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질문 섹션이 모두 7개 실려 있다. 그 덕분에 이 책은 그냥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 두는 책이라기보다, 잠깐씩 멈춰 서서 나에 대해 적어 보고 정리해 볼 수 있는 작은 워크북 같은 느낌을 준다. 질문에 답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그동안 막연하게만 떠올리던 생각들이 조금씩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마음에 깊게 남은 지점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 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 질문은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뿐 아니라, 인생 중간에서 방향을 다시 잡아 보고 싶은 누구에게나 유효한 물음처럼 느껴진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분명해지면, 그 안에서 선택하는 직업들은 결국 그 목표에 조금씩 가까워지게 해 주는 여러 갈래의 길이 된다. 직업이 나를 규정하는 단단한 틀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한 걸음씩 다가가게 해 주는 도구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나니, ‘진로 탐색’이라는 말이 예전처럼 버거운 숙제처럼만 느껴지지 않았다. 끝내 답을 내야만 하는 시험 문제가 아니라, 계속 변해 가는 나를 따라 한 발씩 옮겨 가 보는 긴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창창한 앞날을 두고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에게도, ‘혹시 나 오춘기인가?’ 싶을 만큼 방황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도 조용히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에 담긴 질문들을 하나씩 지나가다 보면, 어느새 조금 더 솔직한 얼굴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도서를 제공받아 정직하게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