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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 푸코.라캉.르장드르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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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없는 어둠 속에서의 투쟁

- 사사키 아타루 ‘야전과 영원’

 

 

 

언젠가 그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아주 단호하고 명쾌한 그의 문체에 단숨에 매료된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철학책들을 읽다보면 사상의 체계가 치밀할수록 읽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에 반해 깔끔하고 시원시원하게 말하고자하는 바를 전달하는 사사키의 문체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전과 영원>은 그의 사상의 전반적인 체계가 담겨있는 책이기 때문에 여느 철학책처럼 읽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어투에서 힘이 느껴지는 것은 여전했다. 하지만 교양서적이라기 보다는 인문학 도서에 가까운 책이었기에 읽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여기서는 책의 전반적인 인상에 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푸코와 라캉은 여러 인문학 도서에서 수도 없이 그들의 이름을 들어 왔으며, 그들의 치밀하고 독창적인 사상에 머리가 지끈거린 적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책을 여는 것이 나에게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처음 책을 받고서 소위 ‘니체의 팬’을 자처했던 사사키가 니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딘가 섭섭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분명 푸코와 라캉, 르장드르의 탈을 쓴 니체와 사사키의 책이었다. 책을 조금씩 읽다보면 우리는 니체가 제시하는 방식에 따라 그의 글을 읽게 되는데, 이는 사실상 니체에 따라 푸코와 라캉, 르장드르 세 사람을 꿰어내는 것과 같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는 ‘읽음’, 즉 독자의 입장에서 ‘독서는 혁명’임을 어필했다면, 이 책에서는 읽기에 앞서는 작가의 입장에서 ‘씀’이라는 단계를 이야기한다. 사사키가 말하는 ‘씀’이라는 것은 아주 혁명적이고 고달픈 과정이다. 어떠한 텍스트를 읽어낸다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글을 읽는 것에 지나지 않고, 저자의 전체를 통찰하는 위험하고 도전적인 일이다. 그에 선행하여 그 텍스트라는 것은 어떠한 정보에도 기대지 않고 계속적으로 스스로와 부딪힘을 통해 쓰여질 수 있는데, 여기저기서 긁어모아서 글을 쓰는 단순한 정보의 수집과는 명백히 다르다.

 

 

지극히 간결한 문제로 최대한 읽기 쉽게 설명을 하지만, 푸코, 라캉, 르장드르의 사상이 마냥 쉽지 않은 탓에 그의 글이 쉬이 읽히지만은 않는다. 사사키는 매번 ‘반복적인 읽기’를 매우 강조했는데 그 ‘반복적인 읽기’가 필요한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책을 중반쯤 읽다보면 그가 반복적 읽기를 유도하기 위해 이러한 글을 써내려간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너무나 다른 것 같은 세사람으로부터 출발해 셋을 관통하는 일관성을 찾아내려는 시도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자기가 살아가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적인 구조가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어떠한 조건이나 기준에 나 자신을 맞춰버리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한 구조 속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과정 자체도 힘들뿐 더러, 벗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마련이다. 특히 사사키가 살아왔던 일본의 상황과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리 동떨어진 생각은 아니다. 사사키가 푸코와 라캉, 르장드르, 그리고 니체의 사상을 통해 돌고 돌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주체를 가질 것을 제안하는 것은 아닐까. 그 힘들고 고독한 투쟁의 과정 속에서도 반드시 스스로와 마주할 것을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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