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
채도운 지음 / 삶의직조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 제공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작가 소개

1년 전쯤 채도운 작가의 소설을 처음 접했던 [강낭콩]에 이어

이번에 [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는 내가 두 번째로 읽은 그녀의 단편소설집이다.

[강낭콩]에는 2편의 단편이 실렸었고 내가 처음으로 썼던 서평이기에 잊을 수가 없다.

채도운 작가는 1992년생으로 북 카페 '보틀 북스'와 출판사 '삶의 직조' 대표로 있으며

2021년 도서 '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로 데뷔했다.

짧은 내용이지만 묵직한 주제를 함축시키는 채도운 작가의 소설은

쉽게 읽히면서도 읽고 나면 표지 그림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워진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소박한 문장으로 담담하게 쓰인 소설이

리얼리티쇼보다 더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내 감정선을 건드리고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 책 소개

이 책 속에는 다음 3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1.<드림 래더 (Dream Ladder)>

2.<도마 위의 생>

3.<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

1. <드림 래더>

말로만 듣던 청년들의 열정페이와 그것을 교묘히 이용해 먹는 정치인들의 민낯을 드러내 취업난이 심각한 요즘 젊은 세대들이 많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성실함과 도덕성으로 똘똘 뭉친 순수한 청년들이 취업을 미끼로 그들을 무급으로 이용하는 기성세대들에게 매번 실망하면서도 기대를 놓지 못하던 중

"기대는 마음의 빚이야. 마음에 달아 두지 마." (p19)라고 말했던 승재의 한마디에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건 현실이 아니라, 스스로가 걸어 둔 기대일지도 모른다.

세상엔 공짜가 제일 비싼 법이다."(p20)라고 시은을 통해 드러낸 작가의 생각이 가슴 아팠다.

2. <도마 위의 생>

학창 시절 학폭의 가해자였던 유미가 성인이 된 지금 도마 위에서 고기를 손질하다가

문득 과거의 철없던 행동으로 뒤늦게 죄책감을 느끼는 내용인데, 손끝에서 느껴지는 고기의 뭉클한 촉감과 비릿함이 과거 그녀가 친구의 목을 조르던 손의 감각과 역겨움으로 매끄럽게 연결되지만 내용 자체는 내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3. <이진의 삶은 이지(easy)하지 않다>

주인공 이진의 연령대가 나와 비슷해서인지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 소설의 시놉시스

주인공 이진의 삶은 딱히 굴곡짐 없이 평범했다.

그녀가 소설가 하이안을 만나기 전 까진.

죽 가게를 하는 이진이 시장에서 값을 흥정하고 마늘 한 톨, 고추 한 개라도 덤으로 챙기는 억척스러움은 퍽 자연스러운 그녀의 생동감이었고 시장 사람들과의 정겨운 관계를 유지하는 사회적 교류였다.

요즘 아이들 답지 않게 엄마 이진에게 무척 관심을 갖고 다정하게 대하는 대학생 아들 고명과 아내의 잔소리에 화를 내기보다는 웃음으로 대응하는 남편 고환.

이 세 사람이 이루고 있는 가정은 소소하지만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아들 고명이 자신이 좋아하는 책과 저자와의 북토크 행사에 엄마를 억지로 동행시키면서 조용히 사건이 일어나는 조짐을 보였다


아들은 분명 순수하고 선한 의도였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면 사랑하는 이에게 그 음식을 권하듯 아들 고명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저자의 사인이 담긴 책을 엄마에게 선물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엄마 이진이 작가 하이안을 대면하며 받았던 충격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초라한 자신의 행색과 달리 너무나 우아한 표정과 고상해 보이는 말투에 주눅이 든 이진은 작가 하이안의 손가락에 끼워진 은반지에 꽂히는 엉뚱함으로 표출된다.

작가 하이안의 작품 [미아]가 소설 속 소설로 등장한다.

[미아]의 심리적 갈등과 이진의 내적 갈등을 교차시키면서 미아와 이진의 돌발적 행동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이라는 역할 자체의 불합리성으로 증폭되는데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는 그다지 공감되지 않았다.

역할의 문제보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자존감 상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린 왜 자꾸 곁눈질을 하는가.

내게 있는 것만 보았을 때 결핍을 느끼지 않았던 것도 남의 것을 보는 순간 질투와 욕망으로 비로소 자신의 결핍을 들여다본다.


외적 환경은 그대로인데 내적 변화로 갈등하는 이진의 삶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상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처럼 혼란스럽다.

단순히 그들만의 리그라고 치부해 버리면 될 것 같지만

또 막상 닥치면 나 역시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삶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감이다.

비록 화려한 삶은 아닐지라도 열심히 살았다는 것,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았다는 것,

한 가정을 별 탈 없이 잘 꾸려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고 존경받을 만한 일인데 마치 모든 게 타인을 위한 희생이었고 나 자신을 위한 삶은 아니었다고 부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진의 가정이 화목한 것은 이진의 업적이며 그녀의 삶 자체다.

자꾸만 '나 자신을 위한 삶'이라는 명목을 내세우는 사회적 인식이 나는 불편하다.

나는 나 혼자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닌 가정에서의 역할, 사회에서의 역할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존감을 지키는 건 누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직 자신만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임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건 현실이 아니라, 스스로가 걸어 둔 기대일지도 모른다.

세상엔 공짜가 제일 비싼 법이다. - P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