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 -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두 거장의 마지막 가르침
미구엘 세라노 지음, 박광자.이미선 옮김 / 생각지도 / 2025년 11월
평점 :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 제공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는
칠레 출신의 작가이자 외교관, 정치인으로 살았던 미구엘 세라노(Miguel Serrano)가
헤세와 융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영적 교감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았던 내용을 엮은 책이다.
당시 34세였던 세라노는 1951년 74세였던 헤세를 처음 만나 1962년 헤세가 사망할 때까지 10년 동안 네 차례에 걸쳐 그를 만났으며 그 사이 여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융과의 만남은 1959년 당시 융의 나이 83세 때 처음 이루어졌으며 융이 1961년 사망할 때까지 역시 네 차례에 걸쳐 만났고 융과 세라노 사이에도 여러 통의 편지가 오고 갔던 내용을 일기처럼 기록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헤세와 융,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세라노가 셋이서 만나 대담하고
서신이 오간 줄 알았는데 이미 노년에 접어든 헤세와 융은 각각 스위스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은둔 생활 중이었고 세라노가 어렵사리 그들을 따로 만났다.
즉, 미구엘 세라노가 헤세와 융의 가교 역할을 한 것이다.
나이 차이가 무려 40여 년이나 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화는 오래된 친구처럼 익숙했고 서로 잘 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공통 관심사에 대한 얘기는 시대와 세대를 넘어선다.
세라노가 처음 헤세를 방문했을 때,
"어떻게 제가 이런 행운을 갖게 됐을까요?"라고 말하자
"우연한 일은 없습니다. 이곳에 오신 손님들은 꼭 만나야 할 사람들뿐입니다."라는 말로 헤세가 화답했다고 한다.
이 말은 융이 주장하는 무의식과 동시성(Synchronicity)의 원리에도 일맥상통한다.
겉으로 보기엔 우연 같지만 실은 우리 내면의 무의식이 서로 끌어당기는 필연적 사건이라는 뜻이다.

헤세와의 대화를 세라노가 융에게 전하자 융은 이렇게 말했다.
"맞습니다. 정신은 정신을 끌어들입니다.
꼭 만나야 할 사람들만 만납니다.
우리는 무의식에 의해 지시를 받는데, 무의식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p190)
나는 이 책을 통해 헤세와 융의 공통점이 참 많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헤세와 융은 같은 세대에 겨우 1~2년 차이로 태어나고 사망했다.
독일인이지만 스위스에서 말년을 보냈고 죽는 그 순간까지 철학적 사유와 집필을 했다는 점도 같다.
정작 독일에서는 그 두 사람을 몹시 싫어했다는 점까지 같다니 참 이런 인연이 또 있을까 싶다.
시대적으로 2차 세계대전이 있었던 독일의 나치즘의 영향이 컸을 듯하다.
헤세의 소설 속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융이 말하는 의식과 무의식으로 대변되며
이것은 인간 누구에게나 공존하는 개념임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한다.
헤세는 소설로, 융은 정신 분석 심리학으로 각기 다른 도구이지만 같은 생각을 펼친 것이다.
헤세가 융의 정신 분석을 받은 경험도 있을 만큼 서로의 철학과 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 두 사람을 여러 가지 노력 끝에 만난 미구엘 세라노 역시 헤세와 융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경을 담아 쓴 책이기에 더 감동적이고 의미가 있다.
그들은 인도의 요가와 중국의 주역에도 관심이 높았고
세라노는 특히 헤세와 융의 철학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미래는 서양의 물질적 합리성과 동양의 정신적 비합리성이 결합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 감동 포인트 >
헤세가 죽기 전 날 아내를 위한 시를 적어, 잠든 아내의 침대 머리맡에 선물로 놓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영면에 들었다는 내용에선 가슴이 뭉클했다.
이보다 더 값진 유산이 있을까...
융 또한 죽기 전 날까지 세라노에게 우정의 편지를 썼고, 마지막으로 집필하던 저서 [무의식에 대한 접근]을 완성했다.
책을 덮으며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느낌이 들었다.
세라노가 헤세와 융을 만나러 가는 과정부터 대화 장소에 대한 묘사, 대화 내용, 두 거장의 표정, 손짓, 말투 등
모든 걸 아주 세밀하게 표현해, 읽다 보면 어느새 내 머릿속에 영상이 저절로 떠올랐다.
심지어 내가 그 방안에 같이 손님으로 앉아 있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몹시 차분하게 몰입시키는 힘이 있다.
특히, 헤세가 평소 좋아했다는 '바흐의 b단조 미사곡'을 들으며 읽기를 추천한다.
< 나의 염원 >
헤세와 융처럼 평온하고도 지적으로 영면에 드는 행운이 내게도 오기를 지금부터 간절히 기도하고 싶다.
의식은 무의식을 끌어당기고 어느 순간 우연처럼 필연이 되어 진짜 내게로 올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