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읽기에 앞서 >
이란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하기에 유독 설렘을 안고 읽은 책이다.
이란이라는 낯선 나라, 우리에겐 베일에 싸여 있는 듯 멀게만 느껴졌던 나라,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불안감으로 은근히 스릴을 기대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곳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한 가족사를 통해,
1979년에 있었던 이란 혁명으로 나라의 정치적 변화와 전쟁을 겪으며
누군가는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고 누군가는 테헤란에 남아
30년 동안 사회적 격변기에 그들이 각자 어떻게 견뎌왔는지를 들려주는 소설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우리의 삶과도 무척 닮아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낯선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누구의 얘기인지 확인하기 위해
내내 가계도에 적힌 이름을 들춰보며 읽어야 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들의 이름이 제대로 내 머릿속에 들어왔기에
책의 첫 장에 가계도가 적혀있는 이유를 이해했다.

< 주요 등장 인물들의 특징 >
이란에 거주하는 80대 할머니에게는 아들 넷, 딸 둘이 있는데
그 중 세 명은 이민을 가서 다른 나라에 살고 있고,
두 명은 이란에 남아 있으며 한 명은 사망했다.
사망한 아들 하비브의 딸 '도키'가 이 소설의 서술자이다.
* 모하마드 : 할머니의 50대 큰아들로 미국에 거주하는 의사. 미국인 아내가 사망한 뒤 일에만 몰두하며 상실감을 견뎠다.
* 마이클 : 모하마드의 아들. 미국인 어머니가 일찍 사망한 뒤 외롭게 지내며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이란계 미국인.
* 마흐나즈 : 할머니의 50대 큰딸. 이란에서 군인이었던 첫번 째 남편이 처형된 후 프랑스에 거주하며 재혼.
* 샤파키 : 마흐나즈의 두번 째 남편이며 프랑스에 거주중인 대학교수로 현 이란 정부의 비판자.
* 모흐센 : 할머니의 40대 아들. 이란에 남아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항상 이란을 떠나고 싶어했지만 떠나지 못한 평범한 직장인.
* 아프샤네 : 친정 식구들이 사는 캐나다로 이민가고 싶어했지만 남편의 고집으로 이란을 떠나지 못해 늘 불만인 모흐센의 아내.
* 시루스 : 모흐센의 아들. 매사에 불평 불만으로 가득찬 비관주의자.
* 마리암 : 할머니의 30대 딸. 남편의 영향으로 히잡을 고집하는 교사.
* 하미디 : 마리암의 남편으로 현 이란 정부에 동조하는 극단적 종교주의자.
* 메흐디 : 할머니의 30대 막내 아들로 아내와 이혼하고 스웨덴에서 아들과 거주하는 침묵 일관자.
* 하비브 : 이란 혁명 당시 반정부 체제에 가담했다가 처형당했고, 이 소설의 서술자 도키의 아버지.
* 도키 : 남편과 함께 반정부 체제에 가담했다가 처형당한 어머니에 대한 잠재적 기억으로 악몽에 시달리는 하비브의 20대 딸.
< 핵심 내용과 느낀 점 >

30년 동안 미국, 프랑스, 스웨덴, 이란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한 가족이
어느 휴양지에 한데 모여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울고 웃다가
갈등과 반목, 화해의 과정을 거치는 열흘 동안의 이야기이다.
할머니를 구심점으로, 한 가족의 가계도와 열흘간의 서사를 차례로 서술했다.
그들이 만난 첫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별다른 계획 없이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 흘러간다.
할머니의 손주들은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해 서로의 말을 못 알아 듣지만
차츰 그들 나름의 공통 언어인 웃음과 순수함으로 친구가 되어간다.
그러나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어진 듯 보이는 어른들은 넷째 날부터 슬금슬금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다가
급기야 정치적 이견으로 서로를 증오하기까지 이른다.
일곱째 날, 마이클과 도키는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이제는 더 이상 가족처럼 보이지 않아.
그냥 서로 삐걱거리는 낯선 사람들 같아."
"그렇게 들떠서 기분 좋게 기다리다 만났는데 이렇게나 빨리 서로에게 질려버리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모두 집으로 돌아갈 순간만 세고 있어요.
"왜 그런 것 같아?"
"30년의 거리감 때문이죠. 양쪽의 관점과 경험, 심지어 말하는 방식도 달라요.
우리에게는 같이 공유하며 이야기할 미래도, 친구도 계획도 없어요.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가겠어요?
그 추억은 이미 열 번 정도 반복했을 거예요.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아요."
p136
이 대화를 읽으며 우리 가족을 생각했다.
30여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간 언니 둘을 몇 년만에 한번 씩 만날 때마다
그들이 30년 전의 한국적 이미지와 사고 방식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에 놀라곤 했다.
우리 사회가 경제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미국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사이,
언니들은 30년 전 한국을 떠날 때 간직했던 고국의 문화와 전통을 그리워하며 지냈다.
자기들은 나이 들면 한국으로 돌아와 노후를 보내고 싶은 소망이 있었는데
이제는 미국보다 더 이기적으로 변한 우리 사회에 혼란스러워하며 적응하지 못하고 불편해했다.
처음 며칠 간의 반가움이 피로감으로 변해갈 즈음 언니들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도키의 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공감이 갔고
그들이 함께 보낸 열흘이란 시간의 의미를 깊이 음미하게 됐다.
아홉째 날, 죽기 전에 자식들을 한데 모아 가족애를 느끼고 싶었는데
예기치 않은 자식들간의 갈등으로 마음이 아팠던 할머니는
함께 모여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각자의 얘기를 들어보자고 제안한다.
떠난 이들은
상처와 상실감, 경제적 어려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절망감,
타국에서 영원한 이방인 취급을 받는 외로움, 가족에 대한 서운함 등을 얘기했고,
남은 이들은
떠난 이들이 더 좋은 환경과 자유로운 삶을 선택해 가족을 버렸다며
이란에 남은 자신들만이 책임과 의무로 삶이 버거웠다고 얘기한다.
처음으로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점은 오해였고
또 어떤 점은 상대가 아닌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마지막 열째 날, 완전한 이해는 아니지만 그들은 대화를 통해 진심 어린 가족애를 느끼고
서로를 용서하며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해피엔딩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누군들 상처없는 삶이 있으랴.
다만, 자신의 문제만이 가장 커보여서 다른 사람의 고통은 미처 헤아리지 못할 뿐이다.
어쩌면 오랫동안 꾹꾹 눌러두었던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자기 자신과 화해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완벽한 가족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다시 만나고 싶어지는건
피가 물보다 진하기 때문이 아닐런지...
이 책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