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
채도운 지음 / 삶의직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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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 강낭콩 / 소설

이 책은 [강낭콩]과 [식물뿌리]라는 두 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2. 이 책을 읽게 된 계기

"일정한 조건에 미달하는 존재도 인간인가?"

책 앞면 띠지에 적힌 박주영(판사)님의 이 한마디가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근래 들어 실존 철학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니,

과연 인간이란 존재 자체에 어떤 조건, 어떤 기준이 필요한가,

게다가 그런 기준을 누가 만드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3. 저자 소개

채도운 작가는 1992년생으로 북 카페 '보틀북스'와 출판사 '삶의 직조' 대표로 있으며

2021년 도서 '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 로 데뷔했다.


4. 책의 내용과 감동 포인트



[ 강낭콩 ]

강낭콩은

스물다섯살, 이제 막 사회에 나가 직장인 신분이 되려는

주인공 솔아가 경험했던 혼전 임신을 통해

어린 아이에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의욕 넘치는 신입 인턴으로 일하던 중, 솔아는

어느 날 입덧이 시작되고 임신 테스트기를 통해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뒤

돌연 사직서를 제출한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당황해서이기도 했겠지만

혼전 임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감당하기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낙태를 하러 산부인과에 갔다가 현실을 도피하듯 병원을 뛰쳐 나갔다.

하지만 결국 한 밤중에 유산을 하게 된다.

그렇게 솔아는 강낭콩을 낳은 것이다.


아, 내가 정말로 강낭콩을 낳았구나.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 강낭콩을 향한 애정이 샘솟기 시작한다.

p31


생명을 잉태해 본 여성이라면 이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비록 남들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존재일지라도

내 몸을 빌어 하나의 생명체가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은

벅찬 감정과 함께 자신도 몰랐던 애정이 샘솟는 것이 바로 모성 본능이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는 게 뭘까요. 회사를 다니고, 월급을 받으면 그 돈으로 사고 싶은 것을

부모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는게 어른인 줄로만 알았어요.

하지만 내 배 속에서 벌어지는 일 하나를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도 모르는 

나는 그냥 어린아이였어요.

본문 p38


자신이 경제적 독립을 하면,

그게 어른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던 솔아는

자신의 몸 속에 깃든 작은 생명체 하나,

그것도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통념적으로, 비난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운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자신이 결국은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는다.


2016년에 겪었던 혼전 임신과 낙태라는 우여곡절 끝에

이제 솔아는 다섯살 배기 아들을 둔 어엿한 엄마가 되어있다.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식물원에 놀러가서 표를 끊는데

매표소 직원이 물었다.


"아이는 몇 살인가요?"

.............................

직원이 몇차례 질문했지만

선뜻 대답을 못하는 솔아...그러다 이렇게 대답한다.


"아, 죄송합니다. 아이는 다섯 살이에요.

이 아이가 첫째. 외동이에요."

본문 p58


그녀는 그 순간 강낭콩의 존재를 기억해낸걸까...?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의료 폐기물이 되어 떠나버린 자신의 진정한 첫번째 아이를...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 모두의 솔아를 응원한다.




[ 식물뿌리 ]

식물뿌리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7년 동안 병원에 누워있는 진석의 아내 미선과 그의 딸 지영이가 삶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담았다.


아빠의 간병 때문에 야근이나 출장은 고사하고 명목상의 휴가란 휴가는 모두 써야만 했던 지영은

회사에서 발에 걸리는 돌과 같았고 계약 기간이 종료되길 기다리는 폭탄 같은 처지여서

자신의 불행이 아빠 때문이라고 원망하기도 하고,

그런 자신을 혐오하기도 하면서 아빠의 생명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직업 군인이었던 남편이 식물인간이 되자 평생 주부로만 살았던 미선은 야간에 식당 주방일을 하며 생활고와 간병으로 지친데다

나중에 자신이 늙고 병들었을 때, 혹은 사고를 당하거나 갑자기 쓰러졌을 때 딸에게 식물인간인 진석을 남겨 줄 것이 두려워 진석의 연명치료 거부서를 작성한다.


진석은 식물인간이다. 이 말은 선고다. 당신은 이제 사람이 아니라는 선고 말이다.

사회적 쓸모를 증명할 수 없으며, 인간으로서의 사고도 할 수 없는 진석을 분명하게도 사회에서는 식물이라고 분류했다.

본문 p62


한 사람과의 추억은 돌봄의 대가가 된다.

추억이 소진되고 고갈되면 돌봄도 끝난다.

본문 p63


미선과 지영이 내린 고통스러운 결정 끝에

진석의 인공 호흡기를 떼어냈지만 놀랍게도 진석은 자가 호흡이 가능했고

고민 끝에 진석의 위에 영양공급 튜브를 꽂아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빠의 생명을 포기하기로 했던 지영이 변했다.

진석의 자가 호흡을 지켜보며 예전의 자상했던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식물처럼 늘어져 있는 아빠에게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자신의 연애 이야기며 일상을 들려주기도 한다.




식물에 불과한 진석이 지영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 때문에 순간순간 사람이 되고, 아빠가 되었던 것이다.

본문 p 91


고갈되어 더는 없을 것만 같았던 추억이 결코 일회성 소모품이 아님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5. 진짜 어른이 되어 가는 이들을 위한 책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와 실제로 읽고 난 뒤 내가 느낀 점은 그 결이 조금 다르지만

30대 초반의 젊은이가 이렇게 어른스러운, 어른보다 더 깊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과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 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솔직 후기입니다.


식물에 불과한 진석이 지영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 때문에 순간순간 사람이 되고, 아빠가 되었던 것이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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