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된 만화에 페미니즘 끼얹기 - 여성 서사 웹툰 읽기
탱알 지음 / 산디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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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된 만화에 페미니즘 끼얹기>에서 언급된 웹툰들이 페미니즘과 대체 무슨 관련이 있냐는 평이 있던데 페미니즘은 곧 여성에 의한, 여성의(에 대한) 서사이며 책에 언급된 웹툰들 또한 현재의 페미니즘 의제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에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간에 다뤄져야 하고 다룰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여성 서사란 대체 무엇인가? 작가는 이에 단 하나의 정답을 내리고 평가하기 보다는 다수가 동의 할 수 있는 기준 중 하나인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의 정신이 반영된 여성 작가의 작품’ , 그 중에서도 각종 포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문화 장르인 웹툰에서 드러나는 여성서사를 탐구하고 분석하며 더 나아가 여성 서사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페미니즘을 알리고, 페미니즘과 친하지만 웹툰과는 친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여성 서사의 방향과 가능성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재밌는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웠던 장은 5장 <헬조선이냐 탈조선이냐> 이다. 요즘 ‘넌 외국어 잘하니까 외국인이랑 결혼해서 외국에서 살라’ 얘기를 주변에서 너무 쉽게 자주 듣는다. 나 역시도 한국 남자보단 외국 남자랑 결혼하면 한국에서보다 평등하게 살 수 있으리라 막연하게만 꿈꿨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호주 남자와 결혼해 호주에서 소수인 ‘동양인’ 그것도 ‘기혼 /유자녀 /여성’ 으로 최약 계층 삼박자를 모두 갖춘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빌려 아직까지 ‘갓양남’과의 결혼을 꿈꾸는이들에게 현실적이고도 진심 어린 팩폭을 날린다.

“길거리에서 유아차를 미는 나를 향해 엉터리 중국어 흉내를 내며 야유하던 백인 남자와 마주친적이 있다. 몇 초 사이에 수십가지 계산이 뇌리를 스쳤다. 백인인 그와 동양인인 나, 남성인 그와 여성인 나, ‘진짜 호주 시민’인 그와 이주민인 나, 잃을 것이 없어 보이는 그와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나, 수많은 관계 속 힘의 격차를 저울에 달아본다. 내가 덩치 큰 동양인 남성이었다면 무엇이 달랐을지 상상한다. 반격하지 않고 자리를 피하는 나의 모습이 이민가족 2세로 살아가야 할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시나리오를 쓴다. 일련의 과정은 나의 시간과 정신적 자원을 꾸준히 갉아먹는다.”
5장 헬조선이냐 탈조선이냐 , 경선의 <데일리 프랑스>P.136-137

“완벽하게 안전한 지지대가 되어줄 사람은 어느 나라에도 없다” 

5장 헬조선이냐 탈조선이냐 ,경선의 <데일리 프랑스> P.163

똥차와 벤츠남에 대한 환상을 다룬 장에서는 단순히 똥차에게 상처받은 여성들에게 서로를 위로 하는 걸 넘어서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똑바로 고민하자고 촉구하기도 한다.

“‘’똥차’ 라는 호명은 그 언술의 부정확성으로 인해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 똥차가 대체 무엇이냐 묻는다면, 여성을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남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이 성긴 정의 속에서 유나비의ㅡ전 남친도, 박재언도, 얼굴 없는 남자도 모두 같은 층위에 버무려진다. 똥차와 벤츠의 대결 구도에 집중할수록 연애의 성패는 개인의 노련미에 달린 문제로 환원되었다. 우리는 정산 차리라며 똥차를 만나는 여자의 등짝을 때리기보다, ‘똥차 가고 벤츠 온다’는 주문으로 축하의 말을 대신하기 보다 여성에게 왜 자꾸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지를 물었어야 했다.”
4장 나쁜 남자를 사랑한 개념녀, 요니 <소설> P.122-123 

그리고 마지막으로 페미니즘의(여성 서사의) 의미를 되짚는다.

“이제 루는 화를 다스릴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 첫 발걸음을 막 떼었다. 그는 타인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자신을 들여다보려 한다. 시작은 분노하는 방법을 아는 것, 그리고 분노를 발산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남성이 페미니즘을 불쾌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페미니즘은 이전에 여성이 어떻게 다뤄야할지 몰랐던, 그래서 자기 자신을 처벌의 표적으로 삼고 말았던 분노의 감각을 일깨워 ‘그 방향이 아니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4장 나쁜 남자를 사랑한 개념녀 중에서 
P.136

다소 가벼운 소재인 웹툰을 다루면서도 이 책이 울림이 깊은 이유의 8할은 현재 우리나라를 관통하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과 간결하고 명징한 문장으로 핵심을 쏙쏙 짚어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위근우 기자는 저서 <다른게 아니라 틀린겁니다> 에서 웹툰의 강점 중 하나로 동시대 10대와 20대의 현실을 드러낸 핍진적 묘사에 있다고 꼽으면서 동시에 그 핍진성이  ‘현실에 대한 반성적 전유’ 를 거치지 않는다면 자칫 세상의 통념을 재생산하는데 그쳐버릴 뿐이라고 지적한바 있다. 

 <며느라기>나  <82년생 김지영>이 널리 읽혔던 이유도 바로 그 안에 숨겨진 구조적 모순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일부’ 남성들이 책 제목만 나와도 게거품을 물고 난리를 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거라고 생각한다.

 여성 서사에 대한 고민이 있는 콘텐츠 창작자와 소비자라면 누구나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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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4년이라니!! 앞으로도 저 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과 책 읽는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장으로 성장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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