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영 행복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밤만은 만족스럽다. (•••) 지금 같은 때엔, 더는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바보스럽게만 여겨진다.
(28~2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들 대부분은 상충되고 보완되는 자아들을 모아놓은 다발에 불과하다.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물론 우리가 진정한 자아를 지니고 있다는 믿음이 사실이라면-보통 벙어리이다. 우리는 허위적이고 소소한 자아들의 앞뒤로 상충되는 목소리들 밑에 격리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벙어리가 참된 자아의 보편적 자질인 것처럼. 참된 자아가 언어를 찾아 말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눈부신 사건이 된다.
_테드 휴즈
(2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간 나는 절망 이후에 찾아온다는 체념과 마주하고 있었다. 말해 무엇하랴만, 몸과 마음의 중심을 잃고 삶을 허비하게 되면 어떤 기회라도 늘 다른 이의 몫으로 돌아가게 마련이었다. (1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른여섯 살의 전직 연극배우이자 극작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대에 작품이 오를 때마다 언론에 종종 언급되던, 사회성 짙은 작품을 쓰고 가끔 연출가로도 활동했던 남자. 하지만 그는 상시적인 우울과 불안에 시달려야 했으며, 오랫동안 일념을 유지하며 매달려왔던 일이 자기 한 몸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수치심과 환멸감을 느꼈다. 당시 그는 악마에 홀려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다 어떤 여배우와의 불가해하고 열광적이었던 사랑이 끝난 뒤 닥쳐온 상실감과 결핍감이 그러한 감정을 더욱 부추겼다. 온갖 주체할 수 없는 정념과 변덕스러운 충동과 집요한 탐닉이 휩쓸고 지나간 뒤, 그는 갑자기 이별을 경험했고 그로부터 맹목적인 분노와 자기파괴 충동에 시달렸다. (9~1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떠나온 점등인의 별로 돌아가며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람의 사랑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16~1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