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148쪽

때로는 내가 명성과 악명은 한 걸음 차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그런 걸 보여줄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생각이 들어. 어쩌면 한 걸음 차이도 안 될지 모르지만.
그런데도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내 삶에 관해 모두 알고 있다는-내 삶의 별스러운 행각이 이어지는 한-사실 속에서 내게 좋은 점을 찾아낼 수도 있게 되었어. 그 사실은 내게 다시금 예술가로서의 나 자신을 확고히 할 필요성을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야. 그것도 되도록 빠른 시간에. 내가 만약 다시 한번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창조해낼 수 있다면, 난 악의에서 독을, 비겁함에서 비웃음을, 사람들의 혀에서 경멸을 뿌리째 뽑아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삶이 내게 문제가 되는 게 분명한 사실이라면, 나 역시 삶에 문제가 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야. 사람들은 나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고, 그들 자신과 나에 관한 어떤 판단을 내려야만 하기 때문이지. 물론 지금 내가 특정한 개인들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간 말할 필요도 없겠지.
_오스카 와일드, <심연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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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139쪽

이런 것들과 더불어 내겐 또다른 것들이 있었어. 난 오랜 기간 이어진 무분별하고 관능적인 안락함 속으로 빠져들었지. 플라뇌르, 댄디,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즐겼던 거야. 내 주위에는 무미한 기질과 보잘것없는 재능을 가진 이들이 모여들었지. 나는 나의 천재적인 재능을 헤프게 썼고, 영원히 젊음을 낭비하는 것에 야릇한 즐거움을 느꼈어. 정상에 있는 것이 지겨워진 나는 새로운 감각들을 찾아 의도적으로 깊은 구렁 속으로 내려갔던 거야. 열정의 영역에서 퇴폐는 생각의 영역에서 역설이 내게 의미하는 것과 같았지. 욕망은 종국에는 하나의 질병이나 광기, 혹은 그 둘 다가 되고 만 거야. 난 점차 다른 이들의 삶을 소홀히 하게 되었고, 내가 원하는 곳에서 즐거움을 취하는 삶을 계속 이어갔어. 평범한 날의 사수한 모든 행위들이 한 인간을 형성할 수도 해체할 수도 있고, 비밀스러운 방에서 행한 것을 언젠가는 지붕 꼭대기에서 큰 소리로 외쳐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지. 한마디로, 난 나 자신의 주인이기를 그만둔 거야. 나는 더이상 내 영혼의 선장이 아니었고, 그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지. 난 당신이 나를 지배하는 것을 허용했고, 당신 아버지가 나를 협박하도록 내버려두었어. 그리고 결국 끔찍한 나락으로 떨어졌지.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단 한 가지, 절대적인 겸손밖에 없어. 당신에게도 오직 한 가지, 절대적인 겸손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당신이 이곳 먼지 속으로 걸어들어와 내 곁에서 그 사실을 배울 수 있기를 바라.
내가 감방에서 썩은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가고 있어. 그사이 내 마음속에는 미칠 것 같은 절망감이 몰려왔고, 난 봐주기조차 힘든 비통함에 빠져들었지. 끔찍하고 무력한 분노, 씁쓸함과 경멸, 큰 소리로 울게 만드는 고뇌,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함과 침묵하는 슬픔을 모두 느꼈지. 난 고통의 모든 방식을 거쳐온 거야. 워즈워스가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했는지 워즈워스 그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을 만큼.


고통은 영구적이고, 모호하고, 어두우며
무한성을 띠고 있다.

(•••)

지금 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실제로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아주 잘 알 것 같아. 내가 이런 말을 할 때는 어떤 외부의 제재나 지시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난 그런 것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어. 난 지금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한 개인주의자가 되어 있기 때문이야. 자기 스스로 터득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아무런 가치가 없어. 나의 본질은 자기실현의 새로운 방식을 찾고 있어. 난 지금 오직 그 생각뿐이야. 그러기 위해 내가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은, 당신에 대한 모든 씁쓸한 감정으로부터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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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쪽

나는 스스로에게 거듭 되뇌어야 해. 당신이나 당신 아버지 같은 이들은, 설사 그 수가 천배나 많아진다 하더라도, 결코 나 같은 사람을 파멸시킬 수 없을 거라고. 나를 파멸시킨 것은 바로 나 자신이며, 위대하거나 하찮은 누구라도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에 의해 파멸에 이를 수는 없는 거라고. 나는 이 말을 마음에 깊이 새길 준비가 되어 있고, 지금도 그러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지금으로서는 내 말을 믿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내가 당신을 가차없이 비난한 게 사실이라면, 나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가혹한 비난을 가했는지를 생각해봐. 당신이 내게 한 짓이 잔인했다면, 내가 나 자신에게 한 짓은 훨씬 더 잔인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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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쪽

신들은 참 이상해. 우리를 벌줄 때 우리의 악덕을 그 도구로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우리 안의 선하고 다정하고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이용해 우리를 파멸로 이끄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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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5쪽

그후 끔찍한 외로움에 시달리면서 앓아누워 있던 이틀간 당신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굳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보여준 당신 같은 사람과 단지 그냥 아는 사람으로라도 계속 가까이 지낸다는 건 내게 치욕이 되리라는 것을 똑똑히 보았음을 다시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제 마지막 순간이 닥쳤고, 그 순간이 내게 진정 커다란 안도감을 안겨준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앞으로 나의 예술과 삶은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더 나을 것이며 더 아름다우리라는 걸 알았다고 새삼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비록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어. 당신과의 이별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 내게 평화를 가져다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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