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징비록 - 국보 132호 오리지널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류성룡 지음, 김문정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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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좌의정과 병조판서, 영의정을 역임했던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이후 전란에 대한 반성과 함께 앞날에 대한 경계, 충고 등을 담은 7년의 기록을 책으로 남겼다. 바로 《징비록(懲毖錄)》이다. 이 책은 류성룡이 임진왜란 동안 경험했던 사실들을 기록한 책이다. 16권 7책으로 된 목판본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전란의 원인과 전황 등을 치밀하고 입체적으로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아 1969년 11월 7일 국보 제132호로 지정됐다.


초판본 표지 디자인으로 새롭게 제작된 미르북컴퍼니의 《징비록(懲毖錄)》을 펴면,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물리치며 큰 공을 세웠던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비롯해 행주대첩을 이끌었던 의주 목사 권율(權慄) 장군, 개활지인 탄금대에서 오합지졸의 군사들을 이끌고 왜적과 싸우다 패해 자결한 신립(申砬) 장군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에서 원군을 이끌고 참전했던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일본을 통일하고 조선 침략을 주도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임진왜란에 참전해 조선의 왕자인 임해군과 순화군을 포로로 잡았던 가타 기요마사의 초상화도 들어 있다. 이외에도 조선통신사, 명량해전도,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 당포전양승첩도, 판옥선 등 임진왜란 당시의 인물과 주변 지형도 등이 제공돼 시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징비록》에는 임진왜란 이전의 일본과 조선의 관계를 분석한 내용이 나오는데, 조선 전기에는 일본 파견이 18회, 일본 국왕사의 조선 파견은 71회에 달했다. 하지만 조선 중기까지 조선에 평화가 지속되면서 일본과의 왕래는 점차 끊어졌다. 이로 인해 조선 중기 때는 일본에 대해 무지했고, 군 양성도 미흡했다. 류성룡도 《징비록》에 당시에는 오랫동안 평화로운 시절이 지속되어 온 나라의 백성이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었다고 밝혔다.


반면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분열되어 있던 일본 전역을 통일한 이후, 내부에 쌓인 불만을 풀기 위해 조선을 발판으로 명나라까지 정복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그는 끊임없이 조선에 스파이를 보내 조선의 정세를 살피며 기회를 엿봤다. 이 시기 조선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정쟁을 일삼는 당파 싸움이 본격화되던 시기였고, 양반을 돈을 주고 사거나 병역을 돈으로 대체하는 등 조선에는 실질적인 군 양성은 거의 없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대군을 이끌고 부산 동래를 시작으로 충주를 거쳐 한양, 평양까지 순식간에 진군했다. 일본은 신무기 조총으로 무장하고 수많은 실전 경험과 조선에 스파이를 보내 얻은 정보력으로 군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오합지졸들만 가득했던 조선을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갔다.

거기다 임금인 선조는 백성들을 보살피기보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 서둘러 도망치기에 바빴다. 의주까지 도망친 선조는 명나라로 망명하려고까지 생각했다고 하는데, 임금이 백성들을 버리고 몰래 도망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백성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경복궁을 불태웠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피난길을 함께하며 전시내각의 총책임자로 조선을 이끌었다. 이후 그는 벼슬에서 물러나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환난이 없도록 조심하자"라는 취지로 임진왜란 7년의 기록을 담은 《징비록》을 썼다.

그는 《징비록》 서문에서 임진왜란은 실로 참혹했다고 표현했다. 수십 일 만에 한양, 개성, 평양을 잃었고, 팔도가 산산이 부서졌다고 썼다고 썼다. 그는 임금께서 난을 피해 한양을 떠나셨음에도 오늘날이 있게 된 것은 나라를 보존하라는 하늘의 뜻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일본에 통째로 넘어갈 뻔했던 조선은 《징비록》 같은 책을 통해 교훈을 쌓지 못하고 계속된 당파 싸움과 군사력 양성 부재로 인조 14년(1636년)에는 병자호란으로 또다시 큰 전란을 겪었다. 그 후 1910년 8월에는 조선에서 개명한 대한제국이 멸망하며 5백 년 역사의 종지부를 찍었고, 1945년 해방을 맞기까지 일제강점기라는 또 다른 침략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징비록》은 조선시대 씌여진 책이라 현재의 독자가 원문을 그대로 읽기 어려워 원문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현대어를 풍부하게 사용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새롭게 번역됐다. 이 책에는 나라와 백성을 전란 속으로 밀어 넣은 위정자의 통렬한 반성과 함께 후손들이 임진왜란 같은 비극을 다시는 겪지 않기를 바라는 류성룡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징비록》을 읽으면서 류성룡을 생각해 볼 때, 그가 잘한 두 가지를 꼽는다면 선조가 명나라로 망령하는 것을 결사반대했다는 것과 우리의 영웅 이순신을 발탁했다는 점이다. 류성룡은 이순신에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이순신의 자는 여해(汝諧)요, 본관은 덕수(德水)다.

(중략)

이순신은 재능이 있었으나 명이 짧아서 가지고 있던 재능 백가지 중에서 한 가지도 발휘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아아!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통제사 이순신은 군중에 있을 때에 밤낮으로 철저히 경계하여 갑옷을 벗은 일이 없었다.

- 259 ~ 261페이지


임진왜란은 조선 선조 25년(1592년)부터 31년(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두 차례 걸쳐 침략하면서 7년간 계속됐다. 이로 인해 조선은 큰 피해를 입었다. 전쟁 초반에는 일본이 파죽지세로 한양까지 점령하며 승세를 올렸지만 이후 이순신, 권율을 비롯해 조선군과 의병들의 활약으로 반전의 계기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명나라의 도움을 받은 조명(朝明) 연합군은 전세를 뒤집었다. 이 책에는 임진왜란을 겪었던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당시의 분위기,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다. 임진왜란에 대한 상세한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참고해 보시기 바란다.


* 출처: https://blog.naver.com/twinkaka/222027552313


피를 토하며 쓴 임진왜란의 생생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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