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 - 절망의 한복판에서 부르는 차동엽 신부의 생의 찬가
차동엽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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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를 벗겨내고 찍었다. 저자가 신부님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서도 왠지 차분하고 경건한 마음이 든다.

 

저자는 이 시대 사람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는 생각, 즉 ‘도대체 무엇을 위한 인생인가?’ 라는 의문을 마음 밖으로 끌어내기로 작정했다. 24년 전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남긴 삶과 죽음, 성(聖)과 속(俗)에 관한 질문지를 만난 것이 그 계기가 되었으나 목적은 하나였다.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것. 그래서 '절망의 하복판에서 부르는 차동엽 신부의 생의 찬가'라든지, '내 가슴을 다시 뛰게할 잊혀진 질문'이라든 부제들이 이해가 되는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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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종교를 갖지 않았던 삼성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전 가깝게 지내던 신부님께 남긴 인생에 관한 절실한 질문 24가지가 있다. 그런데 이병철 회장은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2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나 이 질문들은 여전히 우리를 인생의 의문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 책 소개를 할때를 보면 늘상 나오는 이야기. 아마도 이 책을 쓰게된 계기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다.

 

1. 신(하느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

 

23.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라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 기업의 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24. 지구의 종말은 언제 오는가?

 

 

이병철 회장님.. 난 그분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거대한 삼성을 일궈내었다면 그분의 삶은 치열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서 남기신 인생에 대한 질문들... 나도 과연 내 생의 마직막에서 그런 의문이 들까? 전혀 들지 않을꺼 같은데... 아마도 삶이 달랐고, 아직은 생의 마지막에 서있지를 않아서 그런 질문들이 떠오르지 않았으리라.. 좀더 인생을 살고 좀 더 나이가 들면 아마도 그런 질문들을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는데 말이다.

 

저자는 인생의 질문을 생명의 몸살, 고도한 영혼의 초월본능, 내 인생의 비밀 코드, 피할수 없는 물음 으로 총 4파트로 나누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중에서 가장 내가 공감할수 있었던 질문하나.

" 한번 태어난 인생 왜 이렇게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워야 하나?"

아기였을때는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었을까? 기억에 없으니 알수가 있으랴만은 아마도 아기였을때는 기본적 삶에 고통이였을까? 배고픈거, 아픈거, 졸린거.. 라든지.. 요즘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탄생을 축하하며 우수운 소리로 '너도 인제 고생길이 훤하겠다'라는 소리를 한다. 그 말은 우리 요즘 세상을 잘 반영하는 말일것이다. 어려서부터 계속되는 교육들 그리고 취업난, 그리고 짓눌려오는 삶의 무게들.... 예전에도 그랬나? 지금과는 다르지만내 어린 시절도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고, 대학을 선택할때도 진로의 고민이 있었고, 졸업할때도 그랬고.. 그리고 30대가 되어서도 절망적인 경험을 해보기도 했었다. 그런것 보면 참으로 왜 인생은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가 모르겠다. 행복하기만 해도 시간이 많치 않을텐데, 힘들고 아픈 시간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고통의 진면목을 살펴보면 고통도 그 나름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첫째가 보호의 기능이며, 둘째로는 단련의 단련의 기능이고, 셋째로는 정신적 성장의 계기로서의 기능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고통을 겪게 되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우리몸에 통점이 많이 분포하는 것도 바로 같은 이치일테다.(역시 과학쌤이라 예도.. 참^^) 통점이 많아 아픈것을 빨리 느껴 몸을 보호하고자 함, 바로 그것이 고통의 진면목일것이다. 또한 고통을 감내해야 우리는 더욱 큰 영광을 얻을수 있다. 박지성 선수의 옹이발바닥이며, 발레리나 강수진의 붕대발가락은 그들의 고통의 증거가 아닌 영광의 상처이다. 그 고통은 감내하고 몸을 단련했기에 영광을 얻을수 있다는 것이며 고통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위대한 정신적 성장을 가져오게 된다. 모두 수긍이 가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통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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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맘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창조와 진화에 관한 생각은 영원히 평행선인가?" 라는 부분이다. 이 책뿐만이 아니지만 나는 항상 이 질문은 심히 불쾌하다. 왜, 굳이 사람들은 창조와 진화에 대해서 대립을 하면서 누군가의 손을 들어주려고만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두 문제가 평행선을 달리면서도 조금더 창조가 우위에 놓으려고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저자가 신부님이라는 나의 편협한 생각탓일까? 하지만 창조와 진화에 대한 논의는 내게는 별로 달갑지 않다. 자연현상에 감탄하고 인체의 신비에 경이를 표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굳이 왜 그것을 누가 했는가가 왜 중요할까? 물론 본인에게 중요할수도 있고, 나처럼 결론을 내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테다. 그저 본인의 의견만 가지고 남에게 절대로 주입시키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물론 저자가 읽는 독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다고 보지는 않지만 내가 앞서 만났던 사람들의 억지스러움에 나는 이문제를 당면하게되면 거부감부터 생기면서 토론조차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제일 불편했던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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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에서 할수 있는 그런 질문들이다. 그리고 '잊혀진 질문'이 아닌 '잊고 싶은 질문'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앞날을 생각해보면 답답함도 있고 걱정도 되기는 하는 이때 굳이 고민하고 싶지 않은 질문들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렇게도 자식들을 몰아치는 것도 지나온 날들의 후회때문에 내 자식들만은 그런 절망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뜻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그런 어른들의 고통극복에서 나온 일련의 해방구가 자식들에게 또다른 고통을 주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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