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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빈 - 새로운 조선을 꿈꾼 여인
박정애 지음 / 예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처음에는 소현세자가 누구인지 강빈이 누구인지 몰랐다. 물론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들을 처음 만났던 건 아니다.
그리 역사에 관심이 많은 건 아니지만 조선에 관한 특히나 왕실에 얽힌 비화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전혀 모르던 그들을 처음 만난건 "조선왕 독살사건(이덕일)"과 "조선 왕비 독살사건(윤정란)"에서 였다.
이 두 권의 책을 읽을 때에는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인질로 청에 세자 부부가 가게 되었고, 더 넓은 세상에 눈뜨고 와서 어의없이 인조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했다라는 사실과 더불어 소현세자 그가 왕위에 올랐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소설을 만났다. 물론 처음부터 이 소설은 아니었다. 김혜경작가의 '소현세자빈 강빈'을 서점에서 보고 도서관에서 검색하다 작가가 틀리네 하면서 빌렸던 책이 바로 박정애 작가의 '강빈'이었다.
이 소설은 1611년 강빈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때부터 이 세상을 등지는 1946년까지와 1681년 강빈의 둘째 따님이신 경녕군주의 마지막 7개월간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전자의 화자는 강빈이, 후자의 화자는 역시 경녕군주이다. 강빈은 열다섯 살에 구중궁궐 왕실 여인이 되었고, 병자호란의 패배 후 남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의 볼모로 잡혀가게 되어, 심양에서 인질 생활을 하며 그녀는 헌신적으로 남편을 돕는다.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청나라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대규모 영농과 국제무역에서 큰 성과를 이룬 강빈은 9년 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귀국한지 2달만에 학질에 걸린 남편 소현세자를 잃게 되었고, 유복자인 일곱째 아이를 홀로 쓸쓸히 낳았고, 그리고 서인이 되어 사약을 받게 되어 죽게 된다.
" 아이 야소(예수)를 기르신 당신의 자비로운 손길로 저의 입곱 아이들을 돌보아 주소서. 우리 죄인의 오늘이 우리 아기들의 내일을 짓누르지 않게 하소서."(p.261)
유복자로 태어난 아이가 하루도 못살고 죽었고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성모께 마지막으로 비는 강빈의 애절함을 읽을 때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훗날 숙종 44년(1718)에서야 겨우 억울한 누명을 벗고 신원되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소현세자와 강빈을 처음 만났던 책을 다시 읽어 보았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두번째 읽을 때는 마음이 너무나도 아파왔다. 그리고 옹졸한 인조로 인해 소현세자의 일가에 생긴 비극이 안타까왔고 소현세자가 왕이 되지 못함을 슬퍼했다.
" 그가 만약 인조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면 이후 조선의 운명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당시 조선은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는데, 소현세자는 이런 국제 정세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인물이었다."(조선왕독살사건,p.83)
소현세자 부부가 청의 볼모로 잡혀간 일은 심히 통곡스러운 일이나 오히려 그것이 그들에게 넓은 세계에 눈뜰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더군다나 강빈이 그저 내조만 하는 그런 조선시대가 원하는 현모양처의 여성이 아니었기에 더욱더 그녀는 소현세자가 새로운 나라를 만들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귀국하면서 그리고 9년의 볼모 생활을 견뎌냈던 소현세자가 죽음으로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더우기 그의 죽음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다수였다.
<<인조실록>> 23년 6월 27일
소현세자의 졸곡제를 행하였다.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지 얼마 안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지 수일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전부 검은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천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별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그리고 소현세자가 죽고 난후 그의 아들이 당연히 세자의 뒤를 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조는 둘째아들 봉림대군(효종)을 세자로 내세웠고 자신의 아들 일가를 몰락을 시키고 말았다. 아마도 뒤주 속에서 아들을 죽인 영조보다도 더욱더 옹졸한 임금이 아닌가 싶다. 소현세자의 비극은 단지 옹졸한 인조에게만 탓을 할수는 없을듯도 싶다. 선조가 자신을 몰아내고 명나라가 광해군을 왕으로 추대할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광해군을 괴롭히지 않았더라면.... 자칫 폭군으로 알고 있는 광해군이 인목대비에게 행했던 패륜으로 서인에게 쫓겨나지만 않았더라면... 아니면 그렇게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내세워진 인조가 청나라가 소현세자를 왕으로 추대할까 두려워 세자 일가를 몰살시키지만 않았더라면...
어찌되었든 소현세자의 일가뿐 아니라 강빈의 친정 일가의 죽음은 인조의 열등감, 후궁 조씨의 권력에 대한 야망, 김자점 세력의 집권 욕망 등이 얽혀져 나온 산물이다. 결국 인조의 옹졸함 때문에 소현세자와 강빈의 꿈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 부부의 꿈과 좌절은 바로 조선의 꿈과 좌절이었다. 만약 그들이 왕과 왕비가 되었다면 일제강점기 같은 치욕스러운 역사를 갖지 않았어도 됬을지도 모른다. 어쩜, 먼저 개방한 탓에 일본보다 더 우위에 있는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또한 한민족이 서로 싸우는 전쟁을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루지 못한 꿈은 항상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그들이 아쉽고 소현세자와 강빈 그들이 오늘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