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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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뒷통수를 얻어맞았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읽으면서 대물의 정체를 왕까지도 알고 있는데 여림만이 모르고서 주책을 떤다고 생각했었다. 허나, 정조는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확실하게 알고 있었지는 않았던 것이고 여림은 알고는 있었지만 그저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여기서 시비하나 걸고 넘어가고 싶다. 왜 그 조선이라는 나라는 남성우월주의가 넘쳐나는 사회였을까?

신분사회에서는 왜 그리 폐쇄적이였을까? 처음 역사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그래도 여자를 인정해주는 분위기로 흘러갔으나 중세시대로 거듭나면서 서양이든 동양이든 왜 그리 여자에게는 관대하지 못했나 싶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대물은 누구나가 탐내하는 명필가이며, 문장가이다. 충성스런 신하로도 탐내고, 사위로도 탐내고, 벗으로도 탐내고, 기생들도 탐내고, 궁녀들도 탐내고.... 근데, 그녀가 남장여자가 아니라 그저 여인네였다면(물론 그랬다면 소설의 소재도 되지 못했겠지만...) 글씨도 뛰어나고, 시도 뛰어나게 잘 지어냈다면, 깔끔히 일처리도 잘했대도 그렇게 충성스런 신하로 탐을 냈을까, 관원으로 탐을 냈을까?

그녀가 여인인지를 설왕설래하다가 사실을 알아버렸을 때, 정조는 그녀를 찾아가 고약을 떨었다.

"너는 어이하여 모든 것이 죄다 고약한 것이냐! 어이하여 말하는 것조차 고약한 것이냐! 어이하여 올라오는 계목마다 고약한 것이냐! 시체도 고약하고, 서체도 고약하고, 날려서 적은 속기마저 고약하고, 또 가난한 백성을 헤아리는 마음도 고약하고!"

아무리 정조가 서자로 가릴것 없이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여 썼다해도 여인네는 어쩌지 못하는 것인가보다. 얼마가 화가났으면 임금체면에 술을 마시고 그녀에게 찾아가 고약을 떨었을까? 물론 실제 정조가 그런 성품이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소설에 나오는 임금의 안타까움과 당쟁에서 아버지를 잃고 여기저기 자신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 온전히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모르는 가운데 그야말로 맘에 들고 충성스러운 신하를 만났는데 그를 버려야만 한다는 것 알아버렸을 때의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라 같이도 마음이 아팠다.

선준에게 내뱉는

"세상일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 왕인데도 어째서냐. 내 아비는 왜 그런 죽음을 맞으셨으며, 네 아비는 왜 그런 죽음에 이르게 한 무리였으며, ..... 나의 신하이길 바라는 이는 왜 하필 무성의 정기로 태어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구나"라는 말속에서 절대지존의 임금일지라고 그가 어쩔수 없는 임금의 고독을 느낄수 있었다.

 

리뷰를 쓰면서 내용을 다시 곱씹어보면 왜 그리 여성에 대해서는 폐쇄적이었는지, 왜 임금은 그리도 고독한 것인지 마음아파하면서 내용이 왜이리 어두워졌는지 모르겠다. 읽으면서 참으로 유쾌했는데 말이다. 어쩜 우리 여림의 이야기가 슬며시 빠져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규장각.JPG

 여림도 살짝 고민거리가 하나 비춰졌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소설을 하늘위로 띄우는 인물이다. 또한 고독해 보이는 임금마저도 참으로 깨방정스럽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번처럼 갑작스레 하하하 읏음을 터뜨려 버린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독자의 웃음을 이끌어 내는 이가 여림과 정조다. 청나라로 떠나는 '잘금4인방'에게 떠나기전 뜯어보라는 상감마마의 봉서에는 "재물청구금지"라는 글자가 있었다. 소설을 다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기서 빵! 터질수 없을 것이다. 일명 '노잣돈'을 주지 않는 임금의 행동도 참 괴팍스럽지만, 대물, 가랑, 걸오의 어의없는 표정이 눈앞에 선했지만 말이다. 몸에 더러운 것을 머물게 할수 없다며 암행어사의 마패도 양잿물로 빡빡 씻어 번쩍번쩍 빛이 나게한 우리 여림이 당황스러워 수선을 떠는 모습으로 아쉽게도 책을 놓을수 있었다.
 

성균관을 읽을때나 규장각을 읽을때의 이 유쾌함이 이젠 끝나버렸으니 인제 또 어떤 책으로 그 섭한 마음을 달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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