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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체이스 인 경성
윤채근 지음 / 북레시피 / 2026년 7월
평점 :
한밤 중, 김욱은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외부와는 거의 왕래를 하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자신에게 남긴 편지의 첫 문장. "나의 삶은 놀랍고 훌륭했지만 치욕적이기도 했다." 극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침묵했던 어머니가 남긴 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조선인으로 태어났지만 일본인에게 입양되었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광복군 대원이었다. 해방후 무장해제후 민간인 신분으로 고국으로 돌아왔다. 1946년, 아버지는 꼭 돌아오겠다며 북으로 떠났고, 아버지 대신 아들 김욱이 찾아왔다. "모든 건 1942년 가을 운명처럼 시작됐다"라면서 어머니의 이야기는 시작한다.
1942년의 경성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아득한 옛날 이야기에만 나오는 풍경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 실제 살고 있었던 누군가들의 삶이라는 것들이 인식이 되어왔었다. 그 가운데 이 책이 유독 눈길이 끌었던 것이 "주저흔"이었다. "칼을 긋다 마지막에 망설이면서 나타나는 흔적"들.. 1942년 격변의 시대에 그들은 얼마나 많은 주저흔을 몸에 새겼을까 싶다.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인 가정에 입양되어 일본인으로 살았던 혜심. 참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보니 살짝 그 위치가 의심의 불꽃이 일게 되더라. 그래서 치욕적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중경에서 온 아나키스트 혁. 임무를 띠고 왔지만 그저 막연해보였다. 하지만 끝내 길을 찾아가게 된다. 일본인이었지만, 정의로운 야마시타 경부. 그리고 독립운동가였다가 변절해 밀정이 된 불곰. 이들 중에서 주저흔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혜심과 불곰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의 주저흔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시대적, 정치적, 개별적인 소용돌이에 내몰려질 수가 있다. 그 소용돌이가 클수도, 작을수도 있다. 그 속에서 많은 선택을 해야하겠지만, 많은 사정으로 인해서 단행하지 못하는 그런 일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보면 우리 삶에 주저흔처럼 새겨진 아픔일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위안이 될 수 있는 그런날이 있지 않을까 싶다.